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남긴 '마지막 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개시됐다. 오늘 밤 9시면 주민투표 성립 여부를 가르는 투표율이 발표된다고 하니까 굳이 긴 말을 할 필요는 없다. 그냥 지켜보는 게 순리다. 하지만 몇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 겠다. 주민투표에 부쳐 언론이 남기거나 전한 '마지막 말' 두 개다.
'조선일보'가 규정했다. 이번 주민투표는 "5000만의 '복지 틀'(을) 정하는 주민투표"라며 "서울 시민들은 자신이 투표를 하지 않으면 기권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복지에 표를 던지는 선택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투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궁금하다. 만에 하나 투표율이 33.3%에 미달돼 주민투표가 성립되지 않으면 '조선일보'는 이를 보편적 복지를 추인한 것으로 인정할까? 5000만의 '복지 틀'이 결정된 것으로 인정할까?
'한국일보'가 전망했다. 투표율이 20% 초반을 기록하면 여당은 내홍에 빠지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즉시 사퇴해 10월 보궐선거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전망했고, 투표율이 33.3%에 근접하면 여야가 난타전을 벌이면서 오세훈 시장이 9월 말까지 시장직을 유지할 공산이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주민투표 성립과 불성립에 따른 정국 시나리오를 짜는 건 그렇다 쳐도 이런 식의 시나리오까지 왜, 굳이 짜야 할까? 오세훈 시장의 패배에도 '질'이 있는 걸까? 뉴스를 만들려는 언론의 의도는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의미없다. 투표율 33.3%는 '최소' 요건이다. 이 '최소' 요건을 굳이 잘게 썰 이유가 없다.
박근혜의 기조는 '모호성'
글은 하나인데 해석은 제각각이다. 박근혜 의원이 미국의 외교전문 격월간지인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을 두고 언론마다 제 각각의 해석을 내놓았다.
'조선일보'는 "역대 다른 정부의 포괄적 대북정책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했다. 반면 '경향신문'은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많았다"고 했다. 극과 극의 해석이다.
언론의 색깔 차이에서 기인한 해석일까? 한쪽은 보수언론이라고 평가되는 곳이고, 다른 한쪽은 진보언론을 자처하는 곳이어서 이렇게 상반된 해석을 내놓은 걸까? 그렇지가 않다. 보수언론 내에서도 해석이 갈렸다.
'동아일보'는 경계했다.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꼽히는 '신뢰'를 통해 꼬일 대로 꼬인 북한 문제를 풀겠다는 비전을 제시했지만 구체적인 신뢰구축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신뢰할 만한 억지, 끊임없는 설득, 효율적인 협상전략을 적절히 조합하라는 주문만으로는 DJ와 MB가 노정한 대북정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고 했다. 반면 '중앙일보'는 호평했다. "지난 20여 년 사이 역대 정부 대북정책의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을 모두 짚고 이를 함께 아우르는 대북정책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정책논의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가 가능하다"고 했다.
왜 이렇게 갈리는 걸까? 무엇이 언론의 색깔 차이조차 무의미하게 만드는 걸까? 다른 방법이 없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원전'을 직접 보는 수밖에 없다.
박근혜 의원의 대북정책 기조는 '신뢰외교'와 '균형정책'이다. '신뢰외교'는 "국제적 규범에 근거, 남북한이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를 이행하게 하는" 것으로 이를 위한 2대 원칙으로 "북한은 한국 및 국제사회와 맺은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하며, 평화를 파괴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확실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들었다. '균형정책'은 "북한에 단호한 입장을 보여야할 때는 더욱 강경하게 대응하고, 동시에 협상을 추진할 때는 매우 개방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까 언론이 왜 제각각의 해석을 내놓았는지 그 연유를 헤아릴 수 있다. 아무리 '꿈보다 해몽'이라지만 그건 '꿈'이 선연히 기억될 때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박근혜 의원의 대북정책엔 그 구체성이 없다. 오히려 모호성이 기조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전에 발표했던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와 똑같이 포괄적 당위만 제시했을 뿐 구체적 실천방안은 제시하지 않은 것이다.
* 이 글은 '미디어토씨'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편집자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