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인사청문회마다 불거지는 게 청문회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다. 청문회가 의례적인 요식행위로 전락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당 의원들의 후보자에 대한 노골적인 '방탄 질문' 이다. 후보자의 도덕성, 전문성 등 국무위원으로서 자질을 따져 묻는 질문이 아니라 기존에 제기된 각종 의혹들에 대해 해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질문으로 질의 시간 10분을 채우는 행태는 청문회 때마다 쉽게 볼 수 있다.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진행된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도 마찬가지 일들이 일어났다. 한 후보자가 병역을 면제 받은 사유인 '디스크 수술'과 관련해 한나라당 이상권 의원은 자신도 1977년 군 복무시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고 공개하면서 "당시 일반인이 디스크 수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기억나느냐"고 물어 한 후보자는 "상당히 위험한 것으로 봤다"고 해명할 기회를 줬다. 이 의원은 "친근감이 느껴진다"고 한 후보자에게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소위 '그랜저 스폰서차' 의혹에 대해서도 한나라당 박준선 의원은 "한 내정자와 부인의 10년간 과태료, 주정차 위반사례를 보니 이것은 의혹에 불과하다"고 결론지어 말하면서 "SK 법인차량을 처남으로부터 3분의 1 가격으로 샀는데 본인이 서울고검장이라면 그런 것은 안하는 게 좋다"고 충고했고, 한 후보자로부터 그러겠다는 약속하는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스폰서차' 의혹은 한 후보자의 가족이 처남이 임원으로 있던 SK텔레콤의 법인 명의 그랜저 승용차를 2006-2010년 무상으로 사용하다가 2010년 6월 한 후보자가 구입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또 한 후보자가 외조부로부터 증여받은 서울 행당동 땅을 2006년 매매하면서 다운계약서를 작성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뭉개는 데도 한나라당 의원들은 적잖은 기여를 했다. 민주당은 이 땅을 매수한 박병길 씨를 이날 청문회에 출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우윤근 법사위원장은 박 씨에 대한 일종의 강제 구인인 '동행 명령'을 결정하려 했으나, 한나라당 권성동, 박준선 의원들의 완강한 반대로 무산됐다. 한 후보자는 매수자인 박병길 씨에 대해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서면 답변했으나, 이날 청문회에서 박 씨가 2005년 공장을 그만둔 뒤 땅을 매수한 2006년에는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따라서 행당동 땅을 둘러싼 다운계약서 작성과 세금 탈루 의혹은 더욱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 후보자가 두 차례 위장전입으로 실정법을 위반한 사실에 대해서도 한나라당 이은재 의원은 "작년에 주민등록법 처벌자는 700여 명인데, 위장전입 처벌자는 4명 밖에 안된다"면서 사안 자체를 축소시키기도 했다.
뭐니뭐니 해도 이날 청문회의 '하이라이트'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청목회' 수사와 관련된 집중 질타였다. 국회의원에 대한 소액 쪼개기 후원이 문제로 불거졌던 '청목회' 사건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이 일었었다. 영부인인 김윤옥 씨에 대한 권력형 비리 의혹을 폭로한 민주당 강기정 의원에 대한 '보복성 수사'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지난 해 11월 검찰은 의원 11명의 사무실 등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한 바 있다.
당시 압수수색을 당했던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은 이날 청문회에서 한 후보자에게 청목회 수사의 부당성에 대해 집중 질타했다. 신 의원은 당시 압수수색을 당했던 한나라당 권경석 의원을 거명하면서 "권 의원이 어떤 분인지 아느냐. 국회의원 입장에서 가장 합법적으로 돈을 받을 수 있는 일이 결혼식이다. 결혼식 축의금을 받으면 1억 원도 모을 수 있는데 권 의원은 작년에 아들을 결혼시키면서 축의금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이렇게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는게 국회의원 후원금"이라면서 억울함을 재차 토로했다. 신 의원은 압수수색 당시에도 "검찰이 여야 균형을 맞추기 위해 여당 의원까지 무리하게 끼워 넣었다"면서 "검찰이 압수수색 후 '압수수색을 했다고 해서 반드시 수사대상은 아니다'라고 했는데 대대적인 언론플레이를 통해 의원 11명을 모두 다 범죄자 취급해 놓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하겠다는 것은 무책임한 발언 아닐 수 없다"고 검찰에 대한 불만을 가장 강하게 제기했다.
신 의원이 이어 이두아 의원도 "현역의원이 압수수색을 당하면 그 사람은 정치적으로 상처를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다"고 거들었고, 박준선 의원도 "청목회 사건의 수사가 잘 됐다고 보냐"고 묻는 등 질의시간의 대부분을 청목회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썼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대한 지적은 필요하지만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에서 이렇게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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