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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오송 고속철을 지하로? 건설사만 배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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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오송 고속철을 지하로? 건설사만 배불린다

[기고] 국가기반시설이기에 더 많은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

이명박 정권 말기였다. 선로용량이 한계에 다다라 서울 동남부 수서로 이어지는 고속철도 노선을 건설하는데 이곳을 기점으로 한 고속열차는 민간 기업이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존 고속철도 노선에서 분기한 고작 60여 킬로미터의 신선을 빌미로 철도민영화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명분은 한국철도공사의 비효율이었다. 비효율의 원인은 독점에서 발생했고 대안은 경쟁체제 도입이었다. 국토부가 밀어붙였고 관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는 국책연구원 한국교통연구원이 이론적 근거를 꿰어 맞췄다.

다행히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 속에 여러 나라에서 참신한 대안으로 간주되었던 공공부문 민영화의 실체는 이미 드러나 있었다. 노엄 촘스키의 지적대로 민영화는 부패한 정권의 치부수단이었다. 권력의 수혜를 입어 공기업을 낚아 챈 기업들은 손쉽게 주머니를 챙겼다. 반면 시민들은 누군지도 모르는 주주들의 수익을 위해 주머니를 털렸다. 민영화의 폐해를 아는 시민들의 격렬한 반대는 집권말기 레임덕 정권의 민영화 시도를 막아냈다.

바톤을 이어받은 박근혜 정권은 집권하자마자 철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수서고속철도 운영회사 신설을 밀어붙였다. 마치 국가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듯 총력을 기울였다. 철도 경쟁체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한국철도가 곧 망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전국 고속도로 전광판에 까지 철도 경쟁체제는 반드시 도달해야 할 유토피아로 선전됐다. 철도노조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박근혜 정권과 국토부에 후보시절 약속했던 사회적 대화를 통한 철도개혁 방안 도출을 요구했으나 단칼에 무시됐다. 수 천 명의 경찰병력이 노조 지도부를 검거하기 위해 언론사에 난입하는 장면이 생중계되기도 했다.

국토부는 지난 달 28일 인천과 수원에서 KTX 이용이 가능하도록 철로를 신설·개량하는 '수원·인천발 KTX 직결사업 기본계획'을 고시했다. 한국철도를 살리는 길이 경쟁체제라면 인천발 KTX도 분리해서 회사를 출범시키는 게 타당할 진데 어쩐 일인지 조용하다. 부처의 명운이 걸린 것처럼 몰아부쳤던 국토부에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인지 묻고 싶다. 국토부는 26개에 이르는 영국 여객 철도회사와 6개사가 경쟁을 한다는 일본 철도 예를 들면서 독점인 한국철도의 무능과 부실을 꾸짖었었다. 수서발 고속철도 분리의 수많은 논리들은 인천발 KTX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두 회사가 경쟁하는 것보다는 더 많은 회사가 경쟁할 때 서비스도 가격도 낮아질 수 있는 것 아닌가?

경쟁이 기업을 혁신하고 이용자들의 만족도를 높인다는 사실은 일반론이다. 경쟁의 최종 목적은 경쟁사를 제치고 시장에서의 절대적 우위를 점하는 것이다. 경쟁에 밀려 한 때 잘나가던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몰락하거나 소멸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국가가 공적인 목적으로 시민에게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의 경우, 경쟁에서의 승리를 최고의 가치로 놓는 순간 이 블랙홀로 많은 것들이 빨려 들어간다. 안전, 고용, 요금 등 많은 것들이 엑셀파일의 수익성 목표 그래프 속에서 부차적인 요소로 정렬된다.

인천수원발 KTX가 개통되면 서울역이나 광명역을 이용해야 했던 수도권 서남부 지역의 KTX 이용 시민들에게 편리한 고속철도 이용환경을 제공하게 된다는 것이 국토부의 설명이다. 수서발 고속철도가 서울동남부와 경기 동부 지역 시민들의 고속철도 이용환경을 개선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정권이 숙원사업처럼 밀어 붙인 SR(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는 네트워크로서의 완결성이 중요한 철도를 왜곡시킨 사건에 불과하다.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코레일과 SR 통합의 로드 맵을 진행시켜야 한다. 서울역에서 더 할인된 요금으로 KTX를 이용하고 수서역에서도 마산, 진주, 포항, 여수 까지 직통으로 고속열차를 탈 수 있어야 한다.

한편, 국토부는 고속철도 평택~오송 구간(45.7㎞) 상하행 복선 선로를 지하에 건설한다고 밝혔다. 선로용량 한계치까지 운행하고 있는 병목구간 해소방안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지하 건설이다. 평택-오송구간 지하 선로는 이른바 대심도로 부르는 지하 40m 이상 깊이다. 철도 건설에서 터널은 바다 밑이나 험준한 산악지형 등 터널이 아니면 제대로 선로를 놓을 수 없는 곳에 적용되는 방식이다. 건설비 또한 지상건설과 교각 방식보다 훨씬 많이 든다. 단 지상방식보다 토지 보상비가 적게 든다는 점이 건설비용을 줄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건설사 입장에선 가장 많은 공사비를 챙길 수 있는 방식이다.

터널 방식의 문제는 사고 시 가장 위험한 구간이라는 점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프랑스와 영국을 잇는 유로 터널은 상하행 선 터널 사이에 비상시 대피용으로 보조터널을 만들었다. 또 375미터 마다 설치된 탈출로는 유사시 대피 통로로의 이동을 돕고 있다. 고속열차 길이가 편성에 따라 200-400미터 사이이니 375미터마다 설치된 탈출로는 열차 비상 정차 시 열차가 정차한 곳이나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승객 대피를 돕는다.

반면 지제-수서 지하 구간을 달리는 율현 터널은 3km마다 하나의 탈출구가 있다. 사고로 정차해 대피할 경우 어둠과 연기 속에서 수 킬로미터를 걸어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또 지난해 12월 언론 보도에서 드러났듯이 지상으로 향하는 17개의 수직 탈출구 엘리베이터 중 14개가 고장 났고 연기가 퍼지는 걸 방지하는 방화문은 12개가 불량이었다. 승객들은 탈출이 불가능하고 구조대가 출동해도 신속히 내려갈 수 없는 조건이다. 사고가 나면 지옥의 아비규환을 피할 수 없다. 수 십 만회 이상 없이 다녔다고 한들 단 한 번의 사고가 치명적 비극을 불러 올 수 있다.

평택-오송 구간이 바다나 산악지형도 아닌데 지하 수 십 미터 깊이로 고속선을 놓는 것이 타당한지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을 당국에 던지고 싶다. 어떤 깊은 뜻이 담겨있는지 알고 싶다. 한 번 건설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국가기반시설이기에 더 많은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열차를 타는 시민들은 깊은 지하에서 위험을 감수하기 보다는 차창 밖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여행하고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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