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김어준 씨가 성폭력 피해 고발 운동인 '미투'에 대해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라는 부적절한 발언을 한 데 대해 여야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김 씨는 지난 24일 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미투'를 보면 '지지해야겠다', '이런 범죄를 엄단해야겠다'는 게 일반적 정상적 사고방식"이라면서 "그런데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어떻게 보이냐. '첫째, 섹스, 좋은 소재. 주목도 높다. 둘째, 진보적 가치. 그러면 피해자들을 준비시켜서 진보매체를 통해 등장시켜야겠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다.' 이렇게 돌아간다"고 했다.
김 씨의 발언은 전형적인 진영 논리로, 보수진영을 겨냥한 '미투'와 진보진영을 겨냥한 '미투'를 분리하고 후자에 대해 사전 방어선을 치고 있다. 김 씨의 말대로라면, 진보진영을 겨냥한 성폭력 피해 고발은 문재인 정부 지지자를 분열시키기 위한 "타깃"을 설정하고 나온 것으로 의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100인위 사건'에서부터 보듯, 한국사회에서 성폭력은 보수·진보진영을 가리지 않고 있어 왔다. 김 씨 본인도 2012년 일명 '나꼼수 비키니 사태'로 도마에 오른 전력이 있다. (☞관련 기사 : <나꼼수> '실패한 농담'이 남긴 뒷맛)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25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피해자들의 인권 문제에 무슨 여야나 진보·보수가 관련이 있느냐. 진보적 인사는 성폭력을 저질렀어도 방어하거나 드러나지 않게 감춰줘야 한다는 말이냐"며 "어떻게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금 의원은 "눈이 있고 귀가 있다면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피해자들이 겪어야 했던 일을 모를 수가 없을 터"라며 "깊이 실망스럽다"고 했다.
금 의원은 특히 김 씨가 "누군가들이 나타날 것이고, 그 타깃은 어디냐. 결국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진보적인 지지층"이라고 한 데 대해 "글자 그대로만 보면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앞으로 나타난다는 '누군가들'은 분명히 피해자들"이라며 "많은 것을 걸고, 뻔히 보이는 고통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는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하는 것'이라는 지적을 할 수 있는지, 혹은 앞으로 그럴 수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고 '예언'할 수 있는지 저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고 거듭 비판했다.
금 의원은 이어 "'미투는 옳지만 이용당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말은 그럴 듯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전혀 앞뒤가 안 맞는 말이고 피해자들에게 2차 피해를 입힐 수 있다"며 "(김 씨 비판) 글을 내리라는 분들도 있던데, 그간 저에게 성폭력 피해를 털어놓고 힘들어하던 피해자들의 얼굴을 떠올릴 때 저는 조금도 그럴 생각이 없다. 김어준 씨가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 상처입은 분들에게 사과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금 의원은 이 와중에 김 씨를 옹호하는 이들로부터 댓글 등으로 항의를 받기도 했다.
중도개혁보수를 내세우고 있는 야당 바른미래당은 권성주 대변인 명의 논평을 내어 김 씨의 발언이 "성폭력 피해자를 '공작원'으로 모독"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른미래당은 "권력자에 의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성폭력 피해자의 용기가 권력을 비호하는 방송인의 입으로 심각하게 모독됐다"며 "성폭력 피해자마저 보수와 진보, 좌우의 정치 논리로 악용한 김어준의 망언은 지금껏 드러난 그 어떤 추악한 성폭력보다 질이 나쁘다"고 비판했다.
권 대변인은 특히 "청와대는 지금껏 함구해온 이윤택 연출가를 비롯한 친정부 인사들의 성폭력 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입장을 밝히고, 약자들의 상처가 2차 피해 앞에 노출되지 않도록 적극 나서 달라"며 "만약 계속해 함구한다면, 진보 정권을 비호하는 김어준과 같이 성폭력 피해자를 진보세력 분열을 위한 공작원으로 인식하는 청와대를 국민들이 심판할 것"이라고 김 씨를 넘어 청와대까지 겨냥했다.
반면 여당 내 일각에서는 김 씨에 대한 옹호가 나오기도 했다. 손혜원 의원은 김 씨를 비판한 금태섭 의원을 호명하며 "의원님, 이것은 '댓글단'의 공작이다. (김 씨에게) 생채기를 내려는 악성 댓글공작"이라고 주장했다. 손 의원은 "(김 씨에 대한 비판은) 김 씨의 '예언'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댓글단과 보수언론의 전형적인 이슈몰이"라고까지 했다. 김 씨의 발언 때문에 진보진영 인사를 겨냥한 '미투'가 "타깃"성 "공작"으로 폄훼될까 우려하던 이들은 졸지에 "댓글단"이 됐다.
손 의원은 이어 올린 글에서 "시사에 대한 약간의 상식과 고2 국어 수준의 독해력이 필요한 문장이었지만 이렇게 해석이 분분할줄 몰랐다"며 "괜한 상상력으로 억측 말고 김 씨의 글(팟캐스트) 전문을 읽어보실 것을 제안한다"고 김 씨를 거듭 옹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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