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지사가 논란이 많은 국내 1호 영리병원 허가 여부에 대해 '공론조사' 후 최종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시각과 함께, 어떤 선택을 하든 논란과 갈등을 불러일으킬 사안인 만큼 '묘수'라는 분석도 나온다.
제주도는 8일 오전 10시30분 한라홀에서 '숙의형 정책개발청구심의회'를 열고 녹지국제병원 관련 숙의형 정책개발청구에 대해 '공론조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녹지국제병원은 국내 1호 외국인 영리병원으로,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2월18일 제주도가 신청한 중국 녹지(綠地)그룹의 '녹지국제병원'의 설립을 승인하기로 결정했다.
정부 승인에 따라 녹지그룹은 녹지국제병원 건립에 나섰고, 지난해 8월28일 건물 준공을 마친 녹지그룹은 제주도에 녹지국제병원 개설허가 신청서를 접수했다.
서귀포시 토평동 제주헬스케어타운(77만㎡) 내 2만8163㎡ 부지에 47병상(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이미 완공되어 있다.
성형외과·피부과·내과·가정의학과 등 4개 진료과를 개설해 이미 의사(9명)와 약사(1명), 간호사(31명) 등 직원 134명을 채용하고, 제주도의 의료기관 허가만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후 정권이 바뀌었다. 박근혜 정부에선 영리병원에 우호적이었지만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부터 영리병원에 '부정적'이었다.
게다가 정권이 바뀌면서 시민사회와 보건의료노조는 물론 의사협회까지 '녹지국제병원' 개원 허가에 부정적인 목소리를 높였다.
통상적인 민원처리기간은 20일이다. 제주도는 녹지국제병원 개설허가 신청과 관련해 무려 5차례나 결정을 연기했다.
원희룡 지사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자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와 협의해서 개설허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 여부는 "제주도가 알아서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공을 넘겼다.
이런 와중에 의료영리화저지 운동본부는 지난 2월1일 제주도민 1068명이 서명한 '제주영리병원 숙의형 정책개발' 청구서를 제주도에 제출했다.
이상봉 의원의 대표 발의로 지난해 11월 전국 최초로 제정된 '제주특별자치도 숙의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주민참여 기본조례'는 '주민들은 제주자치도의 주요정책에 대해 19세 이상 도민 500명 이상의 연서를 받아 청구인 대표가 도지사에게 숙의형 정책개발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무한정 결정을 늦출 수 없는 난감에 상황에 놓였던 원희룡 지사는 결국 '숙의형 정책개발청구심의회' 권고 카드를 수용했다.
2월28일 '숙의형 정책개발청구심의회'를 구성했고, 8일만에 심의위원들이 만장일치로 공론조사를 결정하자 그 권고를 따르기로 한 것이다.
또한 공론조사는 신고리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선례를 따르기로 했다. 신고리원전 공론화위원회는 구성부터 최종 결론까지 4개월여가 걸렸다.
녹지국제병원 공론조사 역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최소 4개월은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원 지사는 "숙의형 정책개발청구심의회의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을 존중한다"며 "지역 차원에서 중요 현안에 대한 공론조사는 첫 사례로,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공론화를 통해 상반된 의견을 조정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공론을 형성해 제주의 자치역량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원 지사는 선거 정국에서 영리병원이라는 '뜨거운 감자'에서 한발짝 비켜설 수 있게 됐다. 시민사회와 의료계, 경쟁 후보들의 공세도 어느정도 피할 수 있게 됐다.
일각에선 민의를 따르려는 합리적 선택이라는 우호적인 반응과 함께 '시간벌기'라는 비판이 교차한다.
공론조사 카드가 결국 약발로 작용할 지, 부작용을 낳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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