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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진중권'이 교단에서 쫓겨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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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수많은 '진중권'이 교단에서 쫓겨나는 이유

[창비주간논평] 대학강사 착취가 계속되는 한 교육 정상화는 없다

요즈음 유행어는 '관행'이다. 아무리 심한 시대착오적인 부조리라도 이해집단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관행을 내세우며 변화나 개선을 거부한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식 밖의 일도 관행으로 통한다. 이때의 관행이란 폭력에 가까운 횡포이다. 대학강사 문제가 바로 그렇다.

지난 7월초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되자 대학에서 4학기 연속 강의한 비(非)박사 시간강사들의 해고 쓰나미가 시작되었다. 9월에야 교과부에서 정치권에 통계자료를 내놓았는데, 예상한 대로 조사에 응한 112개 대학에서 1219명을 해고했다. 하지만 비정규교수 노조가 있는 몇몇 대학에서만 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들 학교에서도 노조 간부 외에는 해고 당사자들이 거의 나서지 않았다. 정규직교수나 지식인 사회, 교수단체들마저 무관심하거나 침묵했다.

비정규직 보호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대학강사

전국 대학에서 강사 7만여명이 강의의 절반을 담당한다. 이들은 연구·강의에서 전임교수와 차이가 없고 헌법에 교원의 신분을 법으로 보장하는 교원지위법정주의가 엄연히 있지만, 현행 고등교육법 상으로 강사에게는 교원지위가 없다. 처우는 2008년 전국 평균 주 4.2시간 강의에 연 강의료는 487.5만원이다. 그것도 한 학기 단위로 대부분 계약도 없이 강의가 있으면 구두로 연락을 받는 것이 관행이다.

이런 관행에 익숙한 강사들은 연락을 못 받으면 그저 '강의가 없나 보다' 여길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진중권 교수의 예를 보더라도 여러 대학에서 한꺼번에 해고되어도 별 방법 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강사가 적극적으로 교원지위 회복에 나서거나 처우 개선에 앞장설 수도 없다. 나서는 순간 교수시장에서 매장되고 마흔이 다 되어 받은 박사학위가 소용없게 될지 모른다는 불암감 때문이다.

▲ 총학생회를 비롯한 고려대 학생 40여 명이 4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민주광장에서 '비정규 강사 해고 규탄대회'를 열고 학교 당국의 조속한 해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프레시안

군사독재에 의한 교원지위 박탈, 그후

1977년까지는 대학강사도 교원이었다. 그러나 박정희 유신독재는 젊은 강사들의 체제비판적 성향이 대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려고 당시 교육법에서 이들의 교원지위를 삭제했다. 그뒤 전두환정권 시절 학생시위를 막으려 졸업정원제가 실시되었다. 이에 따라 학생을 30% 더 뽑게 했는데, 문교부가 강사 3인을 정교수 1인으로 인정하는 편법을 허용하면서 강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문민정부 들어서는 무늬만 교수인(법적으로 교원이 아닌) 비정규교수가 주 9시간 이상 강의하면 정규직 교수 1인으로 쳐주었다. 2007년 교과부 자료를 보면 정규직교수가 6만명인 반면, 시간강사 7만명에 비정규교수 6만 5000명을 더한 13만 5000명인데 교원지위가 없다.

대학에서 교원지위 없이 강의하게 하는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군사독재가 가능했던, 그리고 아직도 그 폐해를 청산하지 못한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그리고 한국뿐이다. 전체 대학에서 사립대의 비중이 80%가 넘는 현실에서, 국립대조차 교원이 아닌 시간강사와 비정규교수에게 강의를 맡기는 행태를 정부가 오히려 조장해왔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일부만을 선별하여 소수의 전임강사로 채용하는 병목정책을 폈다. 이런 기형적인 인사정책이 32년 동안 계속되면서 대학에서는 학문과 비판의 자유를 찾기 어렵게 되었다.

대학의 재정 타령과 정치권의 무책임성

강사의 교원지위 회복을 주장하면 대학들은 돈이 없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대학들은 연신 호화로운 건물을 지어 올리고, 50여개 사립대학의 재단 적립금은 6조 8000억원에 이른다. 매년 3조 2500억원이나 되는 국고 연구비지원을 받고, 학생의 1년 등록금도 천만원에 달하지만 강사의 처우 개선에는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강사에게 산재보험을 보장해줄 수 없다며 2004년부터 55개 대학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벌인 소송은 2007년 대법원에서 결국 패소했다. 그러나 지금도 강사에게 4대 보험을 보장해주는 대학은 전국에 하나도 없다.

지난 17대 국회에서는 민주노동당,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3당이 모두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을 골자로 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현 교과부 차관)은 정치생명을 걸고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고,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도 이의원의 법안에 힘을 싣기 위해 발의자로 서명했다. 당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의 교육위 간사 유기홍 의원은 3당 법안을 절충하여 늦어도 2007년 정기국회에는 의결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해 10월 교육위 법안심사소위에 상정해놓은 뒤 이듬해 2월 임시국회에서야 당시 교육인적자원부에 대책을 내놓으라고 책임을 떠미는 와중에 이 법안은 슬그머니 폐기됐다. 18대 국회에 들어서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이 재발의했지만 여전히 표류중이다.

한편 지난 2003년 서울고법은 강사의 퇴직금 소송에서 강의 1시간을 3시간 노동에 준하는 것으로 계산한 바 있다. 이듬해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시간강사의 차별을 인정하고 교과부에 물적급부를 포함한 신분보장과 제도개선을 권고했다. 그리고 2007년 대법원은 강사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강사의 근로자성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같은해 제정된 비정규직 보호법에서는 박사를 전문가집단으로 분류하여 보호대상에서 제외하고 비박사는 남겨두었다. 대학들은 위 조항을 근거로 4학기 이상 연속 강의한 비박사 강사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할 수 있다고 확대해석해 부당하게 집단해고한 것이다.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 정상화는 한몸

비정규교수의 '벼랑 끝 32년'은 대학강사 문제의 폐해가 강사의 인권, 생존권, 교육권 차원뿐 아니라 강사, 학생, 대학을 통제하는 우민정책이자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억압기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학의 고급인력에 대한 착취가 지속되는 한 강사들은 무기력과 모멸감에서 헤어나올 수 없으며, 나아가 정규직교수에게 굴종하게 만들고 이를 내면화시키는 구조에서 우리의 대학교육은 정상화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지식기반으로 전환하며 학문의 주체성과 대학교육의 공공성 강화를 요구받고 있지만 강의실에서는 오히려 학문과 현실을 오가는 토론이 사라지고 있다. 학생을 학점 위주로 평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근본 원인은 강사가 고등교육법상 신분을 보장받지 못한 채로 양심과 소신에 따라 연구하고 강의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에게 집단적이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같은 대학교육의 붕괴는 학생과 학부모, 나아가 사회 전체의 피해로 돌아간다.

교육의 질 높이는 근본 처방으로 눈 돌려야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학운영의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캠퍼스 치장이나 시설 투입 같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중심을 이동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강사의 교원지위 회복이다.

대학교육의 질적 개선을 말할 때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재정문제를 들어 국고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백보 양보하여 고등교육법 개정에서 교원지위를 먼저 회복하고 처우개선은 1~2년 뒤로 미루는 방안을 찾을 수도 있다. 대학, 정부, 국회가 담합해 수많은 고급인력을 벼랑 끝에 내몰아 죽음을 강요하거나 죽음보다 더한 좌절과 회한을 겪게 하는 제도적 횡포는 이제 끝나야 한다.

취업준비학원이 되어버린 대학교육의 비정상이 어디서 비롯되었고, 대학사회가 소수를 제외하고 공동체의식이나 공동선을 백안시하며 침묵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성찰해야 한다. 미봉책이 아닌 강사의 온전한 교원지위 회복으로 대학교육 정상화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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