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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지진, 그놈이 다시 안 온단 보장이 없어!"

[함께 사는 길] 포항 지진 이재민 대피소에서 만난 사람들

지진 발생 54일째였던 2018년 1월 8일 저녁이었다. 포항 북구 흥해읍 소재 흥해실내체육관. 포항 지진으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이 수용된 대피소들 가운데, 여전히 남아 있는 두 곳 중 하나다. 마당에 늘어선 20여 개의 대형 천막마다 사람들이 넘쳐났다. 자선봉사단체들과 지자체가 마련한 천막식당에 삼삼오오 앉아 식사를 하고 나오던 이들은 "안녕하세요. 취재 온 기잡니다" 명함을 건네며 이야기(인터뷰)를 시도하자 냉랭한 표정을 지었다. "안 합니다." 표정, 목소리, 손짓까지 동원한 단호한 거절. "하면 뭐에 쓸 데 있나? 다 말뿐이지 도움 하나 안 돼!" 노골적인 거부다.

이재민들에게 눈 한 번 맞추지 못하고 거절당하길 1시간여. 그 꼴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한 중로(中老)의 여인에게 반은 포기한 셈 치고 말을 붙였다. "우리 집은 소파(전파(全破), 반파(半破), 소파(小破)로 나눠 정부 지원 규모와 대우가 다르다)인 데다 전세라 더 골치가 아파요!" 얘기할 게 있다는 말씀. 반색을 하고 손성미(57) 씨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 흥해 실내체육관 대피소. ⓒ함께사는길(이성수)

ⓒ함께사는길(이성수)

규모 2위 피해 1위의 지진

2017년 11월 15일 14시 29분 31초. 포항시 북구 9킬로미터(㎞) 지점에서 리히터 규모 5.4의 지진이 발행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12월 6일 발표한 인적·물적 피해 상황을 보면, 신체장해등급 7급 이상만 10명이었고 부상자는 총 78명으로 집계됐다. 재산상 피해액은 546억 원을 넘었고 도로, 상하수도, 항만, 학교 등 공공시설 피해건수가 321건에 달했다. 전파된 가옥들은 대성아파트 D·E·F동 170세대를 비롯해 348세대에 이르렀고 총 2만7535채의 사유시설이 피해를 입었다. 2016년 9월 12일 발생한 경주지진(리히터 규모 5.8)에 이은 관측 이래 2번째 강진이었다. 지진 규모는 두 번째였지만 피해 규모는 최대였다.

정부는 포항시의 건의를 받아들여 12월 7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통해 '포항 흥해읍 일대에서 특별재생지역 시범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기존 도시재생특별법이 인구 감소와 노후 건축물 증가로 쇠퇴기에 접어든 도시를 위한 기준이라 재난지역 재생에 적용하기 어렵고, 재해를 입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다 해도 전파나 반파 등 큰 피해를 입은 이들을 중심으로 국고가 지원되기 때문에 흥해처럼 피해 수준을 가리지 않고 피해자가 다수 발생하여 지역 전체가 큰 피해를 입은 곳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특별재생지역제도'를 새로 도입해 아예 도시 재개발 수준의 재생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대책에 발맞춰 포항시는 도시재생을 전담할 국 단위 조직(3과로 구성)을 지난 1월 1일부로 신설했다. 이른바 '흥해 특별재생지역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총 6500억 원 규모의 도시재생사업 중 재건축과 재개발에만 3800억 원이 투입된다. 앞으로 흥해지구 내에서는 △주택 수리 시 공공지원이 강화되고 주택 공적임대가 확대되며, △안전 우려 상가를 시가 매입해 국가의 금융지원을 받아 수리한 뒤 저가에 임대하며, △이러한 사업의 신속 추진을 위해 사업절차 또한 간소화된다.

이러한 정부와 포항시의 도시재생사업계획에 대해 정침귀 포항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사업절차까지 간소화하는 속도전이 신속한 도시복구에는 유리할지 몰라도 지반이 물러 피해가 가중된 흥해읍에서 지질 안전성을 확보한 사업까지 보장할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복구 속도보다 대상지의 지질 특성을 면밀히 조사해 그에 맞는 개발 방식을 정하는 방식이 더 안전한 도시재생 방식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신속한 복구와 안전한 복구가 충돌하는 방식의 도시재생사업이 될 가능성에 대한 고언인 셈이다.

▲ 대동빌라는 붕괴 우려 때문에 상주 경찰에 의해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함께사는길(이성수)

도시재생, 속도보다 중한 것은?

대피소에 수용된 이재민들의 관심은 '살 집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에 집중됐다. 이재민들은 소유자 기준으로 전파 900만 원, 반파 450만 원, 소파 100만 원의 재난지원금을 받는다. 세입자는 전반파가 300만 원, 소파가 100만 원을 받는데 지원금은 수리에 써야 한다. 내 집이 아니라고 지원금만 받고 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의연금은 소유 실거주자를 기준으로 전파가 500만 원(세입자 250만 원), 반파는 250만 원(세입자 250만 원), 소파는 동일하게 100만 원을 받는다. 1400만 원이 국가가 재난을 당한 피해자에게 지원하는 최대 액수인 것이다.

이 돈으로 집을 새로 짓거나 구하긴 어렵다. 때문에 정부와 포항시는 총 1억 원까지 전임대 지원금을 지급하고 그 이자도 내준다. 월 임대료도 무료다. 다만 기간이 2년으로 한정돼 있다. 이사비용 100만 원도 포항시가 지원한다. 한편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전세 보증금 반환 보증 특례상품'을 만들어 피해지역 전세가구를 돕는다. 이 지원제도는 남은 전세 계약기간과 무관하게 전세가구가 주택도시보증공사에게 보증금을 지급받아 먼저 이사한 뒤, 집주인이 1년간 집을 복구하여 새 전세 가구에 임대하고 받는 보증금을 주택도시보증공사에 상환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또한 주택 1채당 최대 6000만 원의 주택복구지원융자(3년 거치 17년 분할상환, 연리 1.5퍼센트)도 실시한다.

여러 가지 대책들이 사실상 소유자와 전파·반파 피해자 위주인 셈인데, '소파' 판정을 받은 2만6000채의 집들은 피해는 있는데 지원은 미미한 현실에 놓여 있다. 소파니까 고치면 안전하다 한들, '과연 신규 세입자들이 그 집에 잘 들어올까?'에 관한 의문이 남는 것이다. 대피소에서 만난 이주민들은 집 얻기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 기쁨의교회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장지홍 씨. ⓒ함께사는길(이성수)

"집이 안 빠져요!"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만난 손 씨의 고민도 소파 판정을 받은 세 살던 집을 뺄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임대기간이 다 찼기 때문에 이사를 가겠다고 주인에게 말한 상황이었는데, 지진을 만나 주인도 세를 못 빼주고 그렇다고 위험한 집에서 계속 살 수도 없어 대피소와 친척집을 들락거리며 버티는 중이라 했다.

"지진 날 때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있었는데 침대가 붕 뜰 정도라 얼결에 침대를 두 손으로 꽉 잡고 버텼어요. 나중에 침을 뽑자 핏줄이 터져 피가 흐르데요. 집에 오니 난장판이었어요. 전셋집에 살았는데 안전진단 결과 들어가 살아도 된다 하데요. 근데 지은 지 23년이나 된 집이 피해를 당했으니 불안해 못 있죠. 새로 이사 갈 집을 구했는데 살던 집 주인이 보증금을 못 빼주니 문제죠. 계약금만 떼이게 생겼어요. 집이 문제 있다는 거 다 아는데 누가 그 집에 살러 오겠어요. 보상은 쥐꼬리고 대책이 없어요. 여기 대피소에도 있다가 나가서 친척들 집을 전전하고 있죠. 이사도 못 가고 언제까지 친척들에게 폐를 끼칠 수도 없고 대피소로 다시 오려고 대기자 명단에 올려뒀어요."(손성미 흥해실내체육관 대피소 이재민)

김연리(72세) 할머니는 대구에서 위암 수술을 받고 집에 온 날 지진을 만났다. 영감님과 한 텐트에서 지내면서 집을 구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약을 먹는 게 많은 데다 실내체육관의 공기가 안 좋아 건강이 더 나빠질까 걱정되는데 뾰족한 대책이 없다.

"온풍기도 틀어주고 핫팩도 주고 영감, 할매 둘이 한 텐트서 자니 춥지는 않아. 빨래 차도 오고 밥도 주고 그러니, 딱 죽겠다 싶진 않지. 그래도 집이 아니잖아. 씻는 거 불편하고 공기가 나빠. 감기가 유행인데 별 수 없지. 애들이 고생이지. 여기 어린애들이 한 20명 되는데 놀이방이 있어도 그렇지 딱해. 여기 사람들은 지진 나고 하루, 이틀 후에 들어온 이들이야. 이제 두 달이 되지. 언제 나갈 수 있을지 아득해."(김연리 흥해실내체육관 대피소 이재민)

기쁨의 교회 강당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서 만난 박노완(46) 대웅파크대책위원회 총무는 살던 아파트가 소파에서 전파로 진단결과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공식기록에 소파로 되어 있어 3개월 걸리는 정밀안전진단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웅파크는 처음에는 소파 진단이 나와서 안심하고 있다가 뒤늦게 지하실 기둥에 금이 가고 파손된 게 발견돼 안전진단을 해보니 위험판정이 나왔다. 그게 작년 12월 30일의 일이었고 시장의 대피명령은 31일 나왔다. 결국 우리 아파트 전 주민이 1월 1일 이곳 대피소로 왔다. 이사 갈 집 알아보는 게 쉽지 않다. 우리는 지진 후 50일이 지나서야 대피를 한 경우다. 초기에 대피한 분들이 흥해와 그 인근 전세 물량을 거개 소진했다. 게다가 우리 아파트는 임대주택보다 규모가 큰 32평 단일평형 아파트다. 전임대 지원금 1억 원 가지고는 살던 평형에 맞춰 이사 못 간다. 살던 집과 비슷한 크기로 구하자면 1억 5000만 원에서 2억 원까지 필요하다. 지원금 외에 필요한 5000만 원 이상의 돈을 구하기 힘들다. 집을 줄여 가려 해도 짐을 버리고 갈 수 없어 골치다. 아파트를 새로 지어야 하는데 조합 구성에서부터 정상적인 인허가와 시공에 3년 이상 걸린다. 이익 내기도 힘들고 시공할 땐 사회적 관심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건설사들이 시공을 꺼린다. 그러니 시공사 잡기도 힘들다. 정부가 시공사 선정과 재건축 행정과 관련해 기간을 줄일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란다."(박노완 기쁨의교회 대피소 이재민)

▲ 뒤늦은 진단과 대피명령으로 대피소 입소도 늦고 집 구하기도 힘들다는 대성파크대책위 박노완 총무. ⓒ함께사는길(이성수)

남은 사람들

지진 발생 후 두 달을 넘긴 2018년 1월 18일. 여전히 집을 구하지 못한 이들이 흥해실내체육관과 기쁨의교회 대피소에 남아 있다. 흥해실내체육관에 155세대 327명, 기쁨의교회에 71세대 177명 등 총 504명의 이재민이 생활하고 있다. 열흘 전의 573명에 비해 26세대 69명이 빠져나간 숫자다. 보상금과 지원금만으로는 집을 구할 수 없거나 판정을 수긍할 수 없어 남은 이들도 있지만, '정부 판정상 소파니까 들어가 살아도 된다는 집'이 '불안해서 못 들어가는 이들'도 있다.

"(지진)그놈이 다시 안 온단 보장이 없어!"

도시재생도, 이주지원대책도 중요하지만 이들의 뇌리에 남은 지진 트라우마를 치유할 장기 보건대책도 절실한 상황이다. 지진 재발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하는 이재민들의 말을 '희박한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안전에 눈 감은 종래의 도시개발 방식에 대한 비판이자 무엇보다 복구 속도가 아닌 안전에 중점을 둔 도시 재생과 복구를 위한 제도 개선 요구'로 들어야 할 일이다.

ⓒ함께사는길(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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