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만 '나 홀로 낙관'
이종현 서울시 대변인이 수학 답안지를 제출했습니다.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 부재자투표 접수 결과 신고 건수가 10만 2831명으로 나온 걸 놓고는 "투표율 33.3%를 무난히 넘길 것으로 본다"고 풀이했습니다. 이종현 대변인의 풀이 공식은 이런 겁니다.
"공직 선거가 아닌 정책 투표임에도 10만 명이 넘는 시민이 부재자투표 신고를 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사안이 국가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럼 이 답안에 대한 채점위원들의 평가는 어떨까요? 아주 박합니다. '경향신문'은 "이번 주민투표는 여름이라는 선거철과 선거 내용에 대해 학부모가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유권자 계층이라는 점 등에서 2008년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 선거 때와 여러모로 비슷하다"고 전제한 뒤 "선거일이 평일이었던 당시 투표율은 15.4%"였다고 환기시켰습니다. 당시 부재자 신고인수 비율이 1.5%로 이번의 1.2%보다 높았다는 사실과 함께요. 한 마디로 서울시의 풀이는 '꿈보다 해몽'이라는 겁니다.
너무 일방적인 평일까요? '경향신문'이 평소 주민투표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를 보여 온 만큼 서울시와 마찬가지로 '보고 싶은 대로' 보고 평한 것일까요?
그럼 이건 어떨까요? 주민투표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 온 보수언론의 평입니다.
'중앙일보'도 똑같이 보도했습니다. '경향신문'과 마찬가지로 "휴일이 아닌 평일에 치러진 2008년 7월 교육감선거 때는 11만 8299명이 부재자 신고를 했지만 투표율은 15.5%에 그쳤다"고 보도했습니다.
'동아일보'는 한 발 더 나아가 '우려'했습니다. "서울시는 당초 15만 명가량이 부재자 신고를 할 것으로 기대했다"며 부재자 신고인수 비율이 1.2%에 불과한 것으로 나오자 "서울시에 비상이 걸렸다"고 보도했습니다.
분위기가 이렇습니다. 낙관하는 곳은 서울시 한 곳 뿐입니다.
'조선일보' 평을 듣고 싶었는데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입장을 밝힌다기에 궁금했습니다. 그의 입에서 어떤 해결책이 나올지도 물론 궁금했지만 조남호 회장의 입장에 대한 '조선일보'의 평가가 더 궁금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자본주의4.0' 시대를 열자며 대대적으로 기획을 한 신문입니다. '따뜻한 자본주의'를 열어야 한다며 기업의 '책임'을 강조한 신문입니다. 이런 신문에게 조남호 회장의 입장은 하나의 시금석과 다름없었습니다. '자본주의4.0'이라는 총론을 각론화할 수 있는 최적의 매개였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평가를 내릴 줄 알았습니다. 조남호 회장이 입장을 밝히기로 한 어제 1면 톱으로 예고기사까지 실었기에 당연히 평가를 내릴 줄 알았습니다. 한데 아니었습니다. 상당수 신문이 관련기사를 1면에 끌어올리고 사설까지 동원한 반면 '조선일보'는 12면에 후진배치했습니다. 기사 내용도 조남호 회장의 입장을 '드라이'하게 전달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조남호 회장이 밝힌 '정리해고 철회 불가' 입장이 '따뜻한 기업'의 책임 범위 밖의 일인지, 조남호 회장이 밝힌 '경영정상화 후 희망퇴직자 복직 및 희망퇴직자 자녀 학자금 지원' 정도면 '따뜻한 기업'의 책임을 다 하는 것인지 '조선일보'의 육성을 듣고 싶었는데 아무 말이 없네요.
'조선일보'는 왜 입을 씻었을까요? 내일이면 들을 수 있을까요?
이건 무슨 시츄에이션?
이명박 대통령의 말은 분명 복지 확대를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어제 미국의 재정위기를 거론하면서 "오늘 기성세대가 편하자고 하면 10년 후 우리 젊은 세대에게 치명적"이라고 말한 것이나, "선거를 치르는 사람은 오늘이 당장 급한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제대로 가도록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나 발언의 맥락은 '복지 확대→재정 위기'였습니다.
그래서 달리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년 예산 편성기조를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의 전언을 달리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복지예산 지출을 억제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데 아니라고 합니다. 박정하 대변인이 뒤늦게 이명박 대통령의 말은 "(미국발 경제위기의)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예산을 정비하라는 것일 뿐 과도하게 해석하진 말아 달라"고 진화에 나섰습니다. 기자들에게 "초짜 대변인의 미스로 이해해 달라"고 양해까지 구하며 진화에 나섰습니다('한겨레' 보도).
도대체 이건 어떤 시츄에이션인가요? 무분별한 복지 확대를 비판해 놓고 복지예산 지출 억제를 얘기한 건 아니라고 선을 긋는 이 상황은 어떤 시츄에이션인가요? 황당 시츄에이션? 아니면 허무 시츄에이션? 제가 볼 땐 줄타기 시츄에이션 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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