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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고향’ 바람재에서! 살랑살랑 봄바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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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바람의 고향’ 바람재에서! 살랑살랑 봄바람 맞다

2018년 3월 백두대간종주18 <삼도봉권역 황악산구간>

백두대간학교(교장 이철승, 백두대간전문가) 2018년 3월 산행은 제78강으로 18번째 백두대간종주입니다. 3월 17일(토), <백두대간 삼도봉권역 황악산구간>입니다.

백두대간학교는 2016년 9월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했으며, 참가자 전원이 2016년 9월 <천왕봉구간>, 10월 <벽소령구간>, 11월 <금산구간>, 12월 <만복대구간>, 2017년 1월 <수정봉구간>, 2월 <고남산구간>, 3월 <봉화산구간>, 4월 <중재구간>, 5월 <백운산구간>, 6월 <노고단구간>, 7월 <영취산구간>, 8월 <남덕유산구간>, 9월 <무룡산구간>, 10월 <백암봉구간>. 12월 <대덕산구간>, 2018년 1월 <삼도봉구간>(번개진행), 2월 <석교산(화주봉)구간>(번개진행)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완주했습니다.

▲살랑살랑 바람재 표지석Ⓒ백두대간학교

[산행지안내]
유난히 동장군이 설쳤던 올겨울도 매서운 기운이 사라지고 어느덧 봄을 맞는 3월입니다. 백두대간학교 3월 종주는 살랑살랑 귓불을 간지럽히는 봄바람과 함께합니다. 바람의 고향 바람재가 자리한 황악산 자락으로 봄을 맞아 떠납니다. 질마재를 출발해 괘방령에 이르는 구간으로 바람재가 들려주는 봄이야기를 듣습니다. 또한 황악산이 간직한 문화유산의 보고(寶庫) 직지사와 불교에 관한 이야기 나누며, 여우들의 전설이 깃든 마루금도 걷고, 장원급제의 방이 걸렸던 괘방령에서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언 땅을 조심스레 밀어내고 얼굴을 내미는 노루귀와 함께하는 3월 백두대간학교 종주는 살랑살랑 봄바람과 함께 합니다.

[구간소개]
-산행월일 : 2018년 3월 17일(토)
-산행출발 : 2018년 3월 16일(금) 오후 11시
-산행코스 : 우두령-삼성산-여정봉-바람재-형제봉-황악산-운수봉-여시골산-괘방령
-산행거리 : 약 12.5km(도상거리)
-소요시간 : 약 8시간 (충분한 휴식시간과 식사시간 포함)
-난 이 도 : 중중(★★☆)

▲노루귀의 봄 인사Ⓒ백두대간학교

이철승 교장선생님으로부터 3월 산행지 설명을 들어봅니다.

여지없이 3월이 찾아 왔습니다. 강력한 한파로 온 국토를 꽁꽁 얼게 했던 동장군도 시나브로 찾아오는 계절의 순환에는 어쩔 수 없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부는 바람은 매서운 기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코끝으로 느끼는 훈풍에서 봄의 도래를 자연스레 체감하게 됩니다. 남녘에는 벌써 매화가 피고 섬진강 강섶에는 버들강아지가 토실토실하고 앙증맞은 솜털을 내밀며 봄이 찾아 왔음을 이야기합니다.

3월 백두대간은 봄을 맞으러 떠납니다. 잔설이 남아있는 마루금을 찾아갑니다. 3월 백두대간학교 종주는 백두대간 종주의 안녕과 무사 종주를 올리는 산신제와 함께 합니다.

소 등에 얹어 물건을 운반하는데 쓰는 질매와 닮은 고개인 질매재(우두령) 생태터널에서 산으로 들어갑니다. 3월이라고 해도 백두대간 마루금은 아직 겨울을 더 많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직 어둠에 잠겨 있는 산등성이에는 봄을 시샘하는 바람이 숨어 있습니다. 어둠이 물러나기 직전 미명의 시간, 동이 터오기 직전이 가장 추운 시간입니다. 낙엽들 밑으로 느껴지는 대지는 곳곳에 얼음을 숨겨두고 산객들을 맞이합니다. 꼼꼼하게 여미고 헤드랜턴 불빛을 비추며 겨울이 남아있는 백두대간으로 들어갑니다.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을 이어주는 우두령에서 황악산으로 이어진 마루금은 서서히 고도를 높이는 구간입니다. 해발 720m의 우두령에서 985m의 삼성산을 지나 1111m의 황악산에서 정점을 이루다 급히 머리를 낮추고 백운봉, 운수봉, 괘방령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낙엽아래 감추어진 얼음에 주의하며 우두령을 뒤로합니다. 한발한발 걷다보면 서서히 몸이 데워집니다. 870봉을 지나 호초당산 갈림길에서 마루금을 우측으로 이어집니다. 야트막한 오르막이 계속되고 잡목과 다래덩굴 사이를 지납니다.

동쪽으로 희미하게 보였던 덕대산이 먼동과 함께 완전하게 얼굴을 드러냅니다. 바로 삼성산입니다. 덕대산 아래 진밭산과 바래봉이 형제처럼 나란히 서 있습니다. 잠시 다리쉬임하며 여명에 휘감긴 사방의 산하를 눈에 담습니다. 산그리메입니다. 백두대간이 만들어주는 절창(絶唱)입니다. 산들이 들려주는 웅혼한 소리 한자락을 듣고 여정봉으로 향합니다. 붉은 달덩어리가 산그리메 위로 올라서면 넓은 안부에서 아침식사를 나눕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도반들과 반찬 나누며, 온기 나누며, 마음 나눕니다. 체력 소모가 많은 백두대간종주이기에 든든한 아침은 필수입니다.

▲바람재 뒤로 황악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백두대간학교

잡목 사이로 이어진 마루금은 여정봉을 지나면서 서서히 경사가 내려갑니다. 임도길과 겹쳐지며 붉은빛 황토가 허리를 드러내는 능선을 지나면 바람이 넘나드는 고개, 바람재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앙증맞은 표지석이 반갑게 맞이합니다. 바람재 아래로는 신선봉 밑으로 넓게 목장이 펼쳐 있습니다. ‘바람의 고개’ 바람재에는 봄을 알리는, 아직은 여린 바람들이 서로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들락날락합니다. 여린 바람 사이로 노루귀가 뽀송뽀송한 솜털을 내밀고 봄소식의 대열에 합류합니다. 남쪽 사면 낙엽을 헤치고 귀여운 얼굴을 내밀며 수줍게 인사합니다. 성백군 시인의 시로 노루귀의 인사를 전합니다.

노루귀
-성백군

산기슭 후미진 곳
참나무 그늘 밑에 돋아난 노루귀는
지난 가을 노루가 포수를 피해 도망가면서
빠뜨려 놓은 발자국에 들을 귀가 생긴 거라

겨우내
무서워 꼭꼭 숨어 지내다가
봄 되자 낙엽 헤치고 소리를 모으느라 쫑긋
어린 꽃봉오리에 뽀송뽀송 솜털이 난 거라
잘 했다고 예쁘다고
남 속 타는 줄 모르고 반기는 봄바람이
툭툭 치며 어를 때마다 청각은 방해를
받고, 대신에 꽃잎은 사방을 살피느라
활짝 벌어지는 거라

포수 노루 잡으려 왔다가
눈도장만 찍고 가네
그게 노루귀인 줄 모르고
사진을 찍어 컴퓨터에 담아 놓았던 기라
요즘은 인터넷 세상, 날마다 소식 전송해
포수는 맨날 허탕만 치고...

노루귀 있는 곳에는 노루가 없는 거라
노루가 아닌 거라 그게,
늦게 나온 풀잎이 노루귀를 닮았다는
미나리아재빗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인기라

바람과 노루귀가 전해주는 봄소식을 한아름 담고 형제봉으로 이어진, 아직은 앙상한 숲으로 들어갑니다. 아늑한 바람재 너른 안부를 지나면서 마루금은 고개를 곧추세웁니다. 신선봉 갈림길을 지나 형제봉까지는 오르막이 계속 이어집니다. 체력 안배하며 숨을 고르며 올라섭니다. 동쪽 산기슭 능여계곡 사이로 기와집이 보입니다. 바로 직지사입니다. 아스라이 보이는 직지사와 나란히 오르막을 올라갑니다. 직지사 갈림길을 지나서 더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면 황악산입니다. 황악산에서 서면 동으로 너른 김천평야가 아늑하게 너른 들을 드러내고 있고, 북으로는 백두대간 눌의산 아래 자리한 추풍령으로 이어진 경부고속도로와 철도가 실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남과 서로는 용틀임하는 백두대간 마루금과 푸근한 덕유산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황악산을 지나며 백두대간을 그 머리를 급격히 낮춥니다. 마을을 지나고 밭둑을 지납니다. 백두대간인지 마을길인지 구분이 아리송한 구간입니다. 속리산에 닿을 때까지 속세와 가장 가까이 접근합니다. 추풍령에서 화령까지 이어진 백두대간 중화지구입니다. 이 구간에는 1000m 이하의 산들이 구릉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물을 가르고, 마을을 가르고, 문화를 가르는 백두대간은 중화지구에서 모두를 아우릅니다. 백두산 장군봉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진 하나의 산줄기 백두대간은 중화지구를 지나며 온 산하를 보듬습니다. 백두대간은 하나의 산줄기가 아니라 우리 국토의 전부입니다.

황악산에서 운수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은 그야말로 급경사입니다. 약 500m의 표고차(標高差)가 납니다. 내리막에 주의해야 합니다. 역으로 올라서는 경우에는 심장 쿵쾅쿵쾅 숨이 꼴깍골깍 과부하가 걸릴 정도의 아찔한 구간입니다. 중간중간 쉼터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간간이 쉬면서 페이스를 조절하며 백운봉을 거쳐 사거리 안부까지 조심스레 내려서야 합니다. 직지사 갈림길 사거리에서 다 같이 모여 달콤한 휴식을 취합니다. 충분한 휴식은 남은 산행을 위한 보약 같은 시간입니다.

달콤함을 뒤로하고 괘방령을 향하여 힘차게 일어섭니다. 운수봉까지는 갈끄막 오르막입니다. 여시굴을 지나 여시골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은 산책길처럼 아기자기입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도반들과 소싯적 들었던 여우의 전설을 이야기하며 걷습니다. 백여우, 구미호, 여우며느리 등등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백두대간은 이야기의 보고입니다. 백두대간은 풍속의 집성체입니다. 백두대간은 우리 문화의 보고입니다.

장원급제의 이야기가 전해오는 괘방령에서 백두대간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괘방령 기슭에서 백두대간 종주의 무사와 안녕을 기원하는 조졸한 시간을 갖습니다. 함께 한 도반들의 건강과 행복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서로 복을 기원하며 마음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봄 가득 담은 고로쇠 수액 권하며 마시며 백두대간 무사 종주와 함께 합니다.

겨울이 많이 남아있는 3월 백두대간 산행은 바람과 노루귀가 들려주는 봄이야기, 백두대간이 만들고 이어온 우리의 인문학 이야기와 함께 합니다. 함께 걷는 백두대간학교는 도반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학교입니다. 혼자 걸으면 나만의 길이 되지만, 함께 걸으면 모두의 희망이 됩니다.

▲괘방령 표지석Ⓒ백두대간학교

[산행계획]
여유 있는 산행을 위해 일찍 출발합니다. 모든 산행은 전문산악가이드와 동행하며 '안전제일'로 진행합니다. 공인 등산가이드이신 이철승 교장선생님과 전문가이드 선생님이 선두와 후미에서 함께 하며 평안하고 안전한 산행을 진행합니다.

<버스운행>
출발 10분 전에 도착하여 버스에 탑승하세요. 버스 앞에 <백두대간학교> 표지가 붙어 있습니다. 김종선 기사님 전화번호는 010-3350-1055입니다.

3월 16일(금) 오후 11시
23:00 덕수궁 대한문앞 출발(지하철 1,2호선 시청역 2번출구)
23:30 사당역 공영주차장앞 출발(지하철 2,4호선 1번출구)
23:40 양재역 서초구청 폭포앞 출발(지하철 3호선 12번출구)
23:55 경부고속도로 죽전(하행) 버스승차장
3월 17일(토)
00:05 경부고속도로 신갈(하행) 버스승차장

<산행일정>
05:00 우두령 도착/산행 준비 & 스트레칭
05:20 우두령 출발 – 산행 시작
06:40 삼성산 – 안부에서 아침식사
07:50 여정봉
08:30 바람재
09:10 형제봉
10:00 황악산
10:50 운수암 네거리 안부 - 점심식사
12:40 여시골산
13:20 괘방령 – 산행 마감
버스 이동. 영동 황간 동해식당(충북 영동군 황간면) 도착. 올뱅이찌짐이, 올뱅이국밥, 막걸리로 뒤풀이
15:00 영동군 황간 출발
18:00 서울 도착(예정)
*상기 시간 일정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백두대간종주18 <황악산구간> 산행도Ⓒ백두대간학교

[산행준비물]
등산복, 장갑, 등산모, 방풍재킷, 우모복(다운재킷), 우의, 스틱, 물통, 여벌옷, 간식, 자외선차단제, 헤드랜턴, 버프, 스패츠, 아이젠, 아침과 점심도시락 등

<참가 신청 안내>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인문학습원'을 검색해 홈페이지로 들어오세요. 유사 '인문학습원'들이 있으니 검색에 착오없으시기 바라며, 반드시 인문학습원(huschool)을 확인하세요(기사에 전화번호, 웹주소, 참가비, 링크 사용 등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이 있어 이리 하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홈페이지에서 '학교소개'로 들어와 '백두대간학교'를 찾으시면 기사 뒷부분에 상세한 참가신청 안내가 되어 있습니다^^
★인문학습원 홈페이지를 방문하시면 참가하실 수 있는 여러 학교와 해외캠프들에 관한 정보가 있으니 참고하세요. 회원 가입하시고 메일 주소 남기시면 각 학교 개강과 해외캠프 프로그램 정보를 바로바로 배달해드립니다^^
★백두대간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2018년 4월 백두대간종주 19구간 산행 안내]
-산 행 지 : 백두대간 삼도봉권역 눌의산구간
-산행일시 : 2018년 4월 21일(토) - 당일 산행
-출발일시 : 2018년 4월 21일(토) 오전 6시
-산행코스 : 괘방령-가성산-장군봉-눌의산-은편마을-추풍령
-산행거리 : 약 10.4km
-소요시간 : 약 6시간 30분
-난 이 도 : 중하(★★☆)
*상기 일정은 현지의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습니다.

[산행자료]
[우두령(질매재)] 730m.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을 이어주는 901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고갯마루이다. ‘질매’라는 이름은 이 고개의 생김새가 마치 소 등에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 때 안장처럼 얹는 ‘길마’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질매는 길마의 이 고장 사투리다. 이 말이 한자화하여 우두령(牛頭嶺)이라고도 불리는 것이다. 우두령 생태터널이 있고 소 모양의 우두령 표지석이 서 있다.

[삼성산] 985m. 동으로 진밭산, 동구지산, 덕대산 등이 조망되며, 서쪽으로 흥덕리의 깊은 계곡이 펼쳐져 있다. 충청북도 영동군 쪽으로 경희대연습림 조림지가 있다.

[여정봉] 1034m. 황악산 방향으로 경사가 가파른 봉우리로 정상은 나무들이 빼곡하여 조망이 없다.

[바람재] 810m. 바람에 흔들리는 앙증맞은 표지석이 서 있는 바람재, 바람이 불 때면 사람이 날아갈 듯 세차게 분다 해서 바람재라 한다.
한때 아마추어무선(HAM)이 유행할 때 아마추어 무선사들이 새로운 무전기의 교신 거리와 성능을 실험하기 위해 종종 찾았던 곳이다. 50W 정도의 출력을 내는 무전기로도 일본과 교신이 될 만큼 전파가 잘 터지는 바람재는 과거 주한미군이 주둔하기도 했다. 자동차 2∼3대가 겨우 올라 설 수 있는 꼭대기까지 길을 낸 것도 그들이었다. 발을 들여놓기 곤란할 만큼 망가진 데다 쓰레기투성이가 된 콘크리트 벙커가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바람재는 90년대 백두대간을 종주 산행을 하는 종주 도전자들에게도 중요한 곳이었다. 남으로 우두령에서 북으로 괘방령까지 긴 산길에서 유일하게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인 데다 목장까지 있어 등산객들에게는 좋은 쉼터가 돼 온 탓이다. 해발 870m의 21만여 평의 목장은 1994년에 모습을 갖추었으나 지금은 소 울음소리는 사라지고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다. 지금은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표지석만 덩그러니 남아 산객들을 맞이한다.

[형제봉] 1020m. 정상에 표지석도 없고 쉴 만한 공간도 없는 능선 봉우리이다. 조망도 트이지 않고 다만 황악산 비로봉만 올려다 보인다. 잠시 내려섰다 올라서면 바로 황악산 정상이다. 두 개의 봉우리가 사이좋게 나란히 있어 형제봉이라 불리는 듯하다.

[황악산] 1111m. 형제봉에서부터 황악산까지는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다. 하지만 부드럽다. 비록 ‘악(岳)’자가 붙었긴 했지만 산세는 지극히 순한 육산이다. 그래서인지 국토지리정보원의 1:50,000 지도에는 황학산(黃鶴山)으로 표기돼 있다. 예로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黃鶴山)으로 불렀다고 하며 지도상에도 흔히 그렇게 표기되어 있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여지도> <택리지> 같은 문헌 및 직지사의 현판에 ‘황악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굳이 ‘岳’에 대한 의미 부여를 하자면, 북에서부터 내려오는 대간의 줄기가 속리산에서부터 이렇다 할 산을 솟구치지 못하던 차에(속리산에서 황악산 사이에 1,000m가 넘는 산은 하나도 없음) 1111m나 되는 산을 만나고 보니 당연히 그런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또한 이 산 이름의 첫 글자인 황(黃)은 오방색(五方色) 중 가운데를 나타내는 색인데, 옛 사람들도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명명했을 것 같다. 실제로 황악산은 삼면 바다를 기준으로 봤을 때 한가운데에 있다.

[직지사] 황악산(黃岳山)의 ‘황’자는 청(靑), 황(黃), 적(赤), 백(白), 흑(黑)의 5색(色) 중에서도 중앙색을 상징하는 글자이다. 따라서 황악산에 자리잡은 직지사는 예로부터 해동(海東)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으뜸가는 가람이라는 뜻에서 ‘동국제일가람(東國第一伽藍)’이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김천까지는 12km이고, 다시 김천에서 서울까지는 230km, 부산까지는 218km로서 남한의 중앙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절의 이름에 대해서는 아도화상이 도리사를 창건한 후 멀리 황악산 직지사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저곳에 절을 지으라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과 성주산문의 조사 무염대사가 머물렀던 심묘사에 부속된 절로 남종선의 가르침인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을 표방한 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또한 고려시대에 능여대사(能如大師)가 이 절을 세울 때 자[尺]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측량하여 지었다고 해서 직지사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645년(선덕여왕 14) 자장율사가 중창한 이래로 930년(경순왕 4), 936년(태조 19)에 천묵대사(天默大師)와 능여대사가 각각 중창하여 대가람이 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사명대사(四溟大師)가 출가하여 득도한 절로도 유명하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1735 중건)을 비롯하여 천불이 모셔져 있는 비로전(1661 창건)·약사전·극락전·응진전·명부전·사명각 등이 남아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금동6각사리함(국보 제208호), 석조약사불좌상(보물 제319호), 대웅전앞 3층석탑 2기(보물 제606호), 비로전앞 3층석탑(보물 제607호), 대웅전삼존불탱화 3폭(보물 제670호), 청풍료앞 3층석탑(보물 제1186호) 등이 있다.

[직지사대웅전삼존불탱화] 보물 제670호. 비단 바탕에 채색. <영산회상도>는 세로 600cm, 가로 300cm, <약사불회도>와 <아미타불회도>는 각각 세로 610cm, 가로 240cm 크기로 대웅전에 모셔진 약사불·석가모니·아미타불상의 후벽에 걸려 있는 3폭의 탱화로 중앙에는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그 좌우로 약사불회도(藥師佛會圖)·아미타불회도(阿彌陀佛會圖)가 각각 배치되어 있다.
<화기(畵記)>에 따르면 1774년(영조 20)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삼불탱화는 조선 후기에 크게 유행했는데 주로 대웅전에는 석가모니·아미타불·약사불의 삼신불을 배치하고, 대광명전에는 비로자나·노사나·석가불의 삼신불을 봉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먼저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하는 장면으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취하고 있으며 그 주위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비롯한 8대 보살, 10대 제자 그리고 이들을 지키는 사천왕과 팔부중의 천부신장상이 둘러싸고 있는 복잡한 군도(群圖) 형식을 이루고 있다.
약사불회도는 왼손에 약합을 들고 있는 약사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8대보살과 범천, 제석천이 겹겹이 서 있으며 그 아래쪽으로는 협시보살인 일광·월광 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본존불 위로 10대 제자 이외에 약사불의 권속인 십이신장(十二神將)이 표현되어 있어 다른 탱화보다 훨씬 복잡한 구도를 보여준다.
아미타불회도는 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을 나타낸 그림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비롯하여 8대 보살이 화면을 빽빽이 메우고 있으며, 명부의 구제자인 지장보살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 3폭의 불화는 거의 유사한 형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본존불 중에서 석가모니만 법의를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걸치고 그외에는 모두 통견(通肩)으로 입었다. 또한 머리 위에 장식된 2개의 계주(髻珠), 작고 조그마한 이목구비의 처리, 광배 안에 표현된 물결무늬, 법의의 장식문양 등에서는 조선 후기 불화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양식적 특징과 유사한 점이 발견된다. 이러한 형식의 삼불회탱화로는 쌍계사 삼불회탱화(1781)와 보경사 삼불회탱화(1778) 등을 들 수 있는데 특히 보경사 탱화는 1폭에 삼불이 그려졌지만 배치와 구도는 군도 형식을 따르고 있다.

[직지사석조약사불좌상] 보물 제319호. 총높이 161cm, 상높이 126cm. 광배와 불신은 같은 돌로 만들어졌으나 사각형의 대좌가 원래 함께 있었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머리와 큼직한 육계는 소발로 표현되었으며 얼굴은 심하게 마멸되어 세부표현을 전혀 알아볼 수 없다. 어깨는 둥근 편이며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갔으나 가슴은 볼륨감 없이 빈약하게 처리되었다. 법의는 우견편단으로 걸쳤으며 옷 주름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간략하게 흘러내리면서 결가부좌한 다리의 중심으로 몰려 있어 형식화되어 있다. 오른손은 무릎에 대고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으나 다리 위에 놓인 왼손은 약함을 들고 있어 일반적인 항마촉지인과는 약간 다르며 손과 무릎이 밀착되지 않아 마치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 어색한 느낌을 준다.
광배는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주형거신광배인데 2줄의 선으로 구분된 두광과 신광에는 당초무늬를 조각하고 그 바깥쪽으로는 화염무늬를 장식했으나 선이 굵고 생동감 없이 처리되었다.
이 불상은 불신에 비해 머리와 무릎 부분을 크게 표현하여 전반적으로 균형감을 이루지 못하고 빈약한 체구나 어색한 손의 위치, 간략한 옷주름 표현 등에서 통일신라시대 불상 양식과는 차이를 보이므로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백운봉] 황악산의 동봉(東峰)이자 직지사 백련암의 배후에 자리한다. 황악산의 일봉이지 독립 봉우리는 아니다. 직지사로 연결된 능여계곡이 가장 잘 내려다보인다. 이곳에서의 ‘백운’은 일반명사에 가까운 고유명사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운수봉] 680m. 직지사의 부속 암자인 운수암의 북쪽 봉우리다. 직지사가 있는 능여계곡의 행정구역이 대항면 운수리이므로 마을 이름과 관련되어 있다. 황악산 자락에 딸려 있는 조그만 봉우리로, 산 이름에 ‘물수(水)’자를 쓰는 특이한 곳이다. 정상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구름이 머물고 골짜기에 물이 흐르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여시골산] 620m. 여시골산(620m)은 운수봉과 괘방령 사이의 백두대간 상에 있다. 여시골산이라는 이름은 ‘여우’의 경상도 사투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대간 마루금 위에 매몰된 동굴이 있는데 여우굴이라 불린다. 여우와 관련된 지명이 많은 것으로 미루어 예전에는 여우들의 통행로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괘방령] 357m. 충북 영동군 매곡면과 경북 김천시 대항면을 이어주는 977번 지방도로 위에 있는 고갯길이다.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지역으로, 조선시대부터 괘방령이라 불리고 있다. 괘방령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때 이 고개를 넘어 과거를 보러 가면 급제를 알리는 방에 붙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인근의 추풍령이 국가업무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관로(官路)였다면 괘방령은 과거시험 보러 다니던 선비들이 즐겨 넘던 과거길이며 한성과 호서에서 영남을 왕래하는 장사꾼들이 관원들의 간섭을 피해 다니던 상로(商路)로서 추풍령 못지않은 큰 길이었다. 특히 과거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추풍낙엽(秋風落葉)’을 연상시키는 추풍령보다는 급제자들의 이름을 거는 ‘괘방(掛榜)’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 고개를 지나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추측도 후대의 의미 부여이기가 쉽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괘방(卦方)’으로 적혀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의 지명 표기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掛榜이든 卦方이든 한글 표기는 ‘괘방’이어야 하는데 ‘궤방’으로 적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은 임진왜란 때 박이룡 장군이 왜군을 상대로 격렬한 전투를 벌여 승전을 거둔 격전지로서 북쪽으로 1km 떨어진 도로변에는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지은 황의사라는 사당이 있다. 비록 이곳이 해발 300m의 낮은 고개이지만 민족정기의 상징인 백두대간의 정기가 잠시 숨을 고르다 황학산으로 다시 힘차게 뻗어 오르는 곳이며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기도 하여 북쪽으로 흐르면 금강, 남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괘방령산장] 전원생활을 그리워하던 산장 부부가 가정집으로 지으려다가 산객들의 성화에 못 이겨 산장 아닌 산장이 되었다고 한다. 부부가 손수 3년여 공사 끝에 2007년 11월에 완공했다. 대간 상에 많은 산장이 있지만 이들은 대간 마루금에서 많이 벗어나 있어 이용하기가 힘들지만 괘방령산장은 대간 마루금과 접하고 있어 이용하기 편리하다. 소싯적 언더그라운드 기타리스트였던 괘방령 산장주와 그의 아내가 백두대간 산객들을 맞이한다. (자료출처 : 아름다운소통(협), 백두대간학교, 국리공원관리공단, 한민족문화백과 등)

[백두대간학교]
백두대간학교 이철승 교장선생님은 오랜 동안 백두대간학교 수석가이드로 활약해주셔서 낯익은 얼굴입니다. 산행 경력 30년의 저명한 M.T.디자이너이며 국가공인 숲길체험지도사(산림청), 응급처치법 강사(대한적십자)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배낭 하나 메고 지리산을 제집 드나들듯 들락거렸습니다. 산으로 들어가면 입 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며 얼굴이 환해집니다. 천상 산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연이어 정맥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등산학교를 졸업하고 백두대간 가이드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산악회 가이드, 기업체 가이드, 목적산악회 가이드 등으로 활약하며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가이드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인문학습원 백두대간학교 개교부터 가이드로 동분서주했습니다.
백두대간 교양강좌, 트레킹학교 등의 실무를 도맡아 진행했고, 아이들과 뚜르드몽블랑(TMB), 몽블랑 일주 트레킹을 다녀왔으며, 흥덕고등학교 백두대간 종주대 <백두대간 하늘길를 걷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아이들과 백두대간 숲길을 거닐며 바람과 햇살, 구름, 안개, 곤충과 나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백두대간종주를 시작하며 이렇게 얘기합니다.

백두산 장군봉에서 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진 산줄기 ‘백두대간’ 총 길이 1,625km의 백두대간은 단순한 산줄기가 아닙니다. 이 땅 모든 산줄기와 강줄기의 시원입니다. 또한 한반도 허파이자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이 땅에 기대어 살고 있는 모든 생명의 근간입니다. 백두대간 줄기 따라 물이 흐르고, 마을이 생겨 사람들이 깃들어 살았습니다. 공동체가 형성되고 문화가 생성되었습니다. 백두대간은 우리의 삶이며 우리의 문화의 결정체입니다.

생명의 근간인 백두대간을 찾아가는 백두대간 종주는 우리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우리의 삶과 문화에 대한 이해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인문학의 보따리를 찾아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입니다.

지난 6년간 60강에 걸쳐 백두대간 아름다운 산하를 걸었던 백두대간학교는 백두대간의 결정체인 백두대간 마루금을 걷습니다. 총 길이 1,625km의 백두대간 중 우리가 걸을 수 있는 남측 구간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강원도 고성 향로봉까지 701km입니다. 이중 비법정탐방로 79.9km를 제외하면 도상거리 621.1km입니다. 접속구간을 포함하면 실제 백두대간 종주거리는 약 1,000km에 이릅니다.

2016년 9월부터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합니다. 우리의 삶과 문화를 찾아 떠납니다. 마음 한켠 간직해왔던 꿈을 찾아 떠나는 희망의 발걸음입니다. 백두대간 종주는 힘든 여정이지만 도반들과 함께라면 거뜬하게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혼자 걸으면 나의 길이 되지만, 함께 걸으면 모두의 희망이 됩니다.” 모두의 희망인 ‘백두대간 종주’ 힘차게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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