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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절차, '국회' 아닌 '국민'이 주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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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절차, '국회' 아닌 '국민'이 주도해야

['촛불개헌' 관점에서 본 정부 개헌안·<5>]

['촛불개헌' 관점에서 본 정부 개헌안·<1>] "대통령 개헌안, 일단 합격"...다음은?

['촛불개헌' 관점에서 본 정부 개헌안·<2>] 국무총리 제도의 딜레마

국민의 헌법개정권은 국민의 헌법제정권자 지위에서 직접 도출되는 주권자의 가장 중요한 권리다. 국민의 헌법개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개정절차 마련은 헌법의 원만한 작동과 진화를 위해 몹시 중요하다. 개헌 절차가 너무 까다로워 헌법을 제때 고치지 못해도 국민이 손해보고 너무 쉬워서 권력자가 입맛대로 헌법을 고쳐도 국민이 다친다. 많은 나라들이 이 딜레마를 풀기 위해 고민했고 후술하는 것처럼 전면개헌의 절차요건 강화나 개헌작업의 주기적 의무화 등 여러 방안을 강구해서 돌파구를 찾았다. 어느 나라에서나 개헌 절차는 예외 없이 헌법사항이라 개헌조건이 무르익을 때만 예외적으로 손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개헌국면에서 개헌 절차에 대해 본격적 검토 없이 지금처럼 조용히 넘어가는 것은 주권자의 제1권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청와대는 국민주도개헌 절차에 대한 개념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지난22일 공표한 개헌안에는 개헌 절차 개헌제안이 전혀 없다. 국민헌법자문특위가 유권자의 3%이상이 개헌발의권을 갖는 개헌안을 제출했으나 예상을 뒤엎고 청와대가 수용하지 않았다. 국민헌법자문특위 개헌안에서도 개헌 절차와 관련된 부분은 국민발의권 신설제안이 전부였다. 국민헌법자문특위도 현행 헌법의 개헌 절차에 관한 문제의식이 약했다는 뜻이다. 특히 청와대는 현행 헌법의 개헌 절차 100% 존치를 선택했다. 현행절차가 충분히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국민을 배제하고 국회에 주도권을 맡긴 현형개헌 절차의 한계에 비춰볼 때 몹시 개탄스럽다.

청와대가 현행 헌법의 대의권력주도 개헌 절차를 국민주도 개헌 절차로 오해할 만큼 국민주도개헌 절차에 대한 개념과 상상력이 없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현실적인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시민운동정치가 활성화된 편이다. 만약 개헌발의권이 주어지면 지금 청와대국민청원으로 몰리는 많은 사안들이 국민개헌안발의운동의 물결을 타게 될 것이고 적지 않은 국민개헌안이 공식 발의요건을 채우게 될 것이다. 이것이 혹시 안정적인 국정운영에 불확실성을 준다고 지레 겁을 먹은 게 아니라면 좋겠다. 분명한 것은 개념이 없어서 그랬든 겁을 먹어서 그랬든 국민개헌발안권 불인정이 이번 대통령개헌안의 최대실책으로 평가된다는 점이다.

촛불개헌을 주창해온 시민단체들과 전문가들이 이번 개헌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전략자산의 으뜸이 국민의 개헌발의권 확보다. 이것만 있으면 이번 정부안이 간신히 합격점을 줄 만큼 성에 안 차도 넘어가고 지지할 생각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국민들이 직접 고쳐나갈 수 있는 든든한 무기를 손에 쥐었으니 후일을 도모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기대조차 물거품이 됐다. 이로써 이번 촛불개헌의 1차 목표를 국민주권 강화에 둔 대통령개헌안의 빛이 바랬다. 국민주권 강화차원에서 대통령개헌안이 국민발안권과 국민소환권을 도입하고 정치기본권을 확대했으며 지방자치분권을 강화하고 총선민의에 비례하는 의회구성방침을 천명했어도 그렇다. 이제 여야합의안 도출과정에서 국민개헌발의권을 다시 집어넣는 수밖에 없는데 국회권한의 국민 분점을 반길 국회의원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국민개헌발의권이나 헌법개정회의 소집요구권이 있었다면?


개헌 절차는 개헌안의 공식발의로 시작한다. 개헌발의권을 누가 갖고 있으며 어떻게 행사할지는 헌법정치의 풍경을 좌우할 헌법의 중요한 쟁점이다. 만약 촛불시민혁명 이후국면에서 국민에게 촛불개헌안 발의권이나 헌법(개정)회의(constitutional convention) 소집 요구권이 있었다고 가정하면 개헌정국의 모습이 지금과는 몹시 달랐을 것이다. 이번처럼 전면개헌을 추진할 경우에는 반드시 국회를 새로 선출해야 한다든가, 헌법(개정)회의를 따로 선출해야 한다든가, 혹은 개헌시민의회(citizens' assembly)를 추첨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절차조항이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특히 전면개헌을 추진할지 여부와 위의 세 방식 중 어떤 경로를 택해 전면개헌에 임할지를 국민이 국민투표로 결정할 권리가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작년5월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정국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촛불이전에 구성된 국회의 제1야당이 온갖 억지와 횡포를 부리며 촛불시민들의 개헌열망에 재를 뿌리진 못했을 것이다. 위대한 촛불시민혁명 이후의 선거제도와 헌정질서 개편필요성이 촛불시민혁명 이전에 구성된 구체제 국회에서 번번이 가로막히진 않았을 것이다. 지지부진한 국회논의를 보다 못한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개헌안을 발의해서 개헌정국을 이끌고 있는 현재의 비상한 정국도 대통령에게 개헌발의권이 없었다면 전개될 수 없었다.

미국의 50개 주헌법을 주목해야하는 이유


분명한 사실은 개헌정치의 지형과 특징이 헌법이 정한 개헌 절차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이다. 개헌발의권 주체를 확대하고 절차요건을 바꾸면 개헌을 둘러싼 논의지형과 정치지형이 모두 바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헌법의 개헌 절차 자체에 문제가 많으니 이번 기회에 개헌 절차도 본격적으로 개헌하자는 주장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다. 나는 먼저 개헌 절차의 다양성에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미국 50개주 헌법의 다양한 개헌 절차를 개관하며 개헌 절차에 대한 제도적 상상력에 불을 붙인 후 현행 헌법의 개헌 절차 개헌의 4대 기본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주헌법의 다양한 개정절차, 그러나 주지사한테 발의권 없다

미국의 주헌법 개정절차는 주헌법마다 조금씩 다르다. 주의회나 헌법회의, 국민이 발의한 개헌안을 국민투표로 확정짓는 이중절차는 모두 같다. 49개주의 헌법은 상설 국민대표기관인 주 의회에 발의권을 준다. 아울러 비상설 국민대표기관인 주헌법회의에 국민투표에서 확정될 개헌안 발의권을 주는 주도 44개나 된다. 캘리포니아주 등 18개는 제3의 개헌 절차로 국민의 개헌발의권도 인정한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연방헌법이 대통령에게 개헌관련권한을 주지 않듯이 주헌법도 주지사한테 개헌발의권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가의 최고 권력자이자 헌법의 최대 수범자인 대통령이나 주지사에게 개헌발의권을 주면 그의 임기연장이나 권력강화를 위해 발의권한이 남용될 위험성이 크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의회발의에 의한 개헌 절차를 살펴보면 개헌안의 의회 통과에 재적과반수를 요구하는 주도 더러 있지만 대개는 재적 2/3 찬성을 요구한다. 두 회기 연속해서 2회의 의회결의를 요구하는 주가 있는가 하면 총선을 사이에 두고 총선 전·후로 의회에서 2회의 의회결의를 요구하는 주도 있다. 주의회가 발의해서 통과시킨 헌법개정안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국민투표를 요구한다. 국민투표는 일반적으로 과반수찬성을 요구하지만 60%를 요구하는 주도 있다. 저마다 특색을 자랑하는 미국의 50개 주헌법은 비교헌법학의 보고라 할 수 있다.

헌법회의에 의한 개헌안 발의 절차


다음으로 주 헌법회의 발의에 의한 개헌 절차를 살펴보자. 헌법회의는 헌법개정을 위해 한시적으로 선출된 국민대표기구다. 2017년까지 미국에서는 총233개의 주 헌법회의가 소집되었다고 한다. 주당 4.6회니까 잦은 건 아니다. 헌법회의 소집여부는 대체로 의회가 결정한다. 그러나 의회의 결정에 이어 국민투표 통과를 요구하는 주도 더러 있다. 헌법회의 소집이 결정 나면 헌법회의 구성을 위한 선거가 실시된다. 엄연히 의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개헌목적의 헌법회의를 따로 선출하는 이유는 헌법회의 의원은 6개월에서 1년 사이 한시직이라 의회의원에 비해 이해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에서 개헌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헌법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헌법회의 소집여부를 결정짓는 국민투표의 주기적 실시

헌법회의 소집여부를 의회결정에 맡기지 않고 일정한 기간이 경과하면 '자동적으로' 국민투표에 부의하여 국민이 직접 결정하도록 규정한 곳도 있다. 뉴햄프셔 주와 로드아일랜드 주 등 6개 주헌법은 10년마다, 미시간 주는 16년마다, 뉴욕 주와 일리노이 주 등 8개 주는 매20년마다 국민투표에 부의하라고 규정한다. 이런 주들이라고 해서 주의회 발의에 의한 개헌 절차나 주의회의 헌법회의 소집절차가 없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국민의 판단에 따라 주기적 개헌작업이 가능하도록 헌법회의 소집여부에 대한 국민투표 자동부의제도를 만들어낸 것이다.

위와 같은 제도는 헌법회의 소집여부 혹은 개헌작업 필요여부를 의회와 정쟁에 맡기지 않고 국민들이 직접 판단할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국민의 헌법개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한다. 국민 과반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주의회와 별도로 헌법회의를 선거로 구성, 한시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의회가 개헌에 적극적이지 않아도 국민과 시대가 요구하는 헌법 개정을 추진할 수 있게 한 혁신적인 제도라고 판단된다.

플로리다 주는 임명직 헌법특위를 20년마다 운영한다

헌법회의 소집여부를 국민투표로 물어보는 대신 임명직 헌법개정위원회(Constitutional Revision Commission)의 20년 주기 구성운영을 의무화한 플로리다 주헌법도 눈에 확 들어온다. 플로리다 주가 헌법에 따라 20년마다 무조건 설치해야 하는 헌법개정위는 총37인의 임명직으로 구성되는 한시적 위원회다. 임명직 헌법개정위원회는 선출직 헌법회의보다 민주적 대표성이 약하지만 헌개위 개헌안도 헌법회의 개헌안과 마찬가지로 의회의 심의의결을 거치지 않고 국민투표로 직행한다. 참고로 현재 미국 플로리다 주에선 1977년, 1997년에 이어 작년부터 제3차 헌법개정위원회가 구성돼 운영 중이다. 2018년11월 선거 때까지 활동이 예정돼 있다.

보편적인 의회주도 개헌 절차에 보태 국민발안절차까지 도입한 플로리다주헌법이 매20년마다 헌법개정위 구성을 의무화해서 주기적인 개헌을 제도화한 이유는 그 두 절차만으로는 국민의 관점에서 꼭 필요한 개헌이 그때그때 적시에 빠짐없이 이뤄진다는 보장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요컨대, 미국 주헌법 중 일부는 국민의 헌법개정권을 실질화하는 차원에서 국민발안권 도입을 넘어 주기적으로 개헌필요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든가 주기적으로 개헌작업을 추진할 개헌특위 구성을 제도화하는 선까지 나아갔다.

권력주도개헌 절차에서 국민주도개헌 절차로 대전환!

위의 개헌 절차 진화사례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바는, 헌법은 국가의 최고법이라 가급적 바꾸지 않고 운영의 묘미를 살리는 게 바람직하다는 기존의 소극적인 생각이 하루바삐 벗어나야 할 일종의 헌법신화라는 사실이다. 정치공동체의 산물인 헌법은 진선진미하거나 고정불변할 수 없다. 우선 시대정신과 가치관, 과학기술과 생활양식이 급변하는데 헌법만 그대로일 수 없다. 헌법은 타협과 조정의 산물이라 필요한 헌법사항이 누락된 것도 있고 실효성이 없거나 시행착오로 드러난 규율내용도 있다. 사회변화와 인식변화에 발 맞춰 정기적으로 헌법실태를 점검하고 적극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어야한다. 다만, 헌법은 국민이 직접 만드는 국가의 최고법이기 때문에 국민이 개헌의 전 과정에서 최대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국민주도 개헌 절차를 갖고 있어야 한다.

현행 헌법의 개헌 절차는 대의권력을 규율하는 개헌작업을 대의권력이 주도하는 모순에 빠져있다고 요약될 수 있다. 우리사회는 대통령이나 국회가 발의하고 국회가 심의의결하며 국민은 국민투표 때 고무도장을 찍는 현행개헌 절차를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있다. 내가 보기에 개헌 절차 개헌의 기본방향은 개헌의 모든 과정에서 대의권력의 관여와 주도를 최소화하고 국민의 주체성을 실질화하는 데 있다. 이런 관점에서 몇 가지를 제안한다.

개헌발의권,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 가져야 한다

첫째, 대통령의 발의권을 없애야 한다. 그 대신 국민의 개헌발의권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국민발안권을 도입하면 대의기구인 국회의 완충장치 없이 국민이 개헌안을 놓고 직접 찬반으로 나뉘고 승자와 패자가 갈리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반론이 있다. 이는 국민의 판단역량을 불신하여 직접민주주의를 원론적으로 반대하는 엘리트주의적 입장일 뿐이다. 현대 민주주의와 헌법의 동향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입장일 뿐 아니라 촛불시민혁명을 수행해낸 우리국민의 민주역량에 대한 모욕으로 수용하기 어렵다.

정부개헌안이 국회의 신규입법을 거부할 수 있는 국민투표나 사드배치나 탈원전 등 중대한 정책사안을 직접 결정짓는 국민투표를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한 배후에도 비슷한 이유가 숨어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개헌안에 포함된 국민의 법안발안권도 의회에서 부결되면 곧바로 폐기되는 순수간접 국민발안제로 설계될 것이 뻔하다. 입법권의 독점적 유지를 위해 국회는 국민의 법안발의권 발동요건을 가급적 어렵게 만들 내재적 유인을 갖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정부안이 국민발안제와 국민소환제의 대원칙조차 정해주지 않고 덮어놓고 국회입법에 맡긴 것도 큰 실책이다. 국회는 국민발안에 의한 국민의 입법권 분점이나 국민소환에 의한 임기 중 파면위험을 최소화시킬 자기중심적인 유인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직접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은 경험적으로도 근거가 없다. 국민의 개헌발안권 행사가 활발한 스위스나 캘리포니아 주의 국민들이 그것 때문에 서로 적대감이나 갈등지수가 높아졌다는 연구결과를 접하지 못했다. 반면에 국민의 민주적 효능감이 높아졌다는 연구결과는 많다. 현대의 선진민주국가들이 도입한 국민발안권, 국민표결권, 국민소환권 등 직접민주주의 권리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일부 보충하는 순기능을 한다.

필수적 국회의결절차와 국민투표의 권력도구화 방지


둘째, 누가 발의하든 상관없이 국회의원 재적 2/3이상의 찬성을 일률적으로 요구하는 부분을 바꿔야 한다. 현행 개헌 절차에 따르면 누구도 곧바로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의하지 못하고 반드시 국회의결을 거쳐야한다. 이는 권력자가 자신의 제안을 대의제의회를 우회하고 곧바로 찬반 국민투표에 붙여 손쉽게 권력의지를 관철하는 이른바 일방통행식 플레비시트(plebiscite)를 막기 위해서다. 국민투표의 권력도구화를 막는 제일 좋은 방법은 미국의 주헌법처럼 대통령의 발의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개헌안에 대해 예외 없이 국회 재적 2/3이상의 찬성에 의한 국회통과를 요구하는 개헌 절차는 여야의 합의 또는 절대다수의 동의를 확보할 수 있는 개헌안에 대해서만 국민이 최종 승인할 기회를 갖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재적의원 1/3이상이 반대하면 국민은 어떤 개헌안도 받아들 수 없다는 뜻이자 재적의원 2/3에 조금 못 미치는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는 개헌안도 국민투표에 회부될 길이 없다는 뜻이다. 현행 헌법개정절차에 따르면 이처럼 기득권과 소수이익이 과잉 대표되고 현상유지가 과잉 보호받게 돼 있다.

임기단축 등 이해충돌사안은 국민이 직접 결정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2/3이상 동의를 국민의 2/3이상 동의로 등치하는 건 무리다. 첫째, 국회에서는 중하위층이 과소 대표되고 중상층이 과잉 대표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정치적 대표성의 불평등으로 전환되는 구조적 문제다. 둘째, 현재의 승자독식대표 선거제도와 지역기반 거대양당구조가 국회의 대표성을 더 왜곡한다. 셋째, 보다 결정적으로 국회의원에 고유한 주권자와 이해상충문제가 존재한다. 국회의원의 임기, 권한, 보수, 선거방식, 선거구획정, 의원정수와 지역구의원 수 등 국회의원의 이해관계가 직접 얽혀있는 헌법조항의 개폐와 신설을 지금처럼 국회의원 2/3이상의 판단에 맡기면 주권자의 관점에서 최적의 해법이 나오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임기단축이나 정원확대 등 전형적인 이해상충사안에서는 국회의결결과가 민심과 동떨어진 자기대리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총선민의(정당득표율)를 그대로 의석수로 반영하자는 비례성 원칙의 도입마저 반대하는 정당이 있는 판이다.

국회의 개헌발의 및 심의 독점상태를 깨는 국민의 개헌발의권 도입은 위에서 예시한 이해상충문제 때문에라도 시급하고 절박하다. 최소한 국민이 직접 발의한 개헌안에 대해서는 국회가 부결시킨 경우에도 그 이유와 함께 국민투표에 붙여서 국민에게 최종선택권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발안 개헌안을 국민의 판단을 받아보지도 못한 채 국회의 결정으로 폐기하는 건 국회의 자기대리 가능성을 감안할 때 위험하다. 대의권력을 다스리는 헌법의 속성상 국회보다는 주권자에게 최종결정기회를 부여해야 공평하다. 이미 스위스헌법이 이렇게 정하고 있다. 다만 국민발안 개헌안을 국회심의 없이 혹은 국회부결에도 불구하고 국민투표에 붙일 경우에는 유권자의 3/5 이상 찬성으로 개헌요건을 조금 강화해도 무방할 것이다.

국회의결과 국민투표는 조문별로 실시해야 한다

세 번째 개선이 필요한 사항은 일단 적법하게 발의된 개헌안을 통으로 국회표결과 국민투표에 부의하라는 절차요건이다. 현행 헌법 아래서는 국회와 국민 모두가 개헌안이 아무리 가짓수가 많고 복잡하더라도 조문 하나하나에 대해 선택적으로 찬반을 표시하지 못한다. 원 포인트 개헌이라면 몰라도 이번처럼 전면개정을 추진하는 경우에도 1회의 찬반표시만 허용하는 절차적 제약은 실은 권력자의 나쁜 개헌안이 들어있을 경우 그럴듯한 끼어 팔기용 개헌안이 아무리 많아도 반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실적으로는 거꾸로다. 전체적으로 실보다 득이 크면 찬성하라는 메시지와 다르지 않다. 헌법을 최고법으로 만들어주는 국민투표를 이렇게 빈껍데기로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주권자의 헌법개정권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때그때 필요한 개정안을 원 포인트 방식으로 발의하고 그에 대해 찬반을 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일부 주헌법은 개헌안에 대해 조문별로 따로따로 찬반을 물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헌법조문 하나하나가 유기적으로 상호연관 돼 있다는 반론이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만약에 서로 긴밀하게 관련 있는 조항이 있다면 그것만 함께 묶어서 투표에 붙이고 나머지는 따로따로 찬반을 표시하게 하면 될 일이다. 중요한 것은 국민투표가 의미를 갖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주기적 전면개헌을 제도화할 국민주도절차가 필요하다


끝으로 이번 기회에 일정주기마다 전면개헌 필요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실시를 의무화하고 전면개헌이 필요할 때에는 반드시 헌법(개정)회의 소집이나 헌법개정특위 운영, 시민의회 추첨을 의무화하는 개헌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민발의권을 쟁취해도 그 행사가 몹시 어려울 뿐 아니라 원 포인트(한 주제, 한 조문)씩 발의할 수 있을 뿐이다. 시대변화에 따라 국민의 관점에서 필요한 개헌작업을 의회의 정쟁에서 자유롭게, 적시에 체계적으로 진행하려면 주기적인 국민발의 개헌 절차의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와 함께 국민개헌안이 발의된 후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면에서 국민학습과 국민토론을 지원할 국가와 지방정부의 책임을 규정하면 바람직할 것이다.

향후 대통령개헌안의 처리절차와 전망


지난26일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공식 발의했기 때문에 국회는 60일(5월25일)이내에 수정가감 없이 통으로 찬반을 의결해야 한다. 대통령개헌안의 국회의결 가능성과 국회통과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문 대통령은 개헌안을 발의함으로써 이미 개헌정국의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해냈다. 대통령도 국회발의 마지노선인 5월 4일까지 여야가 극적으로 타협해서 국회개헌안을 내놓으면 본인의 개헌안을 철회할 수 있다며 국회합의 개헌안 도출을 독려한다. 그러나 국회가 그때까지 여야합의 국회개헌안을 만들어낼지, 아니면 권력구조를 제외한 부분개헌처리에 합의할지, 아니면 자유한국당이 대통령개헌안을 부결시킬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지금 확실한 것은 넉넉한 개헌저지의석을 가진 자유한국당이 통으로 찬반의결대상이 될 뿐 타협과 조정이 불가능한 대통령개헌안을 통과시켜줄 리 만무하다는 사실뿐이다.

국회에 주어진 여야합의안 도출시간은 1달이 채 남지 않았다. 이 기간 중에 국민은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개헌 절차 국민개헌안을 긴급하게 마련해서 비상행동에 나서야 한다. 국회와 여야정당에 국민의 개헌발의권을 확보하라고 주권자의 긴급명령을 발동해야 한다. 아울러 쌍방대리 위험성이 높아서 국회의결에 맡기기에 부적절한 국회(의원)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국회의결의 예외를 인정할 것을 국민의 이름으로 명령해야 한다. 특히 후자에 대해서 국민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국회의원이 인정하게 만드는 것은 향후 1달간 대국민홍보와 대국회압박의 주요 포인트가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대해서는 국민헌법자문특위가 대통령에게 제출한 자문개헌안 중 청와대가 아무 이유도 제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삭제한 내용의 복원을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국민의 개헌발의권과 국무위원인사에 대한 국회동의권이 대표적인 보기다. 이와 관련해서 청와대가 지난3월13일 대통령에게 제출된 국민헌법자문특위의 자문원안 전문을 지금까지도 공개하지 않는 사실을 강력하게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자문특위의 개헌자문안은 국가예산이 수십억 투입돼 만들어진 공적 산물로서 지난13일 즉시 공개되었어야 마땅하다. 만약 그랬더라면 청와대도 26일 발의시점까지 국민개헌발의권 삭제 등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수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청와대는 지금에라도 국민주도개헌을 위한 국민의 무기를 무슨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는지 국민에게 설명해야 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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