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요동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일본이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남북 정상회담 전 일본을 방문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이른바 '재팬 패싱' 현상, 그리고 국내 정치 위기 등을 돌파하기 위해 아베 총리가 외교적 수단을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과 함께, '대북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상황이 여의치 않자 한국과 미국 등에 무리한 요구 사항을 던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4일 일본 <교도통신>은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 아베 총리가 오는 27일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 전에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이에 대해 "문 대통령에게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건 문제를 제기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통신은 지난 2월 아베 총리가 평창 동계올림픽개막식에 참석한 만큼, 이에 대한 답방 형식의 방일을 요청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통신은 "문 대통령은 즉답을 피했다"면서 "남북정상회담 준비로 인해 문 대통령의 일정 조정이 쉽지 않아 방일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보도했다.
남북 정상회담을 20여 일 앞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그 전에 일본을 방문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오는 5월 초 한중일 정상회담이 계획돼있고 다음주에는 고노 다로(河野太郎) 일본 외무상의 방한 일정도 잡혀 있어, 한일 양자 정상회담을 긴급히 치러야 할 필요성도 크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가 이러한 요구를 한 배경을 두고, 현 국면에서 납치자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든 수면 위로 끄집어내야 한다는 국내 압박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취임 초부터 납치자 문제를 강조해왔던 아베 총리가 현 국면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다면, 모리토모 사학 스캔들 사건으로 정치적 위기 상황에 처한 그가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에게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반도 정세를 무시한채 타국 정상에게 자국으로 오라고 하는 것은 '외교적 결례'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아베 총리의 이같은 외교적 결례가 남북이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던 올해 초부터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월 9일 평창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한국을 찾은 아베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한미 군사 훈련을 연기할 단계가 아니다. 예정대로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이 문제는 우리의 주권의 문제이고 내정에 관한 문제다. 총리께서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한 건 곤란하다"고 답한 바 있다.
아베 총리의 발언에 내정 간섭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이다.
납치자 문제에 대한 아베 총리의 대처 방식도 부적절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가 국내 정치적 목적이 아닌, 정말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동맹국인 미국이나 이웃 국가인 한국에게 부탁하는 것보다 당사자인 북한과 직접 대화로 풀어가려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일본 내에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를 비롯해 북한과 대화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이 있다. 그럼에도 일본은 이러한 통로를 이용할 생각보다는 미국이나 한국에 납치자 문제를 이른바 '아웃 소싱'하고 있다.
납치자 문제의 실질적 해결 의지보다, 이 문제를 고리로 남북 및 북미 관계 진전에 제동을 걸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를 앞세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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