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의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협정(GATS) 위반 여부를 놓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SSM을 개설 허가제로 규제하도록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하면 외국 기업이 WTO에 제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는 반면, 중소상인 측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나치게 WTO를 의식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20일 '대규모 소매점에 대한 규제: 쟁점과 대안'이라는 보고서에서 "중소유통업체들이 주장하는 대로 대규모 소매점에 대한 입점규제를 도입하면 내국민과 외국인 간에 차별대우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수량 제한적인 조치로 거래 교역과 경쟁을 제한하는 효과가 있으므로 WTO GATS 제16조(시장접근)의 위반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입법조사처는 "(SSM에 대한) 규제조치는 중소유통업체의 보호라는 목표보다 환경·복지·도시개발과 같은 정책목표와 연관시켜 실시해야 GATS에 위배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법률에 명시적으로 대규모 소매점의 설립·운영을 규제하는 근거가 도입되면 외국의 경쟁기업들이 WTO분쟁해결기구에 제소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국제 통상 측면에서 상당한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정민정 입법조사처 외교안보팀 입법조사관은 "지난 4월 가축전염병예방법 때문에 캐나다가 우리나라를 WTO에 제소한 것처럼 규제방안을 노골적으로 법률에 실으면 분쟁의 소지가 된다"며 "현재 시행되고 있는 사업조정제도나 소규모 점포 지원 사업의 효과가 미진할 때 최후의 수단으로 법적 규제를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WTO·FTA 규정만 지나치게 의식하면 도입할 수 있는 정책 없어"
하지만 SSM 규제가 GATS 조항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 아님을 이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국제통상법 전문가 등이 지적한 바 있고 입법조사처 역시 합리성과 객관성을 전제한 규제는 위반 대상이 아니라고 인정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SSM 규제방안 중 GATS 조항과 충돌 가능성이 많은 의무휴일일수 조정과 영업시간 및 품목 제한마저도 GATS 조항에 위배되지 않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16일 지식경제부가 주최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최승환 경희대 교수는 "정부가 영업시간 규제 등이 서비스 영업의 '총수 또는 총 산출량'을 제한해 GATS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하지만 GATS 규정에 의하면 '총수 또는 총 산출량'은 서비스의 '최대한도'에 대한 제한이기 때문에 영업시간 규제 등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또 "정부는 또 GATS 제6조에서 규정하는 국내규제 위반이라는 주장도 하고 있지만 대규모점포와 재래시장·중소유통업체를 같은 서비스공급자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내국민대우의무 위반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GATS 규정의 위반 여부에 앞서 WTO에 제소당하는 것 자체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심영규 동아대 교수는 "WTO 제소 사실 자체만으로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패널이 설치되기 전까지 협의를 통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도 많다"며 "FTA까지 체결하는 마당에 WTO나 FTA 규정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사실상 국내에서 어떠한 정책도 도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 교수는 "국내적으로 어떤 정책이나 규제가 필요하면 일단 도입한 후 통상법적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조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현재 논의가 거꾸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라며 "WTO 분쟁 시 패소 가능성을 예상할 단계도 아니면서 SSM 규제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반영하지 않아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과 제소를 당했을 때 나타나는 비용을 비교했을 때 어느 것이 더 클지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심 교수는 지난 16일 토론회에서도 "정부가 WTO 분쟁해결기구의 유권적 판단을 받아보기 전에 미리 위반이라고 스스로 인정한다면 실제 분쟁 사례가 발생했을 때 우리나라에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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