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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부, 대형유통업체 눈치보기 '졸속' SSM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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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부, 대형유통업체 눈치보기 '졸속' SSM 토론회?

[현장] 중소상인들 "발언권도 안 주면서 토론회냐" 반발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규제 방안을 담은 유통산업발전법 대체법안의 적합성을 검토하는 토론회가 16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렸다. 하지만 주최인 지식경제부가 해당 법안과 전문가 검토 의견 등의 자료를 배포하지 않는 등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은 채 토론회를 열었다. 이에 참관하는 중소상인들이 거칠게 항의하는 등 토론회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보여진다.


SSM이 친서민정책?


토론회에 앞서 중소상인살리기전국네트워크는 대한상공회의소 앞에서 SSM과 대형마트의 허가제 도입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15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승한 삼성테스코 대표이사가 "SSM은 친서민정책"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기업가로서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을 망각한 처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승한 대표이사는 한국체인스토어협회의 회장이기도 하다.

▲ 중소상인살리기전국네트워크가 16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앞에서 'SSM 규제 관련 전문가 대토론회' 참석에 앞서 SSM에 대한 개설 허가제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프레시안

전국네트워크는 토론회에서 논의될 유통산업발전법 대체법안이 중소상인의 요구와는 달리 등록제를 전제로 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생색내기식 대안을 폐기하고 허가제 도입을 핵심으로 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번 집회에는 김경배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회장과 최극렬 전국상인연합회 회장 등 중소상인 단체 대표와 이수호 민주노동당 최고의원, 신언직 진보신당 서울시당 위원장 등 야당 인사들까지 대거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최 회장은 "이번 토론회에 나서는 전문가들은 학자로서 서민들이 대기업들과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소신있게 제시했으면 한다"며 "전국상인연합회는 SSM 문제에 대해 중소상인들과 연합해 11월경 대규모 집회를 여는 등 정부에 우리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회장은 "SSM이 친서민 정책이라면 떳떳하게 개장할 일이지 왜 새벽에 개점을 강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서민을 위한 SSM이 왜 서민이 생업을 포기하게 만드는가"라고 지적하며 "1996년 유통시장 개방 이후 중소상인들은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룰'을 보장받지 못한 것이 이번 문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발언권 없는 토론회가 토론회인가"

전국네트워크는 집회를 마친 후 곧이어 열린 지식경제부의 토론회에 참석했다. 하지만 주최 측인 지경부가 토론 자료인 국회 지경위의 유통산업발전법 대안과 전문가들의 법적 검토 의견서를 배부하지 않고 참석자들의 발언권 역시 제한하면서 중소상인들이 격렬히 항의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이 때문에 2시에 시작될 예정이었던 토론회는 3시까지 연기됐다.

최극렬 회장이 중소상인을 대표해 "토론 과정을 지켜보기 위해 온 이들에게 최소한의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항의하자 지경부 관계자는 "애초에 대체법안에 대한 전문가의 검토를 비공개로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중소기업중앙회 등이 공개를 주장하면서 급하게 계획을 변경하느라 준비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대형 유통업체 측에서 추천한 토론자 6명이 대한스토어협회에 법적 검토 의견서를 제출하지 않아 지경부가 자료를 취합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항의는 더욱 거세졌다. 김경배 회장은 "토론 준비를 미처 끝내지 못했다면 양해를 구해야지 자료가 없다고 당당하게 나서면 안된다"며 "이런 토론회는 할 필요가 없으며 발언권도 없이 듣기만 하고 가라는 토론회를 더욱 필요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최극렬 회장 역시 "이름을 토론회가 아니라 전문가 의견 발표회로 바꾸라"고 거들었다.

급기야 사회를 맡은 이정희 한국유통학회장이 나서 "이번 토론회는 지난달 지식경제위원회가 법률적 검토과정을 거치라고 요청하면서 마련된 자리이기 때문에 검토의견이라는 것이 꼭 문서로 제공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며 "차후 국회에 문서로 제출된 검토의견을 참고해 여러분들의 의사를 국회에 따로 전달하면 된다"고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이 학회장은 "여러분들이 이해해 주지 못해 토론회가 무산되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결국 지경부가 지식경제위원회가 대안으로 제시한 유통산업발전법 조문을 참석자들에게 배포하기로 하면서 토론회는 예정시간을 한 시간 넘긴 3시에 가까스로 시작됐다.

▲ 최극렬 전국상인연합회 회장이 토론회장에서 참고 자료가 배포되지 않는 것에 항의하고 있다. ⓒ프레시안

"어느 나라가 국내법 만드는데 이렇게 WTO에 예민하게 반응하나"

토론회 1부에서 지경위 대체법안의 국제법적 검토를 맡은 6명의 토론자들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서비스협정(GATs) 조항의 위배 여부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대형마트 측이 추천한 전문가들은 법안에서 규정한 보호구역의 범위가 모호하고, 지자체에 위임된 조정 권한이 지나치게 막강해 WTO 조항에 위배될 소지가 높다고 주장했고, 중소상인 측이 추천한 전문가들은 규제가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인정될만한 조치라면 조항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맞섰다.

일부 토론자들은 이번 토론회가 단기간에 마련되는 등 심도 있는 토의가 진행될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불만을 제기했다. 중소상인 측 토론자로 나선 왕상한 서강대 교수는 발언에 앞서 "오늘같이 모욕감을 느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경위 대체법안에 대해 조문별로 검토해달라는 의견을 들은 바 없으며 법안의 적합성에 대한 검토만을 요청받았고 따라서 이에 대해 이미 저술한 책으로 검토 의견을 대신했다며"며 "이렇게 준비 안 된 상황에서 조문의 법적 타당성에 대해 논하는 것은 시간상 무리"라고 토로했다.

왕 교수는 또 "세계 어느 나라가 국내법을 만드는데 WTO에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한 적이 있나 싶다"며 "우리나라에서 국제통상법 전문가의 발언이 지나치게 중요시되는 경향이 있는데 단순한 직함이 아니라 심도 있는 연구와 발언의 근거를 따져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해 중소상인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국내법 전문가들이 참여한 토론회 2부에서도 토론 준비의 미흡함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중소상인 측 토론자로 나선 황희석 변호사는 "지식경제부라는 공적 기관이 주최하는 토론회에 자료집 하나 만들지 않는다"며 "기록 보존 차원에서도 자료집을 남기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질책했다.

토론회가 끝난 후 최극렬 회장은 "정부가 공개된 토론회 형식으로 의견 수렴을 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방청객들을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토론을 진행했다"며 "이번 토론회가 열린 취지를 살리지 못한 점이 참 유감"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은 "자료 배포 문제뿐 아니라 국내법과 국제법이 분리되지 않고 상호 간의 검토가 필요한 사항인데도 순서를 나눠 각 분야의 전문가들끼리만 토론하도록 한 구성 역시 문제점"이라며 "제대로 된 의견 수렴 과정이 다시 열리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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