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이하 헌법자문특위)는 지난 13일, 발족한 지 한 달 만에 개헌안을 만들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를 두고 주요 야당이 졸속 개헌안이라고 반발하면서 '개헌은 국회가 주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개헌에 적극적이었던 정의당 심상정 의원도 "국회 주도 개헌이 되는 것이 상식적일뿐만 아니라 국회 주도 개헌만이 성사될 수 있다"며 정부 주도 개헌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야당의 반발이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산재한 쟁점 조항들을 한 달 만에 정리했다는 것에 '충분하다'는 수식어를 붙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절차를 따져보더라도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개헌안은 의결된다. 대통령이 아무리 좋은 취지로 개헌안을 발의했다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국민투표 성사 여부 칼자루는 국회가 쥐고 있다.
청와대도 이런 절차를 모를 리 없다. 헌법 개정안이 제안된 날로부터 20일 이상 공고, 60일 이내 국회 의결, 30일 내 국민투표의 절차를 고려하여 청와대는 오는 21일에 발의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대선, 문재인 후보를 포함해 대부분의 후보들은 6.13 지방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를 시행하겠다고 공약했다. 대통령 발의를 통해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3월 21일이 마지노선이 되는 셈이다. 야당의 반발은 예상된 것이었고, 국회 동의를 얻기 힘든 여소야대 국면임을 잘 알면서도 대통령이 개헌 발의권을 행사하려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일정의 촉박함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따져봐야 할 일이 있다. 대통령이 발의하지 않는다면 국회가 개헌안을 합의하고, 발의하고, 의결하여 지방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을까? 국회가 개헌특위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때가 지난 2016년 12월이었다. 그로부터 1년간 활동했으나 개헌안 도출에 실패했다. 또 다시 국회는 개헌특위와 정개특위를 통합하여 지난 2018년 1월,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 특별위원회(이하 헌정특위)'를 구성했고, 현재 개헌 논의가 진행 중이다. 전체 1년 3개월간의 시간이다. 헌법자문특위가 한 달 만에 개헌안을 작성한 것을 감안하면 국회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았다고 볼 수 없다. 국회가 주도할 시간이 충분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의문이 든다. 과연 국회는 주어진 시간에 개헌안을 합의할 수 있을까?
'개헌 논의 국회 주도'라는 야당의 당위도 엄밀히 따지면 틀렸다. 개헌 주체는 국민이어야 한다. 헌법은 모두의 약속이고, 그 약속을 제안할 권리도 모두에게 있다. 국민의 뜻을 수렴하고 반영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헌법자문특위는 한 달 동안 홈페이지 개통, 숙의형 토론회를 5회 개최, 2000명 대상 여론조사, 지역시민사회 간담회 16차례, 유관단체 간담회 23회, 주요 헌법기관과 정당 방문, SNS와 포털을 통한 광고 등을 통해 70여만 건의 의견을 접수했다. 이에 비해 지난 1년간 개헌특위는 23차례 회의를 개최했고, 권역별 국민대토론회를 11차례만 가졌을 뿐이다. 지금의 헌정특위는 총 9차례 회의만 개최했다. 헌법자문특위에 비해 국회 개헌 논의는 국민이 참여할 공간이 적다.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30년은 나열할 수 없을 만큼 격동의 사건들로 가득하다.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기본권, 더 많은 생명권을 요구하는 과정이었다. 이런 가치를 담아보자는 것이 개헌 취지이고, 그래서 국민 70%가 개헌에 동의한다. 개헌에 반대하는 정치인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문제는 새로운 헌법이 담아야 할 내용이다.
다행히 지난 십수 년 간,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개헌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고, 어느 정도 합의된 내용을 가지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국회 개헌특위의 자문안이 있다. 국회가 선정한 전문가 그룹이 1년간 활동하면서 제시한 개헌안이다. 그 앞에는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 자문위원회 개헌안, 시도지사협의회 안을 비롯해 여러 시민사회가 내놓은 개헌안이 존재한다. 필자가 속한 녹색전환연구소도 '녹색헌법'을 제시한 바 있다. 헌법자문특위가 짧은 시간에 개헌안을 마련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간 논의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내용을 연구하지 않는 한, 국회도 이 정도 범위에서 개헌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겠다고 예고한 날은 3월 21일이다. 6월 13일 지방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를 실시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정쟁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칠 것이고, 정치세력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칠 것이다. 헌법 내용에 대한 가치 충돌은 당연한 일이다. 우려되는 점은 국회가 개헌안을 합의하지 못하고 정쟁으로만 끝나는 것이다. 물론 적당한 시기에 국민투표를 다시 시도하면 된다. 그러나 개헌에 대한 공감대가 무르익은 시점에도 합의하지 못했던 국회가 스스로 심기일전해서 의욕을 가질 것이라는 기대는 크지 않다.
헌법자문특위가 대통령에게 개헌안을 보고한 날, 국회입법조사처는 <개헌관련 여론조사 분석>이라는 입법정책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는 국민들이 "지방선거 동시실시에 대한 압도적 지지"라고 분석했다. 국회가 이번 지방선거에 개헌안을 올리지 못한다면, 국민의 압도적 의사를 무시하는 처사다. 시간이 얼마 없다. 국회가 의지를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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