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와 유시민이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라는 그의 주장에 대해 여기서 상세한 논쟁을 벌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노무현 정권의 성격과 정책에 대한 나의 평가는 "신자유주의국가의 대안을 찾아서", 이정복 편, 『21세기 한국정치의 발전방향』,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9 참조)
그런데 마치 내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하나만을 놓고 참여정부를 '신자유주의 정부'라거나, 유시민을 신자유주의자로 단정하고 있는 듯이 말하고 있는 것은 그의 완전한 오독이다. 예를 들어 '큰 정부'를 지향했다고 하지만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 갔다"고 주장하면서 적극적인 시장규제책의 강구를 포기한 사람은 다름 아닌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참여정부가 공기업 민영화를 중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대신 공기업 운영의 기업화-시장화를 추구했다. 국립대의 민영화를 추진하는 대신 국립대 운영의 기업화-시장화를 위해 국립대 법인화를 밀어붙이려고 한 것과 마찬가지다. 참여정부가 복지지출을 증대시키고 보다 내실 있는 복지정책을 강구하려 했고, 또 이를 통해 복지지출의 빈곤감소 효과를 증대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정책은 사회양극화 과정 자체를 완화하는 데에 기여한 것이 아니라 그 속도를 일정하게 완화하는 데에 기여했을 뿐이다. (이 점은 2002-2006년 동안 복지지출이 정부예산의 22.6%에서 27.9% 늘어 가장 비중이 큰 예산 지출항목이 되었고, 이에 힘입어 지니계수 개선효과가 3.62%(2003년)에서 5.52%(2006년)로 높아졌지만, 가처분소득의 지니계수가 2002년 0.324에서 2006년 0.325로 오히려 약간 증대한 사실에서 그대로 들어난다.)
보수진영으로부터 '세금폭탄' 등의 비난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것은 부동산 시장에 대한 규제 완화 등이 가져온 유례없는 '부동산 가격 폭등' 에 대한 사후약방문식 처방이었다. 노무현이 "신자유주의를 반대하지도, 지지하지도 않았고, 신자유주의의 현실을 인정"했을 뿐이라고 강변했지만, 신자유주의의 현실을 '타개'하려 한 것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원치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피할 수 없는 대세로 '인정'하고 거기에 '적응'하려 한 것이 내가 그를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자로 보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유시민 대표가 진보진영과 함께 하려면 '진지한 반성'이 우선돼야 한다. 사진은 26일 진보신당 당대회에 참석한 유시민 대표(맨 오른쪽) ⓒ뉴시스 |
노무현을 '좌파' 신자유주의자로 규정한 것은 (처음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긴 하지만) 사회양극화 과정을 일정하게나마 완화시키려 한 그의 노력 때문이다. 그를 '좌파' 신자유주의자로 부른 것은 친시장, 친재벌-친부자 정책을 더욱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현 정부의 '우파' 신자유주의 노선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신자유주의의 양대 조류를 구분하기 위해 그런 개념들을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런 나의 지적들 보다 더 중요한 점은 나를 비롯한 진보진영이 파악하는 바의 신자유주의와, 이백만이 파악하는 바의 신자유주의 간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그의 주장은 "박정희가 주장한 '한국적 민주주의'도 민주주의다"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적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간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닮았다고 생각된다. 그는 "참여정부와 유시민의 노선이 신자유주의가 아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진보진영과 노무현-유시민 간에 가로놓여 있는 노선 상의 중요한 차이를 별거 아닌 양 어물쩍 얼버무리려고 한다. 그는 '경계 허물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그의 시도는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 가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진지한 성찰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파악과 성찰을 어렵게 만드는 '초점 흐리게 만들기'를 통한 경계허물기 시도라 규정할만하다.
유시민이 진보진영과 정말 함께 하고 싶으면, 이런 따위의 시도는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내가 과거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차기 대선 후보 포기와 같은) 그런 반성의 진정성을 보임이 없이 "나는 신자유주의자인 적도 없고, 지금도 아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진보와 신자유주의의 경계를 허물려고 하는 것을 '정치적 사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의 격에 맞지 않는 격한 표현이라고? 천만에, 정확한 표현이다. 황우석 사건이 났을 때 여러 학자들이 그 사건을 '과학적 사기사건' 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사태의 정곡을 찌르는 '학술적' 규정이었다. 유시민과 국민참여당이 계속 지금 행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말장난으로 진보대통합 문제에 접근하려 든다면, 나는 앞으로도 그런 행보를 '정치적 사기'로 규정하는 것보다 더 정확한 다른 표현을 찾아내기가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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