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대 반민주'에서 '보수 대 진보'로
이러한 흐름에는 몇 가지 눈여겨 볼 대목이 있다. 첫째, 민주화 시대의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이명박 정부를 경유하면서 '보수 대 진보'의 구도로 변모해 가고 있다. 이와 연관해 주목하고 싶은 것은 지난 5월 초 이뤄진 한겨레신문의 조사다(5월 11일자). 한겨레신문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의원들의 71.4%가 '중도진보'를 자신의 이념 좌표로 선택했다(전체 응답자 70명 가운데 50명). 이명박 정부 아래서 민주당은 '3+1 보편 복지'에서 볼 수 있듯이 서서히 좌클릭해 온 셈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민주당이 과거의 노선으로부터 완전히 단절한 것은 아니다. 같은 조사에서 이뤄진 다른 질문, 앞으로 나아가야 할 비전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61.4%가 '중도개혁노선'이 바람직하다고 답한 반면, '새로운 진보'로 답한 의원들은 34.3%였다. 이러한 응답은 적지 않은 의원들이 중도개혁노선에 여전히 상당한 미련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강조하려는 것은, 더디기는 하지만 이러한 이념구도의 변화에는 최근 한국사회의 구조변동이 반영돼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2010년 무상급식 논쟁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목도하면서 '대안이 없다'는 신자유주의의 논리가 결국 균열되기 시작했으며, 무상급식 논쟁을 통해 보편 복지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계몽이 이뤄져 왔다.
진보적 관점에서 이런 일련의 변화에 담긴 함의를 나는 '성장주의와의 결별'이라고 이름 짓고 싶다. 그 동안 한국사회에서 성장의 문제는 진보세력, 특히 중도개혁을 표방한 정치세력에게는 일종의 아킬레스건이었다. '동반성장', '차별 없는 성장', '포용적 성장', 그리고 '진보적 성장' 등 다양한 성장담론들은 바로 개혁 내지 진보세력이 제시한 것들이었다. 선진국을 따라가야 하는 1960년대 이후 '추격산업화'의 역사적 경험은 보수든 진보든 성장담론의 특권화를 요구했으며,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성장에 대한 무한 욕망을 부추기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교과서적으로 보면 보수 대 진보는 시장 대 국가, 성장 대 분배가 그 기본 구도를 이룬다. 서구사회의 역사적 경험을 보면 보수라고 해서 국가와 분배를, 진보라고 해서 시장과 성장을 간과하지 않았지만, 분명 그 무게 중심은 다르다. 연구자적 감각으로는 이명박 정부에 와서야 비로소 한국사회에서 보수 대 진보의 구도가 제대로 자리잡아가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 속에서 '계급적 균열'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물질 대 탈물질', 임박한 새로운 균열 구도
둘째, 새로운 균열의 등장이 가시화되고 있다. 그 동안 우리 정치 및 시민사회에서 중요한 균열은 지역·세대·계급에 기초한 것이었으며, 이 가운데 특히 영향력이 컸던 것은 지역과 세대였다. 내가 주목하려는 새로운 구도는 생태·평화 가치를 둘러싼 균열이다. 생태·평화 균열의 중요성은 지난해와 올해 한국사회에서 대중적 관심이 컸던 일련의 사건들에서 관찰할 수 있다.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구제역 사태, 그리고 최근 일본 원전 사태 등은 한국사회로 하여금 평화와 생태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이 가운데 한반도 군사·정치적 긴장을 어떻게 완화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미 강압정책이냐 포용정책이냐를 두고 구도가 형성돼 있었지만, 구제역 사태와 일본 원전 사태는 환경과 생명에 대한 생태적 계몽의 중대한 계기를 제공했다.
이와 연관해선 최근 독일 녹색당의 약진이 주목할 만하다. 지난 3월 독일 녹색당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선거에서 사민당을 제치고 제2당의 지위를 차지함으로써 적녹연정을 통해 최초의 녹색당 출신의 빈프리트 크레치만 주총리를 배출했다. 이러한 결과는 물론 일본 원전 사태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최근 독일을 포함한 서유럽의 정치 지형에서 녹색당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세계사회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포스트 신자유주의 체제'로 나아가면서 '개발 대 환경'의 균열 구도가 시장 대 국가, 성장 대 분배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개발 대 환경의 균열 구도는 '문명 대 자연', '욕망 대 가치', '가부장주의 대 여성주의' 등 여러 균열 구도와 중첩돼 있으며, 정치학자 로날드 잉글하트가 일찍이 제시한 바 있는 '물질 대 탈물질'의 균열 구도가 시민사회 내 중요한 대립구도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음을 상징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물질 대 탈물질의 구도가 우리 사회 내년 선거에서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본 원전 사태에 대한 대중의 관심 변화를 지켜보면 이 균열의 현실정치적 영향력은 아직까지 그렇게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후변화를 포함한 일련의 생태적 의제들의 전면적인 부상은 한국사회에서도 임박해 있으며, 내가 보기에 2008년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생명주의 옹호에서 그 뚜렷한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내년에 치러질 두 개의 선거는 한국사회에서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정치적 전환점을 이룰 가능성이 높다. ⓒ프레시안 |
더 많은 토론, 더 많은 논쟁을 위하여
다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내년에 치러질 두 개의 선거는 한국사회에서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정치적 전환점을 이룰 가능성이 높다. 1987년 이후 한국사회를 지배해 온 두 개의 동력은 민주화와 신자유주의다. 내년 총선과 대선은 반독재 투쟁으로서의 민주화와 시장만능주의로서의 신자유주의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새로운 정치·사회 구도를 형성하고 구조화시키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다.
어느 사회이건 통합의 시기와 쟁투의 시기가 교차돼 역사가 진행된다. 쟁투성에 담긴 갈등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갈등을 통해 문제의 본질에 비로소 다가설 수 있으며, 본질에 정직하게 대면할 때만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사회학 연구자로서 나의 바람은 간단하다. 불가피하게 열리게 될 정치적 국면이라면 보수 대 진보든, 선진화 대 복지국가든, 물질 대 탈물질이든, 생산적인 정치적 대립구도를 위한 주체적인, 그리고 능동적인 논쟁이 이뤄져야 한다. 진보개혁적 지식인들의 더 많은 토론, 더 많은 논쟁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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