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가 그렇게 보도했다. "오 시장 측근들에 따르면 청와대의 레임덕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와 10월 재보선의 부담을 고려해 사퇴 시기는 한 달 이상 미룰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는 좀 더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20일 밤 김황식 국무총리, 홍준표 대표, 임태희 대통령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당정청 9인회동에서도 이 같은 의견(사퇴 시점 연기)이 다수였다고 한다"며 "오 시장 측이 '(설령 사퇴하더라도) 9월 국정감사까진 마무리해서 10월 보선은 없도록 하겠다'는 뜻을 전달해 왔다"는 정두언 여의도연구소장의 전언을 전했다.
여권 지도부는 물론 오세훈 시장 본인까지 사퇴 시기를 뒤로 미루려는 이유는 하나, 보궐선거 때문이다. 오세훈 시장이 9월 30일 이전에 사퇴하면 10월 26일에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열리지만 10월 1일 이후에 사퇴하면 내년 총선 때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함께 치러지기 때문이다. 즉 10월에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져 한나라당이 패배하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시간을 질질 끌 거라는 얘기다.
▲ 오세훈 서울시장이 어제 주민투표와 서울시장직 연계 방침을 밝히며 울먹이고 있다. ⓒ연합뉴스 |
꼼수다. 사퇴 시점을 질질 끄는 건 전형적인 꼼수다. 주민투표 결과와 시장직 연계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을 보이고 무릎까지 꿇은 오세훈 시장의 모습과는 대비되는 볼썽사나운 꼼수다.
그럼 오세훈 시장이 죽는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죽는다. '조선일보'는 오세훈 시장이 주민투표에서 패배하더라도 "보수의 가치와 원칙을 지켜낸 대표 아이콘이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고 전망했지만 그건 전망이 아니라 희망에 가깝다. 오세훈 시장이 기어코 사퇴 시기를 뒤로 미루면 그는 "원칙"을 져버린 사람이 된다. '보수 아이콘'이 아니라 '식언 아이콘' 이미지만 뒤집어쓰게 된다.
그래서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 오세훈 시장이 정말 시간을 질질 끌지 의아해진다. 주민투표 패배로 치명상을 입은 자신이 마지막 숨통마저 스스로 끊으려 할지 궁금해진다. 여권 지도부의 희망을 오세훈 시장의 계획으로 둔갑시켜 언론에 흘린 게 아닌지 두리번거리게 된다. 보수언론마저 전하고 진단하지 않는가. "여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주민투표에 졌는데 한 달 이상 더 버티라는 건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중앙일보)고, "주민투표에 서울시장직을 건 이상 시간을 늦출 명분이 약하(다)"(조선일보)고 하지 않는가.
한데 마찬가지다. 설령 시간 끌기 시나리오가 오세훈 시장 본인의 구상이 아니라 여권의 압박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오세훈 시장은 두 번 죽는다. 오세훈 시장이 여권의 압박마저 뿌리치고 주민투표 패배와 동시에 시장직을 던져버리면 여권의 '진노'가 극에 달할 것이고 그가 설 땅은 면에서 점으로 축소된다.
이렇게 보니 오세훈 시장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여권을 의식해 시장직 사퇴 시점을 미루면 자신의 이미지에 사형선고가 내려지고, 여권의 압박을 뿌리치고 시장직 사퇴 시점을 당기면 자신의 입지에 퇴거명령이 내려진다. 어떤 경우에도 훗날을 기약할 수 없게 된다.
기약없는 싸움을 시작한 대가는 기약없는 내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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