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개헌' 관점에서 본 정부 개헌안·<1>] "대통령 개헌안, 일단 합격"...다음은?
['촛불개헌' 관점에서 본 정부 개헌안·<2>] 국무총리 제도의 딜레마
앞서 대통령제 정부의 국무총리 제도는 실질적 권력분점 효과를 가지지 못해 제왕적 대통령제 해결방안이 될 수 없음을 살펴봤다. 이번 글에서는 미국 대통령제와의 비교를 통해 정부의 권력 구조 개헌안이 갖는 한계와 그 대안마련의 길을 찾는다. 이 글의 합리적 핵심이 권력 구조 개헌안을 둘러싸고 전개돼 온 정쟁 수준의 대립을 보다 생산적인 개헌 논의로 나아가게 하는 데 다소라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1787년 여름 필라델피아에 모인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느슨한 국가연합(Confederation)을 강력한 연방국가로 바꾸기 위해 연방 헌법을 설계하면서 권력분립과 균형, 상호견제에 각별한 공을 들였다. '연방주의자논집'(Federalist Papers)에 잘 드러나 있는 그들의 생각은 지금 봐도 놀라우리만큼 실용적 통찰력을 갖췄다. 당시로서는 어디에도 전례가 없었던, 자유주의적이고 공화주의적인 연방제 민주국가의 정부 형태를 불과 100일도 안 돼 집단지성의 힘으로 만들어냈다. 미연방 헌법의 대통령제 정부 형태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 영감과 자극을 주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정신과 근간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점에서 대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연방대통령의 막강한 힘을 제어하기 위해 미국 헌법의 아버지들이 고안해낸 장치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연방국가는 그 자체로 고강도 분권국가다
첫째, 연방제. 미국 연방대통령은 연방정부의 행정수반일 뿐 주정부마다 행정수반, 주지사가 따로 있다. 연방정부는 오직 국방과 외교, 주간통상에 관한 업무만 수행할 수 있고 나머지 국가의 일은 모두 주정부의 고유권한에 속한다. 미국의 50개 주정부는 예외 없이 대통령제 정부 형태를 갖는다. 단방국가처럼 주지사를 직선으로 뽑아 행정부를 구성하고 양원제의회와 독립사법부를 운영한다.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업무와 권한이 엄격히 구분되는 연방국가는 그 자체가 엄청난 분권국가다.
연방국가와 비교할 때 단방국가의 모든 헌법기관들은 엄청나게 집중된 권력을 보유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대통령은 미국의 연방대통령과 주지사 50인이 나눠 가진 모든 집행권을 한 몸에 보유한다. 마찬가지로 한국국회도 미연방의회와 50개 주의회로 분산된 입법권한을 한 몸에 가지며 한국법원도 미국에선 연방법원과 50개 주법원으로 분산된 사법권한을 독점한다. 결과적으로 우리국민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대법원장에 대해 느끼는 권력의 무게감은 연방정부나 주정부의 각 헌법기관에 대해 미국시민이 느끼는 권력의 무게감에 비해 단순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압도적이다.
상대적으로 집중된 정부권력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 단방국가는 연방국가보다 주권자 권리와 권력분립 장치를 더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만 거대권력의 억압과 부패로부터 시민의 자유와 안녕을 지키는 게 가능하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정부개헌안이 국민발안권과 국민소환권을 신설하고 정치기본권과 사회경제권을 선진화하며 주권자 권리를 강화한 부분은 바람직하다. 아울러 이번에 대통령과 국회의원,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 통제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하는데 이 부분은 많이 아쉽다.
같은 단방국가라 할지라도 지방정부에 주어진 권한의 크기에 따라 국가기관, 특히 대통령의 권력집중도에서 큰 차이가 난다. 단방국가 중에서도 지방정부의 권한이 준연방제적 수준으로 강화돼 우리지자체보다 훨씬 강한 데가 많다. 2001년에 지방자치분권개헌을 한 이탈리아가 대표적인 보기다. 미국의 카운티와 시티 등 지방정부는 자체 경찰과 법원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시도지사보다도 강력한 자치권한을 보유한다.
미국에서는 국가권력이 연방정부, 주정부, 지방정부로 3중 분권화된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권력이 중앙정부 하나에 집중돼 이번 개헌에서는 주권자권리 강화차원과 국가권력의 수직분산 차원에서 지방자치분권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인 과제였다. 정부개헌안은 제1조3항에 지방분권국가 지향성을 천명하고 국가자치분권회의를 신설하며 자치분권의 4대 요소(입법권/행정조직권/재정권/과세권)을 강화함으로써 본격적인 지방자치분권을 향한 큰 물길을 튼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연방제적 수준의 지방자치분권에는 여전히 한참 못 미친다.
미국 대통령은 의회의 강력한 견제를 받는다
둘째, 미국연방대통령은 매우 강력한 의회의 견제를 받는다. 미국연방의회의 개헌권한과 입법권한, 인사통제권한과 예산통제권한, 국정감사권한과 국정조사권한은 우리나라국회에 비해 몹시 강력하다. 이 부분이 우리나라대통령제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미국 대통령은 법안발의권과 개헌발의권을 갖지 못한다
미국연방의회는 권력분립에 충실하게 입법권을 독점한다. 연방대통령과 주지사는 입법이 필요하면 입법안 작성부터 반드시 여당의원에게 기대야 한다. 정부가 법률안제출권을 갖기 때문에 예산과 인력이 수반되는 중요한 법률안이 예외 없이 정부법안으로 추진되는 우리나라와는 천양지차다. 더군다나 미국 의회는 법률안을 상세하게 만들어서 대통령령이나 부령 등 위임입법을 최소화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실질적으로 중요한 사항들을 대통령령 등 정부입법에 위임한다. 국회는 대통령령이 위임취지대로 만들어졌는지 심사할 권한도 제대로 없다.
미국 대통령은 우리 대통령과 달리 입법발의권뿐아니라 개헌발의권도 없다. 주지사도 동일하다. 미연방 헌법은 연방의회나 헌법회의(constitutional convention)에 개헌발의권을 부여하고 주헌법도 주의회나 헌법회의에 발의권을 부여한다. 18개주는 국민의 개헌발안권도 인정한다. 의회의 나태나 정쟁으로 말미암아 개헌적기를 놓쳐서 국민이 피해 보지 않도록, 개헌필요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의 주기적 실시나 아예 헌법개정위원회의 주기적 운영을 헌법으로 의무화한 일부 주의 사례도 참고할만하다.
-미국 대통령의 고위직 인사에는 상원의 동의가 필수다.
연방헌법상 미국 연방대통령은 연방정부의 모든 관급(officer )자리를 임명할 때 상원의 조언과 동의를 받아야 한다. 다만 의회가 법으로 예외를 설정한 하위 관급만 예외다. 다시 말해서 대통령은 연방정부의 고위직 인사권을 상원의 동의를 받아 행사한다. 모든 부처의 장관, 부장관, 차관, 차관보 등 정무직은 물론 독립위원회의 위원(장), 대사, 장군, 법관 등이 포함된다. 대통령의 제왕적인사권 행사가 불가능하게 처음부터 대못을 친 셈이다.
2016년 현재 미국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연방 '행정부' 공직은 7000개에 달한다. 상근직이 4000, 비상근직(각종 위원)이 3000쯤 된다. 이중에서 1100여 개의 고위공직 인사에 대해서는 상원의 동의가 요구된다. 백악관의 고위간부자리 350여 개와 고위공무원단의 10%(800여 개)까지 가능한 개방직공무원, 그 아래의 1400여 자리(스케줄C자리. 주로 정책보좌 및 홍보자리)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상원의 동의 없이 임명할 수 있다. 그밖에도 미국 대통령은 연방대법원장을 위시한 총 890개의 연방법관직에 대해 상원의 동의를 받아 인사권을 행사한다. 다만 연방법관자리는 종신임기제라 사망이나 사임으로 결원이 생길 경우에만 대통령이 지명할 수 있다.
대통령이 상원의 동의를 받아야 임명 가능한 1100여개의 상근 행정부고위직은 대체로 여섯 범주로 나눠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행정각부(현재 15개부)의 차관보급 이상 장차관급과 법무실장, 소속기관장 등 총350여명. 둘째, NASA 등 규제무관 독립행정기관의 장 등 총120여명. 셋째, 규제행정기관의 장 등 총130여명. 넷째, 연방검사와 연방마샬(법원경찰) 총200여명. 다섯째, 외국파견 대사 총150여명. 여섯째, 미연방준비이사회의 비상근이사 등 160여 비상근위원자리.
연방대통령뿐만 아니고 주지사도 똑같은 구조로 인사권을 행사한다. 미국 연방정부와 주정부에서 법집행책임을 맡은 모든 정무직과 법정기관의 장, 합의제기관의 위원(장) 자리는 상원의 동의를 받아야 임명할 수 있을 뿐 대통령이나 주지사가 단독으로 임명하지 못한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캘리포니아주지사가 4년 임기 중에 임명하는 법집행자리가 1000개가 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의 대통령과 주지사는 자신의 공약과 정책을 실현할 수 있도록 모든 관료기구의 지도부를 완벽하게 정치적으로 장악한다. 방대한 관료기구에 대한 대통령과 주지사의 우위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셈이다.
한국대통령이 임명가능한 정무직이나 고위공직의 수는 미국의 연방대통령이나 주지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관료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쉽지 않고 관료제에 얹혀가기 쉽다는 뜻이다. 반면에 한국대통령은 국무총리를 제외한 행정부 내의 정무직 기타 고위공직 임명권을 국회동의를 얻지 않고 일방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 장관후보자와 장관급위원장에 대해서는 국회법상 인사청문회가 실시되지만 그 결정에 구속력이 없어서 대통령이 청문회결과와 상관없이 임명을 강행한다.
한국 대통령은 미국에선 연방대통령과 50개주지사들이 나눠가진 고위공직임명권을 혼자서 행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대통령에 대해서는 연방국가 미국보다 더 과감하고 강력한 대통령인사권 통제장치를 가동해야 함에도 완전히 거꾸로다. 정부개헌안은 이런 문제의식이 없다. 국무총리를 제외한 모든 행정부고위직을 대통령이 국회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임명할 수 있게 정한 건 그래서다.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를 퇴짜 놓을 수 있는 막강한 인사권한을 미국상원이 나눠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도 공직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고위직인사의 문을 여는 지명권을 대통령이 갖고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모두가 대통령에게 줄을 서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우리헌법은 장관이라는 행정부최고공직의 제청권(지명권)을 몽땅 국무총리한테 준다. 하지만 이를 국회동의를 안 받는 이유로 삼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총리의 각료제청권은 종이위의 권한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의회의 입장에선 장관을 대통령과 총리 중 누가 지명하건 차이가 없다. 중요한 건 입법부가 만든 법에 대해 집행권을 맡길 장관(급)의 기관장이나 합의제기관의 위원(장)에 관한 한 입법부가 전문성과 도덕성을 심사하고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의 가장 큰 차이는 둘 다 행정수반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통령은 행정부의 모든 고위직 인사권행사에 의회의 동의를 받아야하는 반면 한국 대통령은 심지어 장관(급)인사마저 자유롭게 단행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만약 한국 대통령의 행정부 고위공직 인사에 대해 미국식 의회통제를 도입하면 제왕적 대통령의 큰 몸통은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미연방상원이나 주상원은 대통령이나 주지사가 지명한 후보에 대한 동의거부건수가 무시해도 좋을 만큼 낮다. 특별한 하자가 없는 이상 그만큼 대통령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역지사지의 문화가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아무튼 정부 개헌안이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에 대한 국회동의대상을 단 한자리도 늘리지 않은 걸 보면 지금의 청와대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든가 극복의지가 약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 제왕적 대통령은 이미 사라졌다고 자부하기 쉽다. 미국 대통령처럼 1100개도 넘는 행정부의 모든 고위직에 국회동의를 요구받진 않더라도 장차관(급) 인사와 권력기관장 인사에조차 국회 동의를 요구받지 않는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일은 민망한 일이다.
-미국 대통령은 장관직을 상하원 의원에게 겸직시키지 못한다
대통령의 인사권 통제와 관련하여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는 미국 연방대통령이나 주지사는 상하원 의원을 장차관(급)으로 겸직시킬 수 없다는 점이다. 행정부에서 봉직하려면 미국 상하원의원은 반드시 먼저 의원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반면에 우리 대통령은 국회법에 의해 국회의원을 얼마든지 장관으로 겸직시킬 수 있다. 여당 국회의원들은 누구든지 장관 임용을 바라기 때문에 국회의원의 장차관 겸직허용은 대통령의 여당장악력과 국회장악력을 현저히 높이는 수단이 된다. 대통령제 정부 형태에서는 의회와 행정부가 한 몸이 아니고 독립된 지체이므로 양자의 경계를 허무는 국회의원의 행정부고위직 겸직은 이번 기회에 헌법으로 금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형적인 의회제정부 형태를 채택하면서도 국회의원의 장차관 겸직을 금지한 스웨덴 같은 나라도 있는 판이다.
-미국에서 예산은 법률이다
미대통령과 행정부는 의회를 통과한 예산안을 사정변경이나 행정편의를 이유로 입맛에 맞게 수정, 변경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미국 의회가 예산안을 매년 법률로 의결하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개헌안에서 예산법률주의를 도입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정부안에서도 여전히 국회는 감액권한만 있을 뿐 증액권한은 행정부의 동의가 있어야만 행사 가능한 한계가 있다.
-미국에선 감사원이 의회 소속이다
의회의 과세권과 예결산권에서 파생되는 권한이 국정감사권한이다. 특히 행정부의 예산사용에 대한 회계감사권한이 그렇다. 우리나라에선 감사원이 대통령소속이다. 당연히 대통령의 중점공약사업에 대해 제대로 된 감사를 기대할 수 없었다. 미국의 연방의회 소속 회계감사원은 행정부로부터 100% 독립성을 갖기 때문에 전혀 다르다. 행정부의 입장에서는 가장 무서운 존재가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의회소속 회계감사원이다.
이번 정부안이 감사원을 대통령소속에서 독립시키기로 한 점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안이 감사원을 국회소속으로 두지 않고 3부 구성주의에 의해 독립시키는 점과 감사원장을 대통령이 지명하는 점에 대해서는 찬동할 수 없다. 3부 구성주의는 대통령의 과반수 지배력을 보장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또 다른 얼굴이고 피감사기관의 수장이 감사기관의 수장을 지명하는 것이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3부구성주의의 문제와 대안에 대한 상세한 소개는 후속 글에서 진행한다.
-미국에선 국정조사청문회가 상시 열린다
미국 의회에선 인사청문회는 물론이고 주요 입법이나 정책, 사건과 관련하여 조사청문회가 끊이지 않는다. 정부의 비리의혹에 대한 야당의 국정조사요구를 여당이 기를 쓰고 막아내는 우리나라국회와 달리 청문회소집에 과반수 의결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조사청문회에 필요한 자료제출 거부, 출석 거부, 위증도 상상하기 어렵다. 의회모독죄로 엄격한 형사처벌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런 사항은 이번 기회에 국민의 관점에서 헌법에 직접 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미국 대통령은 종신임기 사법부의 강력한 통제를 받는다
셋째, 미국 연방대통령은 종신임기제로 매우 강한 독립성을 자랑하는 막강 사법부의 통제를 받는다. 연방대법관은 말할 것도 없고 연방고법과 연방지법의 모든 판사는 종신임기를 보장받는다. 자신을 지명한 대통령보다도 훨씬 긴 임기를 보장받기 때문에 연방법관은 그로부터도 자유롭다. 대기업과 노조, 이익단체와 여론의 압력으로부터도 최대한 자유로울 수 있다. 취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기세등등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공약관련 행정명령을 일개 연방지법판사가 일거에 무효화시킬 수 있는 힘은 종신임기에서 나온다. 미국법관은 대법원장이나 소속법원장의 눈치를 조금도 보지 않는다. 자신에 대해 전보, 승진, 제청, 징계 등 인사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대법원장은 전국의 모든 법관에 대해 전보, 승진, 제청, 징계 등 인사전권을 보유하는 제왕적대법원장이다. 직급을 막론하고 모든 법관들이 대법원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그렇기 때문에 대법원장을 임명한 대통령은 정권의 중요한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서 대법원장의 이심전심 협력을 믿을 수 있었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의 직권남용과 적법절차 위반을 사법부의 사후통제로 걸러내기 어려웠던 이유다.
이번 대통령 개헌안에서 대법원장의 대법관제청권을 그대로 존치한 것은 큰 문제다. 대법원이 제청권자인 대법원장과 그의 제청을 받은 대법관들로 구성되는 이상 대법원장의 제왕적 지위를 헌법적으로 보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대신 대법관 회의와 대법관추천위원회를 제왕적대법원장의 극복기제로 삼은 점도 미흡하다. 상세는 제왕적 대법원장 제도의 혁파를 위한 후속편에서 밝힌다.
미국 대통령은 임기 정중앙에서 중간심판총선을 치른다
넷째, 미연방대통령은 임기 2년 경과시점에 빠짐없이 전국적 규모의 연방총선과 주 총선을 맞이한다. 미연방대통령은 2년 후의 총선을 언제나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중간심판선거는 대통령의 권력남용유혹에 대해 엄청난 억지력을 발휘한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의 임기를 4년으로, 연방하원의원 임기를 2년으로 정할 때 이미 중간심판선거를 제도화했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의 성적에 따라서 판세가 크게 출렁이지만 대체로 중간선거에선 여당이 불리해서 지난100년 간 여당이 의석수를 늘린 게 서너 번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촛불시민혁명의 성공으로 대통령선거일이 12월에서 향후 3월로 9개월 앞당겨진 바람에 앞으로 4년 연임 대통령제가 도입되면 2022년의 3월대선과 2024년의 4월총선이 4년 주기로 계속된다. 결과적으로 정확하게 대통령임기 절반경과시점에 중간심판 총선이 제도화되는 셈이다. 5년 단임제 시절에도 대통령임기 중 총선을 치렀으나 대통령임기 기준으로 매번 시기가 달라져 임기 정중앙 총선이 불가능했다. 중간선거의 제도화는 촛불시민혁명의 부산물로 갖게 된 바람직한 대통령권력억제책이다.
어떤 대통령도 임기 초반 2년을 잘 수행해서 총선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싶겠지만 미국의 중간선거 100년사를 돌아보면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재선 대통령은 물론이고 초선 대통령도 중간선거에서 8할은 패배(여당의석 감소)를 경험했다. 그 결과 여소야대 의회로 반전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런 부분을 보강하고 국회와 정당에 대한 심판을 강화하기 위해서 나는 국회의원 4년 임기를 줄이지 않고 2년마다 국회의원 1/2을 새로 뽑을 수 있는, 2년 주기 반쪽총선 실시안을 대안으로 내놓을 생각이다.
미국 대통령제는 3부 구성주의를 알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미국 헌법과 미국 의회는 정치적 중립성이 특별히 요구되는 헌법기관이나 법률기관을 구성할 때 3부구성주의라고 해서 대통령과 의회, 사법부(대법원장이나 대법관 회의)에 동일하게 1/3씩 구성지분을 주는 법이 없다. 3부구성주의는 국회의 여당 몫까지 합해서 대통령의 실질적 지배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대법원장의 권한을 사법부바깥까지 확장시켜주며 끈끈한 협력을 도모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존재양식이자 작동방식이다. 만약에 미국 헌법의 아버지들이 3자구성주의를 접했다면 국회권한축소장치이자 대통령권한확대장치로 대통령의 제왕화를 불러온다며 일축했을 게 틀림없다. 미국에는 연방차원이건 주차원이건 우리식 3부구성주의로 만들어진 헌법기관이나 법률기관이 전무하다. 이번 대통령개헌안이 3부구성주의를 축소, 폐기하지 않고 감사원 독립방법으로 채택하며 확장한 데 대해 몹시 유감이다.
헌법상 권한만 비교해도 한국은 여전히 제왕적 대통령제다
미국의 대통령제와 한국의 대통령제를 제대로 비교하기 위해서는 위의 몇 가지 헌법제도 말고도 정치관계법이 만들어낸 정당제도, 선거제도, 정치자금제도, 지방자치제도 등을 본격적으로 비교해야 한다. 또한 정치문화와 경제체제, 사회제도도 깊이 있게 비교해야 맞다. 하지만 위의 단순한 헌법권한 비교만으로도 한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보다 권한은 많은 반면 견제는 훨씬 덜 받는다는 의미의 제왕적대통령이라고 결론 내려도 무방할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재생산해낸 우리나라의 입법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특징들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국정원의 갑질을 국회에 대해서도 보장해온 국정원법이라든가 법무부를 검찰의 하부조직으로 만들고 검찰조직을 사법부 대응조직으로 만들어서 차관급 검사장을 남설한 대통령령은 미국 같으면 상상도 못할 제왕적 대통령제의 법적 장치들이다. 그밖에도 선거법과 정당법, 방송법 등 정치관계법에도 제왕적대통령을 직, 간접적으로 받쳐주는 법적장치가 많다. 한국의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과 달리 헌법과 법률로 보장된 제왕적대통령이라는 뜻이다.
그뿐 아니다. 한국 대통령들은 정당한 권한행사로 그치지 않았다. 국정원, 검찰, 방송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부리고 부당한 정치개입을 일삼았다. 이 모든 것이 불법이고 편법이었으나 제왕적 대통령에게 누구도 NO하지 못했고 그래서 헌법과 법률이 허용한 것보다도 더 강력한 제왕적 권력을 누렸다. 그렇기 때문에 제왕적 대통령제의 극복을 위해서는 권력기관의 과거청산과 법제개혁이 절대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정부 개헌안은 대통령 권력의 핵심, 제왕적 인사권을 방치한다
정부 개헌안은 대통령의 헌재소장 임명권을 박탈하고 감사원을 수중에서 독립시키며 특별사면권을 제한하고 예산법률주의를 도입한다. 이만큼의 대통령권한축소도 개헌안의 발의주체가 대통령이라는 사실과 개헌안이 당장 문재인 대통령 본인부터 적용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개헌안이 대통령권한의 핵심인 제왕적인사권을 건드리진 않은 건 큰 문제다. 특히 우리 헌정사를 흑역사로 점철한 군,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 통제원칙과 권력기관장 임명방식을 헌법에 규정하지 않은 것은 큰 실책이다. 단순과반수 국회동의를 넘어 아예 국회의 가중과반수(3/5이나 2/3)동의를 받게 해서 여야의 실질적 합의로 권력기관의 장을 임명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렇듯 여야의 역지사지를 제도화한다면 대한민국을 쳐다보는 민주화투쟁국가들에게 좋은 모범과 전거를 줄 수 있다.
딜레마는 국회권한 강화에 일반시민들이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나는 우리국회의원이 어떤 점에서 제왕적국회의원인지를 후속편에서 밝히고 어떤 통제방안을 가동해야할지 모색할 예정이다. 대통령(정부)와 국회, 사법부 등의 조직과 운영을 둘러싼 현행 헌법과 법률, 의식과 관행은 모두 오랜 세월에 걸쳐 제왕적 대통령제에 최적화되었다고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 구조 개헌의 목표를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에 두는 경우에도 국무총리 임명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야권의 입장과 대통령 권한축소에 초점을 맞추는 정부의 입장은 모두 지나치게 협소하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극복 방안은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주권의 대의권력 통제방안, 대의권력 상호간의 권력분립과 견제균형방안, 나아가서 국가권력의 시장권력 제어 방안이 종합적으로 검토되어야한다. 예를 들어 우리 국민의 대통령제 선호에는 재벌 견제를 겨냥한 부분이 작지 않다. 사회경제민주화가 지체돼 삶의 현장에 못된 작은 제왕(갑)들이 득시글거리기 때문에 정의로운 큰 제왕이 눌러주기를 기대하는 심리도 없지 않다. 이런 사회심리까지 목소리를 얻어 국민의 집단지성으로 만들어낸 헌법만이 국민헌법이 될 수 있다.
어쩌면 개헌보다 더 중요한 게 개헌취지를 살릴 개혁입법프로그램이다. 개헌합의는 개혁입법의 목록과 대강에 대한 합의까지를 의미한다. 만약 시간에 쫓겨 정부안으로 개헌할 경우 두 가지 염려를 불식시킬 수 있어야한다. 하나는 4년 연임제가 대통령의 임기를 사실상 8년으로 연장하는 효과가 있어서 권력형 부정부패가 늘어날 위험성이다. 다른 하나는 30년 동안 5년 주기로 진행되던 대한민국의 일대 개혁과 혁신 작업이 사실상 8년 주기로 연장됨에 따라 국가개혁과 혁신속도가 늦춰질 위험성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배후법제와 작동기제, 극복방안에 대한 우리사회의 좀 더 세밀한 이해와 풍부한 토론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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