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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오세훈 '질긴 악연'…"세번 농락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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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오세훈 '질긴 악연'…"세번 농락당했다"

홍준표의 '배신감'엔 이유가 있다?

이번 서울시 주민투표 무산은 정치권에 복잡한 대차대조표를 남겼다. 단독 주인공이었던 오세훈 시장이 큰 타격을 입었지만, 강경 보수진영은 그를 '보수의 아이콘'으로 추켜세우고 있다. 이제 갓 쉰인 오 시장의 나이를 생각하면, 정치판 복귀를 위한 카드 한 장 정도는 남아있는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박근혜 전 대표 등은 머릿 속이 복잡해졌다. 누가 될진 모르지만 오는 10월 26일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당선되는 인물에게는 이번 주민투표 무산이 일생일대의 축복일 것이다.

그런데 엄청난 유행어를 만들어놓고도 엄청난 실점만 기록한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사실상~'의 주인공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다. 주민투표 정국의 조연으로 활약했으면서도 망신만 당한 홍 대표 입장에서는 오 시장과의 구원(仇怨)까지 곱씹을만 하다.

"오세훈에게 3번 농락당했다"는 홍준표

▲ 오세훈 시장으로 인해 큰 상처를 입은 홍준표 대표ⓒ프레시안
홍 대표는 26일 서울시당 당협위원장과 조찬간담회 자리에서 오 시장을 "국익이나 당보다도 개인의 명예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당인의 자세가 아니고 조직인의 자세가 아니다"고 맹비난했다.

당의 극구 만류에도, 이날 일방적으로 즉각사퇴를 결정한 오 시장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당 일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주민투표 적극 지원을 결단했던 홍 대표로선 배신감이 들 수밖에 없는 것.

홍 대표는 "오 시장한테 3번 농락당했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3번 농락'은 △당과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주민투표를 강행 △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연계 △10월 초 사퇴 약속을 번복하고 즉각사퇴를 결행 등이다. 당 지도부는 이들 사안에 대해 모두 강력 반대했지만 줄곧 오 시장에게 끌려 다녔다.

그리고 오 시장은 떠나버렸고 홍 대표에게만 엄청난 짐이 남은 것이다.

홍 대표 개인이 받은 상처는 엄청나 보인다. 오 시장 단 한 사람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차례도 제어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친박계나 박근혜 전 대표의 지원을 끌어낼만한 정치력을 발휘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25.7% 투표율은 사실상 오세훈 시장의 승리"라는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 홍 대표는 조롱거리가 되버렸다.

"25% 투표율이 '사실상' 승리라면 파리도 '사실상' 새", "유효 투표율 미달인데 '사실상' 승리라면 앞으로 선거 2등도 '사실상' 당선"로 불러야할 것", "등록금 25.7%도 사실상 전액 납부", "홍준표 의원은 임기 25% 이상 지났으니 사실상 임기종료" 등의 패러디가 봇물 터졌다.

이 중 홍 대표가 가장 속 쓰릴 만한 패러디는 "홍준표도 이제는 사실상 안상수"가 아닌가 싶다. 홍 대표 입장에선 "이게 다 오세훈 때문이다"고 이를 갈만한 것.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훨씬 더 많은 홍준표와 오세훈

홍 대표와 오 시장의 인연은 복잡하다. 입학은 다른 대학에 했지만 고대 법대를 졸업한 오 시장은 졸업년도로 따지면 홍 대표의 7년 후배가 된다. 사법고시도 선후배고 정계입문도 홍 대표가 4년 선배다. 초등학교만 다섯 군데를 옮겨 다녔던 홍 대표와 서울 삼양동 판잣집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오 시장 두 사람 모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신의 노력만으로 신분상승을 이룬 인물이다.

이 정도면 절친할 만한 이력이지만 두 사람 사이는 그렇지 못했다. 공통점도 많지만 차이점은 더 크기 때문이다.

홍 대표는 강력부, 특수부 검사를 지내면서 조직폭력배와 권력 핵심의 온갖 압력을 거부했던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세를 쌓은 반면 오 시장은 훤칠한 외모와 온화한 목소리를 무기로 TV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대중적 기반을 만들었다.

두 사람 다 부인과 열렬한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이지만 홍 대표는 고려대 앞 은행 창구의 호남 출신 고졸 여행원에게 다짜고짜 데이트를 신청해 결혼에 골인했고 오 시장은 유복한 서울대 교수의 딸과 캠퍼스 커플이었다.

정치권에 들어온 이후에도 홍 대표는 상대당 저격수로 고소 고발이라는 단어가 떨어질 날이 없었고 오 시장은 '개혁', '소장파'의 상징이었다.

2006년의 악연

이처럼 스타일이 워낙에 달라 같은 당에서도 큰 친분이 없었던 두 사람의 첫 고비는 지난 2006년 지방선거였다. 그 전 해부터 서울시장 출마 쪽으로 가닥을 잡은 홍 대표는 저격수 노릇을 마다치 않고 당에 헌신을 했다. 당시 경쟁자였던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과 불꽃튀는 각축을 벌였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강금실 전 법무장관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우면서 일은 꼬였다. '보랏빛 바람'이 맹위를 떨쳤고 홍 대표와 맹 장관 모두 여론조사 상으로 불리했다.

이런 와중에 장외에 있던 오 시장이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불과 16일 남겨놓고 등장한 것. 당시 오 시장은 매월 2000원 이상이면 되는 책임당원 당비를 2년 여간 미납한 것이 논란이 됐을 정도로 당과 거리를 두었던 인물이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만난 홍 대표는 "나는 한나라당에 입당한 이래 10년간 정권을 탈환하기 위해 당에서 폭로수 하라 하면 폭로수, 저격수 하라 하면 저격수 노릇을 해 왔다"며 "일부 소장파 의원들처럼 이미지나 가꾸면서 밖에서 우아하게 지낸 사람이 아니다"고 읍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 시장이 여론조사상의 압도를 바탕으로 맹형규 장관과 홍 대표를 멀지감치 떨어뜨리고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된 것이다. 이후 오 시장은 본선에서도 무난히 당선됐고 오늘에 이르렀다.

집권 후 두 번 도전 끝에 어렵사리 당권을 쥐고 '그 이후'까지 내다보던 홍 대표 입장에선 5년 만에 다시 오 시장에게 발목이 잡힌 것이다.

이런 까닭에 홍 대표는 26일 아침 "어젯밤 10시쯤 오 시장이 집으로 찾아왔기에 쫓아내면서 '앞으로 다시는 볼 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변화무쌍한 정치판에서 두 사람의 복잡한 인연이 홍 대표 말처럼 '이것으로 끝'일 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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