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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지진 피해는 왜 커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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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지진 피해는 왜 커졌을까

[함께 사는 길] 지진이 알려준 현실

경주지진 규모는 5.8이었고 포항지진은 5.4였다. 규모가 4배나 작은(리히터 규모는 1이 커지면 에너지는 31.6배로 커진다) 포항지진이 경주지진보다 피해는 훨씬 컸다. 왜일까? △경주지진보다 진원이 지표에 가까워서 지진 에너지가 위력을 잃지 않고 피해지역에 도달했고, △그 주요 피해지역들은 또 과거 매립지 위에 건설된 무른 지반이었으며, △무엇보다 존재가 확인되지 않은 무명 활성단층대에서 지진이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사 결과다. 그런 탓에 경주지진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피해액은 5배가 넘고 이재민 수는 경주지진의 20배에 가까운 1800여 명(지진 2일 뒤 1789명)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포항지진으로 우리 사회의 지진 안전에 대한 인식과 준비 부족, 그것들이 구조화된 불합리한 제도들의 면면이 드러나고 확인됐다.

우선 지진 발생 가능성이 높은 활성단층대에 대한 연구조사가 치명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현재 남한 내 활성단층은 450여 개로 추정되지만 이에 대한 단층지도는 없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지난해 12월 16일 포항지진이 '미확인 활성단층대를 따라 발생했다'고 발표하면서 국가 규모의 활성단층 연구가 축적돼 있었다면 단층대에 구조물 설치를 제한하는 등의 조치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진원에서 동남방향 45도 각도의 마름모꼴지대에 피해가 집중됐다. 최대 피해가 발생한 흥해읍 지역은 신생대 3기에 생성된 해성퇴적층 지대여서 피해 가중을 불러온 액상화 현상의 발생 가능성이 애초부터 존재하던 지역이었다. 이런 지질학적 특성을 무시한 도시 개발이 결국 피해를 키웠는 것이다.

▲ 지진 발생 당시 파손된 대성아파트 가스관. ⓒ함께사는길(이성수)

▲ 폐쇄된 대성아파드. ⓒ함께사는길(이성수)

건물의 내진설계기준 강화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현행법(국토교통부 '건축물의 구조기준 등에 관한 규칙' 등)은 경주지진 이후인 2017년부터 모든 신규 건축물에 내진설계를 하도록 강화됐다. 최초의 내진설계기준 도입은 1988년 6층 이상 건물이었다. 그 뒤 2005년 3층 이상, 2016년 2층 이상 2017년 전층 확대로 이어졌다. 문제는 오래된 건물들이다. 이번 포항지진에서 전파된 한 아파트도 88년 이전 건축된, 기둥 없이 벽체만로만 하중을 견디도록 설계됐던 것이었다. 내진설계를 했어도 필로티 구조는 지진에 취약하다는 사실도 재확인됐다. 문제는 현행법상 진짜 내진설계 전문가인 건축구조기술사들은 6층 이상 건물에만 '건축사 보조'로만 설계에 참여할 수 있고 그 이하 층은 건축사들이 전담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조공학 전문가는 건축사가 아니라 건축구조기술사들이다. 5층 이하 특히 필로티 건물들은 건축구조기술사가 내진설계를 맡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

포항과 경주지진으로 원전의 내진설계와 기준이 안전 보장에 미흡하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 포항지진의 경우 진앙에서 2.6킬로미터 흥해관리소 측정 최대지반가속도는 0.57g(현재 한국 원전의 내진설계기준은 0.3g)였지만 원전 내에서 측정한 값은 기준치 이내로 나타났다. 단순한 최대지반가속도가 내진안전기준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이하 한수원)의 입장은 경주지진 후 산업통상자원부가 당시 6.5(최대지반가속도 0.2g) 규모의 지진에 맞춰져 있던 기존 원전의 내진성능을 7.0(최대지반가속도 0.3g)에도 견디도록 보강한다는 조치에 맞춰 강화했다는 것이다. 한수원이 가장 낡고 위험한 원전으로 불리는 월성1호기도 스트레스 테스트로 내진여유도를 0.3g(약 7.2 규모)에 견딜 수 있도록 보강했다고 밝혔지만 중력가속도 자체가 측정 위치와 부지별 특성에 따라 동일 규모 지진에서도 다르게 나타난다는 특성을 생각하면 0.3g 기준은 절대적 안전기준이 되지 못한다. 석광훈 에너지시민연대 정책위원은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규모 7.0 이하 예상 지진 대비 최대지반가속도 기준을 0.46~0.75g로 강화했다'고 밝힌 바 있다(원전 내진설계 규제 관련 해외사례와 국내 정책개선대안, 2017). 우리 기준의 2배를 상회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월성1호기의 원자로압력관이 내진보강을 했어도 0.2g의 상황에서 1퍼센트 미만의 여유도밖에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 점이다. 박재호 의원실의 발표(2016.11)에 따르면 한수원의 월성1호기 내진여유도 평가조사의 신뢰도는 95퍼센트였다. 즉 5퍼센트의 확률로 원자로압력관 파손을 허용한 조사였던 것이다. 월성1호기의 즉각 폐쇄와 다른 원전들의 내진설계기준을 적어도 일본 원전 수준으로 강화해야 할 일이다.

▲ 지진으로 파손돼 수용자들이 다른 안전시설로 옮겨간 포항 들꽃마을의 요양원. ⓒ함께사는길(이성수)

지진 같은 자연재해 발생 시 적절한 이재민 수용과 이주 등에 관한 매뉴얼이 없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지진 발생 당일부터 약 5일간 흥해실내체육관 등지에 분산 수용된 이재민들은 △부족한 난방시설과 샤워장, △최소한의 프라이버시(가림막과 텐트) 보장도 안 된 공간, △내진설계가 안 된 대피소(흥해실내체육관 등 대피소는 내진설계가 안 된 것들이지만 구조안전진단 후 지진피해가 없음을 확인하고 시설로 사용) 등의 현실을 견뎌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피소 자체의 내진성을 제외한 불편은 해소됐지만 대피소 생활이 3개월에 가깝게 이르는 오늘날 이재민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돌볼 장기 대응 매뉴얼은 여전히 부재한 현실이다. 재해로 인한 이재민 발생 시 최기, 단기, 장기 돌봄 매뉴얼을 마련해 두고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포항지진에서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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