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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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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나의 힘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불안함을 피하지 말고 다스려라

"남들보다 예민했기 때문에 지금의 일을 잘해 오셨을 거예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냥 넘어가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잡아낸다는 건 양날의 칼이죠. 요령 있게 다루면서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때는 무기가 되지만, 내 통제를 벗어나면 몸과 감정과 정신에 상처를 입히기 시작합니다. 그 내상을 여태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잘 버텨 내셨지만, 지금은 몸이 '더는 못 버티겠다'고 하네요.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기초부터 조금씩 바꿔 보시죠."

예민함 때문에 탈 난 환자를 자주 봅니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자꾸 눈에 띠고 감정을 건드려 힘들어지죠. 이런 분들이 처음부터 나쁘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는 이 예민함 덕분에 세심한 부분까지 살피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자신의 일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도 하고, 대인 관계에 상황판단이 빠르고 타인의 감정을 잘 읽어서 관계를 잘 유지해 사람 좋다는 말을 자주 듣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덕을 본 셈이죠.

예민함이 주는 피로가 일정한 수준에서 풀리지 못하고 한계를 벗어날 때 문제는 발생합니다. 가벼운 긴장의 수준에서는 그냥 몸이 좀 피곤하고 소화가 잘 안되거나 짜증이 자주 나고 간혹 잠이 잘 안 오는 정도의 증상이 발생합니다. 이때는 좀 쉬면서 기분전환도 하고 음식도 좀 잘 챙겨먹으면 잘 회복됩니다. 하지만, 이때 ‘누구나 다 이 정도 스트레스는 있지’ 하면서 무시하고 넘기기 쉽죠.

여기서 조금 더 나가면 불안의 단계에 접어듭니다. 우리가 외부세계와 접할 때 맨 처음 발생하는 것. 한의학에서 칠기(七氣) 혹은 칠정(七情)이라 표현하는, 감정의 평정이 먼저 깨지면서 몸과 생각 또한 안정된 궤도를 이탈함에 따라 불균형한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불안은 분노나 우울, 혹은 강박이나 일 중독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면, 폭식증이나 거식증, 과민해진 위장, 혹은 알레르기반응과 같이 신체화 되어서도 나타납니다. 밖의 세상과 안의 세상을 적당히 조율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이 조율 능력이 내 통제를 벗어났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현대 우리 사회의 불안은 과거와 좀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과거에는(물론 이 또한 현재진행형입니다) 전쟁이나 기근, 혹은 전염병이나 나쁜 인간처럼 명확하게 지정할 수 있는 외부의 나쁜 것이 불안을 일으키는 주류였다면, 현대의 불안은 "넌 할 수 있어! 라고 말해 주세요"라는 동요가사처럼 희망과 긍정의 가면을 쓰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이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다는 의식은 파괴적 자책과 자학으로 이어진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전쟁 상태에 있다. 우울증 환자는 이러한 내면화된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이다.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서, 자기 자신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간을 반영한다." <피로사회>(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 지성사 펴냄)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이야기하는 '당신 안에 잠들어 있는 거인'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내적인 전쟁 상태에 빠지게 하고, 아프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희망(?)의 메시지는 마치 이생의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 다음 생에 복을 받으리라는 일부 종교 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단 생각도 들고요. 일종의 희망고문인 셈이지요.

모든 현상에는 음과 양이 있는 것처럼, 불안에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잘만 이용하면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안은 안정된 상태에서 이탈한 상황입니다. 주전자에 담긴 물을 불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내 안에서는 고정된 과거와는 다른 움직임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불안은 부정적 상황에 의해 유도되지만, 그 또한 분명 에너지인 것이죠. 이 에너지는 잔잔한 연못에 던진 돌처럼 습관처럼 지내온 삶에 파문을 일으킵니다. 만약 이 역동적 상황을 통해 자신을 리셋할 수 있다면, 불안을 타고 넘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

많은 분이 불안이 일으키는 불편함을 약물로 잠재웁니다. 물론 이렇게 하면 불안감과 그에 따른 증상은 사라지거나, 사라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변화의 불씨 또한 꺼지지요. 불안 또한 숨을 뿐, 해결되지 않거나 약물 복용으로 인해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엉킨 실타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풀어야 다시 쓸 수 있는 것처럼, 불안 또한 번거롭더라도 그 안에 감춰진 매듭을 풀어야 그 후의 삶이 술술 풀릴 수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환자와는 병증 치료와 함께 자신의 심장박동수를 이용해서 호흡을 조절하는 연습부터 시작했습니다.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회복하는 동시에 자신의 몸과 대화를 시작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선택한 기법이지요. 앞으로 이어질 과정을 통해 이 환자가 예민함과 불안을 넘어선 뭔가를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불안은 잠재울 존재가 아니라, 잘 다스려야 할 대상입니다.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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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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