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춥고 힘이 안 들어가서 죽을 것만 같아요. 전에는 좀 움직이면 낫더니, 이번에는 진이 다 빠진 것처럼 너무 힘들어요. 수액주사도 맞고 식사도 신경 써서 하는데, 회복 기미가 보이질 않네요."
한의원에 들어서면서부터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들어온 환자는 몸을 다 펴질 못하고 말을 이어 갑니다. 체온과 혈압, 맥박 등의 기본적인 사인을 점검하고 그간의 일들을 듣습니다. 지난 몇 해 간의 기록을 살펴보니, 며칠 정도 차이는 있지만 해마다 봄의 문턱과 여름의 끝자락에서 비슷한 증상이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특히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 오는 환절기에 증상이 심했습니다.
일단 몸이 제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침과 뜸 치료, 약을 쓴 후, 이제 좀 살 것 같다는 환자에게 계절 변화에 적응을 하느라 몸살을 겪는 것이라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의 괴로움은 치료를 통해 정상화할 수 있겠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이유는 시간을 갖고 찾아보자 했습니다. 남들보다 환절기가 유난히 힘들다면 분명 까닭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겨울 석 달은 폐장(閉藏)이라 하는데, 물은 얼고 땅은 갈라져 터지며 양기의 움직임이 없다.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야 하며, 반드시 해가 뜨기를 기다려 일어난다. 마음가짐은 감추고 숨겨야 하는데, 마치 남모를 뜻을 품거나 귀한 것을 얻은 사람처럼 한다. 추운 곳을 피하고 따뜻한 곳에서 생활하며, 땀이 나는 것을 피해서 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해야 한다. 이것이 겨울의 기운에 응하는 양생의 방법이다. 이것을 어기면 신장이 상하고 봄에 손발에 힘이 없고 차가워지는 병에 걸리며 새롭게 소생하는 힘이 약해진다." <내경> 사기조신대론 중에서
이 환자의 경우 유난히 추웠던 올 겨울에 일을 많이 했습니다. 이동거리도 길었습니다. 신경도 예민한 편인데, 일과 가족관계 때문에 감정적 과로가 심했습니다. 그런 중에 심한 감기에 걸려 상당기간 약을 복용했는데 겨울이 지나고도 증상이 남아서 최근까지도 대증약을 복용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삶의 속도를 늦추고 재충전해야 할 시기에 도리어 많이 움직이느라 방전하고, 더구나 감기를 오래 않으면서 에너지 소모를 많이 한데다가, 감정적 스트레스로 인한 긴장 상태를 유지한 채 봄을 맞이한 것입니다.
몸과 마음의 힘도 없는데다가 긴장한 상태니 변화에 순응할 여유도, 의욕도 없어진 것입니다. 그대로 있고 싶은데 계절의 변화에 억지로 적응하려다 보니, 자꾸 불안한 마음이 들고, 힘도 없고, 여기 저기 아픈 곳이 생긴 것이지요.
이 상태가 가볍다면 며칠 잘 자고 잘 먹고 영양제 넣어서 수액을 맞는 정도로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손상 정도가 중해서 앞서 인용한 것처럼 신장의 기운까지 상하게 되었으니, 단순한 피로회복 수준의 영양보충으로는 쉽게 회복이 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때는 겨울 동안 자연스럽게 채워져야 했을 신장의 장정(藏精)하는 힘과 물질적 부분을 채워주고, 이 채워진 힘이 몸을 고루 돌며 봄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긴장을 풀고 순환을 활성화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겨울과 봄으로 변하는 시기에 신체에서 일어나야 하는 과정을 치료를 통해 채우고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예방이 최선이었겠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요.
앞선 환자 외에도 환절기만 되면 비염과 같은 질환이 재발하거나 남들보다 유난히 계절을 타면서 몸과 마음이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가 대증요법만으로 잘 처리가 되지 않아서 한의원에 내원합니다. 병이 시작된 원인이 과거에 있는데 현재만 붙들고 있어서는 해결이 되지 않지요. 이럴 때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몸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바로 잡아 주어야 비로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걷기도 전에 뛸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해가 바뀌면서 우리 사회에도 다양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이미 겪었어야 했거나 진즉 바로 잡았어야 했는데 때를 놓치고, 성장이란 명분으로 덮고 지난 것들도 많습니다. 변화는 현재와 미래에 관한 것이지만 과거로부터의 관성이 꽤 단단하지요. 그러다 보니 그 과정이 더 많이 부딪치고 사회가 몸살을 겪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병에 대증요법이 빨라 보여도 병을 치유할 수 없는 것처럼, 지금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 또한 시간이 걸리더라도 겪어야 할 것들을 천천히 하나씩 밟아가야만 병폐를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올 봄, 우리 몸과 마음에도, 그리고 우리 사회에도 건강한 변화의 바람이 계속되길, 그래서 노래 가사처럼 그 속에서 다음 세대의 아이들이 마음껏 꿈꾸며 살 수 있는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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