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아세안외교안보포럼에서 남북 6자회담 대표가 만나고, 김성환 외교부 장관과 북한 박의춘 외상이 만났다.
이에 대해 6자회담 당사국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의 목소리를 냈지만 막상 정부와 청와대, 여당은 골똘한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북한 핵 외교를 총괄하는 김계관 외무성 1부상이 뉴욕을 방문키로 하는 등 북미대화에 시동이 걸리지만 여전히 천안함ㆍ연평도에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24일 청와대는 남북 관계에 대한 긍정적 전망에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고 한나라당에서도 나경원, 원희룡 최고위원 등 10여 명의 의원들이 "북한의 천안함 연평도 만행에 대한 유감표명이나 재발방지 확약 없이 6자 회담을 언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브레이크를 걸었다.
정부 여당 내에 강온 양론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일각에선 외교부 쪽을 온건파로,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천영우 외교안보수석,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을 강경파로 분류하는 모습이다.
7월 1일 이 대통령 연설이 분기점으로 작용?
북한의 천안함ㆍ연평도 사과 문제에 대해 그간 이명박 대통령을 필두로 정부 당국은 수위 변화를 보여왔다. 때로는 "사과 없이는 남북대화는 커녕 6자회담도 없다"고 강경론을 펼쳤지만 "반드시 '전제조건'이라는 것은 아니다"는 식의 발언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지난 1일 민주평통 출범식에서 "지난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사태로 불안한 정세가 조성되었지만, 우리는 거기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면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진정성과 책임성을 갖고,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 정부 남북 관계의 최상위 규범이나 마찬가지였던 천안함 연평도 문제를 그냥 넘어가기도 어려운 것이 정부의 입장인 것. 특히 현인택 장관의 통일부는 강경론의 선두였다.
결국 청와대와 정부 당국은 "6자회담과 비핵화 문제는 천안함, 연평도 사과에 결부시키지 않고 정상회담 등 정치군사적 대화는 연결시킨다"는 분리대응 기조를 정했다. 이에 대해 한 정치권 인사는 "남북정상회담 비밀 접촉 때는 외교부가 따돌림을 당했지만, 6자회담과 비핵화 문제는 통일부 주관이 아니라 외교부 주관이라는 것을 주의 깊게 봐야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위성락 6자회담 수석대표, 김성환 장관 등 외교부 수뇌가 참여한 발리 ARF포럼에선 남북 간 대화 분위기가 조성이 됐고 북미 대화도 재개될 조짐을 보이는 등 '비핵화 트랙'이 진도를 급속히 빼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군사적 대화 쪽은 여전히 꽁꽁 묶여있다. 청와대 일부 인사들은 공공연하게 "8.15에도 큰 기대를 걸지 말라"면서 "8.15 다음 날부터 한미 양국군이 참여하는 을지가디언연습을 하는데 북한 반응도 뻔하지 않냐"는 식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다시 천안함, 연평도를 강조하고 나섰다.
강온파 대립, '현·천·김'이라는 성벽은?
여권 내에서 강온 양론이 엇갈리는 분위기는 뚜렷하다. 8.15를 즈음해서 현인택 통일부 장관을 포함한 일부 라인이 교체될 것이라는 보도에 대해 일부 당국자들은 "그걸 희망하는 사람들의 자가 발전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강경파들은 "한미 공조는 확고하다"면서 "우리 측에서 (천안함, 연평도 문제를) 풀지 않으면 북미 대화도 진도가 빨리 나갈 수 없다. 미국은 확고히 우리 측 입장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통미봉남'우려는 기우일 뿐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측 복안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들의 답은 한결 같다. "공은 북한에 넘어가 있다.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면 일이 풀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나 일부 당국자들은 "미국과 중국이 이른바 6자 틀을 재개해서 동북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자는 컨센서스를 가졌다"면서 "이대로 가면 우리는 북미 대화 움직임에 대해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면 외교적으로 우리만 고립될 수도 있다"고 말하고 한다.
이같은 대립은 국내정치와도 연결된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쪽은 대체로 온건파 쪽에, "집토끼를 지켜야 된다. 천안함, 연평도 사안에서 물러서면 죽도 밥도 안 되 버린다"는 쪽이 강경파 쪽에 서 있다는 말이다.
강경보수 논객인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은 지난 5월 '현인택·천영우·김태효를 지켜라'는 기명 칼럼을 통해 "어설프게 대화재개와 대북지원을 주장하는 사람들로부터 그들이 대통령을 지켜내고 있다"면서 "현 정권은 현·천·김이라는 성벽을 지켜야 한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원칙의 성벽이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 논설위원이 주장한대로 '현·천·김'이라는 성벽이 이번 대화국면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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