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및 명예훼손 협의로 진행 중인 재판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2007년 검찰이 공소를 제기해 4년 넘게 진행된 이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지난 5월 사건을 중앙지법 합의부로 파기 환송했다.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일부 유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낸 것.
대법원의 판단은 적절한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민주주의법학연구회의 공동 주최로 17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 "노회찬은 무죄다"에서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쉽게 말해 "대법원은 통신비밀의 보호에는 아주 철저하고 명예훼손죄의 성립은 매우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다"(김용원 법무법인 한별 대표 변호사)는 것이다.
보도자료 배포는 되고 인터넷 게재는 안 된다?
제일 논란이 되는 것은 이른바 인터넷 홈페이지 게재 행위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다.
대법원은 노회찬 고문이 삼성 X-파일과 관련해 발언한 내용을 정리해 보도자료로 기자들에게 배포하는 행위는 면책특권의 대상이 되는 직무부수행위에 속하지만, 같은 내용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제16조 제1항2호의 위반이라고 봤다.
그러나 서보학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이자 경희대 교수는 "두 개의 행위 모두 면책특권 대상이 된다"고 반박했다. 서 교수는 "오프라인의 보도자료 배포 후 내지는 동시에 인터넷에 같은 자료를 게재하는 것은 일상적인 시대의 변화에 따른 당연한 추세"라며 "같은 내용을 알리는데 보도자료는 허용되고 인터넷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논리는 설득력도 없고 규범적으로 정당화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하물며 대법원도 국민들에게 재판진행상황과 판결문을 알리고 사법행정업무를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지 않냐"며 "대법원은 과거의 인식에 머물러 국회의원의 직무부수행위에 포함될 내용과 범위를 잘못 판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8년 전 사건은 공적 관심이 아니다?
대법원이 사건의 발생 시점과 공개 시점 사이의 8년이라는 시간차를 거론한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대법원은 X-파일로 공개된 사건이 공개 시점으로부터 8년 전에 있었던 일이므로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정당행위로 인정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쉽게 말해, 오래 전 일이라 그 사건을 공개하는 것의 공익적 효과는 없다는 얘기다.
서 교수는 "이런 논리대로면 이미 한번 지나간 사건은 아무리 중요한 인물의 중대한 불법행위라 할지라도 덮고 넘어가는 것이 타당하다"며 "그런데 이것이 과연 국민 다수의 건전한 법의식과 윤리관에 맞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또 사건에 등장하는 기업인, 언론인, 검사들은 당시에도 문제의 기업과 언론사, 검찰에서 여전히 중요한 요직을 맡아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었다"며 "그런데 이런 공인들이 관련된 중대한 불법행위가 8년 전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고 볼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대법관 다수의 법의식과 윤리의식의 건전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 번 언론에 나오면 다시는 누구도 거론해서는 안 된다?
대법원이 이미 언론 보도로 공개된 것을 또 공개했다는 사실을 유죄의 근거 중 하나로 들고 나온 것도 논란거리다. 대법원은 "(이 공개행위의) 공익적 효과는 이미 언론의 보도를 통해 상당 부분 달성된 바로서 위 대화의 내용이 이를 공개하지 아니하면 공익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한 경우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노회찬 고문의 국회 상임위 발언 이전에 MBC 등의 보도로 X-파일의 내용이 상당 부분 알려졌는데 왜 굳이 다시 같은 내용을 언급했냐는 얘기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기준에 따르면 통신비밀을 침해하는 공개행위가 거듭될수록 더욱더 정당행위로 인정되기 어려운 아이러니가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즉, "한 번 언론에 공개되고 나면 누구도 다시 거론해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비상식적 결론"이라는 것이다.
이호중 교수는 "이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하는 반헌법적인 해석론"이라며 "논증은 반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일단 언론에 공개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그 내용이 공적 토론의 장에 진입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이미 공적 토론의 장에 던져진 내용에 대해 더이상 통신비밀의 보호라는 미명 하에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거나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재정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도 "관련 사실의 대부분이 공개되었다는 확정사실은 판결의 논지 같이 정당행위 요건을 배제하는 근거로 사용될 것이 아니라 무죄판단에 결정적인 기여사실이 되었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노회찬의 '삼성 X-파일 사건' 경과는? 노회찬 고문은 2005년 8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 앞서 삼성그룹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전현직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했다. 1997년 9월 중앙일보 홍석현 당시 사장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비서실장 이학수 씨가 호텔 일식집에서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을 국가안전기획부 도청조직이 몰래 녹음한 것이 그 근거였다. 2007년 검찰은 이 사건을 불구속 기소했다. 불법적인 방법으로 도청한 파일의 내용을 공개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했으며 해당 검사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였다. 방식만 놓고 보면 최근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이 받고 있는 혐의와 동일하다. 한 의원은 '누군가'가 몰래 민주당의 비공개 최고위원회 회의를 녹음한 내용을 입수해 공개했고 경찰은 관련 사건을 현재 수사 중이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이 사건에 대해 16일 "(당 대표실을 도청한 의혹을 받고 있는) KBS 모 기자를 참고인으로 한차례, 피의자로 두 차례 소환 조사했지만, 물증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도청 내용을 공개한 한선교 의원은 경찰의 출석 요구에도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반면 노회찬 고문은 2009년 2월,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 받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단독 재판부는 노 고문과 관련된 혐의에 전부 유죄를 선고했다. 같은해 12월 서울중앙지방법원 합의부는 1심을 뒤집고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지난 5월 대법원은 "보도자료를 홈페이지에 게재, 통신비밀을 공개한 행위는 유죄"라며 일부 유죄 취지로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사건을 돌려 보냈다. 역시 같은 X-파일을 입수해 공개했던 문화방송(MBC)의 이상호 기자는 1심에서는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2심과 3심에서 모두 유죄 선고가 내려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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