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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방귀 탐지기도 만들 수 있어요?"

[격월간 민들레] 아날로그와 디지털 교육의 접점을 찾아서

삼 형제의 홈스쿨링

올해 열네 살이 된 큰아이부터 여덟 살 막내까지, 우리 아이들은 스마트폰이 없다. 디지털 미디어나 컴퓨터를 쓸 일이 있으면 부모와 함께하거나 최소한으로 이용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빠가 IT 전문가이자 강사이니 다른 가정보다 더 전문적인 디지털 교육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 가정은 오히려 디지털 시대와는 역행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이른바 '고전교육'이 우리의 핵심적인 교육방침이다.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흔한 만화 동영상이나 교육용 CD 같은 시청각 매체는 거의 접하지 않았다. 대신 책을 많이 읽어주고, 모형이나 사진보다는 실물을 보여주는 교육을 해왔다. 처음부터 그렇게 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 큰아이를 키울 때는 여느 가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이에게 책도 많이 읽어주었지만, 뇌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영유아용 교육 CD를 보여주기도 했고, 공공장소에서는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며 아이를 얌전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던 중, 매년 열리는 홈스쿨 콘퍼런스에서 '놀이미디어교육센타' 권장희 소장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동영상을 많이 보면 아이들의 전두엽이 손상될 수 있으며, 독서능력은 후천적으로 학습된 인류의 자산이라 어려서부터 연습하지 않으면 그 능력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지금이야 널리 알려졌지만, 당시에는 매우 생소한 얘기였다. 그러나 동영상을 조기에 접하는 것이 아이의 뇌 발달을 저해하고 나아가 아이의 성격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씀에 일단 과감히 모든 시청각 매체를 끊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책을 더 열심히 읽어주었다.

다행히 큰아이는 기질적으로 잘 따라와 줬고, 어려움 없이 책에 재미를 붙였다. 엄마가 책을 읽어주거나 스스로 보는 시간을 제일 좋아했다. 그러나 둘째 아이는 대여섯 살이 될 때까지 그림책에 매료되지 않았고, 한글을 떼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만화책만 골라 읽으려 하며 도통 책에 취미를 붙이지 못했다.

▲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짐 트렐리즈 지음, 눈사람 펴냄). ⓒ눈사람
그러던 중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짐 트렐리즈 지음, 눈사람 펴냄)이라는 책을 읽은 아내가 세 아이를 틈나는 대로 앉혀놓고 책을 실감 나게 읽어주기 시작했다. 남자아이들이라는 특성을 고려해서 정글북, 피터팬, 나니아 연대기처럼 주로 신나는 모험 이야기로 시작했다. 큰아이는 혼자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나이인데도 엄마가 책 읽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둘째도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한 나머지, 기다리지 못하고 엄마한테서 책을 빼앗아 읽었다. 책이 주는 즐거움을 한번 맛보게 되자, 그동안 눈여겨보지 않던 책을 스스로 찾아 읽기 시작했다. 지금도 아내의 책 읽기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옹기종기 엄마 옆에 모여 앉아 "조금만 더요!"를 외치곤 한다.

홈스쿨링하는 세 아이들의 학습에도 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책에서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단계별로 질문을 던지고 말로 표현해보고, 그것을 글로 정리하도록 돕는다. 그냥 글쓰기를 하면 한 줄 쓰는 것도 막막해하는데, 자기가 발표하고 말해본 것은 훨씬 수월하게 써낸다. 처음에는 한두 줄 겨우 쓰더니 이제는 자기 생각을 제법 긴 글로 표현해낸다. 책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책에 묘사된 것들을 만들기도 하고, 레고로 영화를 제작해보기도 하며 책을 매개로 깊이 배우는 법을 몸으로 익혀가고 있다.

아빠와 함께하는 디지털 교육

아이들에게 디지털 자료와 종이책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적절한 시기가 있는 것 같다. 처음부터 디지털 미디어로 아이들의 흥미를 이끌었다면 아마 아이들은 책 읽는 재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책은 디지털 미디어보다 재미도 없고, 자극도 적으며, 머리를 써야 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이른바 책 읽는 머리가 생겼기 때문에, 다른 미디어와 병행해도 쉽게 중독되지 않는 것 같다. 책이 교육의 주를 이루고 디지털 도구는 책을 통해 발견한 세상을 더 상세하게 보여주고, 새로운 분야를 열어주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큰아이는 요즘 클래식 음악에 푹 빠져 있다. 서양음악사 및 클래식과 관련된 십수 권의 책을 몇 번이고 읽는다. 아이가 더 다양하고 생생하게 음악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음악 다큐멘터리들을 같이 보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에서 소개된 곡의 연주 동영상을 찾아서 같이 들어보거나, 더 심화된 내용을 찾아보기 위해 도서관에 가기도 한다. 쇼팽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는 관련 책을 도서관에서 있는 대로 빌려와서 읽으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월광'과 '열정'도 제대로 구별 못 하는 아빠에게 매일 다양한 작곡가들의 삶과 곡을 해설해주고 있다. 며칠 전에는 "아빠, 저 꿈이 생겼어요. 정말 훌륭한 지휘자가 되고 싶어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이 처음으로 열정을 갖게 된 분야에 대해 아빠에게 떨리는 마음으로 고백하는 것이 느껴졌다.

열두 살 둘째는 종이접기에 푹 빠져 있다. 어딜 가나 색종이를 싸 들고 다니면서 틈만 나면, 심지어 길을 걸으면서도 종이접기를 한다. 일반적인 종이접기 책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고민하다가 유튜브 강좌를 발견하게 되었다. 정말 다양한 종이접기 강좌가 있는 것을 발견하곤, 아이는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보기만 해도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복잡한 종이접기를 아이는 몇 시간이 걸려도 지치지 않고 끈기 있게 끝까지 접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페가수스, 곰, 트리, 썰매, 황소, 사슴, 용까지 척척 접어낸다. 종이접기를 좀 더 깊이 다룬 다큐멘터리는 없을까 해서 같이 찾아보다가, 물리학자 로버트 랭이 설립한 오리가미(종이접기) 연구소를 소개하는 테드(TED) 동영상을 아이와 같이 보게 되었다. 이 연구소는 나사(NASA)와 공동 연구를 통해 우주선의 부피 문제를 종이접기 원리로 해결해낸 연구소로도 유명하다. 발사 전 우주선을 종이접기의 원리로 접어서 부피를 최대한 줄였다가, 우주 공간에 도착하면 한 번에 펼쳐지도록 고안한 것이다. 또한 화성 탐사 로봇의 바퀴 역시 종이접기의 원리를 이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 외에도 종이접기가 적용되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종이접기가 단순한 놀이 수준이 아닌, 로봇공학 및 항공우주, 의학 등 여러 분야와 연결(융합)되어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종이접기 분야의 전문서적이 없어서, 이 강연을 듣고 동기부여가 된 둘째 아이는 이 연구소에서 출판된 원서를 사달라고 조르고 있다. 자기도 이 연구소에서 일하고 싶다면서 앞으로 영어와 수학, 물리 등을 열심히 공부하겠노라 눈을 빛낸다. 단순히 재미로 시작한 종이접기를 통해 '종이접기와 공학 간의 융합을 연구하는 과학자'의 꿈을 품게 된 것에는 디지털 자료들의 힘이 크다.



일상생활에서도 디지털 기술이 활용되는 경우가 있다. 세 아이를 키우며 우스운 상황이 종종 발생하는데, 아이들끼리 방귀를 뀌고 서로 안 뀌었다며 막 우기는 때가 많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너희 자꾸 그러면 아빠가 방귀 탐지기 만들 거야"라고 선언했다. 오픈 소스를 기반으로 한 개발 도구 아두이노(Arduino)를 이용하면 쉽게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빠, 그런 것도 만들 수 있어요?" 호기심 가득 찬 아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나는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방귀 탐지기를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아이들이 저마다의 생각을 쏟아냈다. 내가 질문을 던지고 아이들이 답을 구하는 식으로. 방귀를 탐지하기 위한 공기오염도 측정 센서와 결과를 알려주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찾아냈다. 또한 아이들에게 동작 단계를 글로 적어보라고 해 알고리즘을 어렵지 않게 정리한 후 부품 목록을 함께 만들어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아두이노를 활용한 교육의 장점은 다양하고 저렴한 센서들을 손쉽게 연결하고, 단순한 알고리즘을 코딩하면 누구나 발명품을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보다 '아이디어'다. 어떤 센서를 연결하고, 알고리즘을 어떻게 코딩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작품들이 나올 수 있다. 무선조종 자동차, 손뼉을 치면 켜지는 램프, LED 주사위, 화분의 수분 측정기, 드론도 이런 식으로 함께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응용되는 주요 원리 중 하나를 각자의 과제로 준비해 발표하기도 했다.

아두이노와 코딩의 기본기를 쌓기 위해 EBS 교재와 엔트리 사이트를 활용했다. 아이들은 스스로 동영상을 보며 문제를 해결했고, 직접 코딩한 프로그램(주로 게임)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아이들이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경우에는 질문을 던져서 문제의 원인을 스스로 찾아가도록 도와주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아이들이 기술보다는 원리를 깨닫도록 하는 것이었다.

디지털 세상의 부모 되기

중학교는 올해부터, 초등학교는 2019년부터 코딩교육이 교과과정에 포함된다고 한다. 이 소식에 가장 먼저 발 빠르게 움직인 곳이 사교육 시장이다. 작년에는 월 200만 원이 넘는 코딩 유치원과 800만 원짜리 코딩 캠프가 생겨났다는 소식도 들었다. 혹시라도 아이가 코딩 실력을 갖추면 미래에 직업을 갖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얼른 접는 것이 좋다. 이미 인공지능이 코딩하는 분야의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고, 1~2년 이내에 코딩하는 인공지능이 상용화되어, 인간의 코딩 실력을 앞지를 것이다.

몇 개월 전 중학생을 둔 부모가 찾아와 "우리 아이가 데이터 분석가가 되려면 지금부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라고 물었다. 나의 대답은 "모른다"였다. 지금 데이터를 분석하는 방식이 과연 5년 후에도 동일할까 생각해보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할 가능성이 높고 데이터 분석가라는 직업도 언제 없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를 다루는 뉴스들과 사교육업계의 홍보는 초·중·고등학교 자녀를 둔 부모들의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잘못된 조기교육 열풍으로 몰아가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지금보다 더 급속히 빨라질 것이고, 정보와 지식의 양은 지금보다 더 급속히 증가할 것이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또한 '100세 시대'가 도래하면서 평생 한 가지 직업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오고 있다. 대학에서 배운 전문지식으로 직업을 구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아이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계속하여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적응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고, 다양한 정보를 연결(융합)시키고, 창의적으로 해석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불안해하며 특정 분야의 단편적 지식을 습득하기보다, 어떤 기술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 배울 수 있는 태도와 능력을 갖춰야 한다.

나는 문법, 논리, 수사, 이 세 가지 기본능력이 준비된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디지털 도구와 자료들을 활용하여 아이들이 자신의 꿈과 열정을 찾아가고 탐구하도록 돕고 있다.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다는 것은 홈스쿨링의 큰 장점이다. 디지털 자료든, 종이책이든, 고전문학이든, 현대문학이든 아이들에게 생각할 시간과 스스로 탐구할 기회를 준다면 도구와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변해가고 발전해가는 디지털 세상에서 지속적으로 아이들과 배움을 함께하는 부모가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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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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