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속에 프레시안은 내게 무엇이었나를 생각했다. 아침마다 컴퓨터를 켜고 새롭게 날아온 이메일을 확인한 다음,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기에 앞서 새소식을 훑어 볼 때면 늘 첫 번으로 클릭하게 되는 이름. 사안의 맥락을 정확히 짚어낸 기사를 보며 느끼는 반가움은 지금도 여전하다.
어쩌다 한 번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사건과 연루될 즈음, 프레시안에서 내 사건과 관련된 기사를 발견하지 못해 서운했던 기억도 있고, '팩트'가 아닌 '편파적 의견'을 전하는 이상한 통신사의 기사가 프레시안의 공간을 채우고 있던 모습에 속상한 적도 있었다. 원고를 써 달라는 전화를 받고 짧은 순간 망설이며 고민하던 일도 떠오른다. 그러다 실린 어줍잖은 글을 발견한 이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소감을 전하면 어찌나 민망하던지.
황우석 사건, 천안함 사건 등에서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가장 집요하게 진실을 추적하던 기사를 보며 뿌듯했던 이는 나만은 아니었으리라. 좋은 기사를 쓰는 것은 자본의 힘도, 좋은 사무환경의 힘도 아닌, 언론인의 진지한 열정이라는 점이 참 반갑고 고마웠다.
사람들이 살아가며 만드는 세상은 많은 생각과 치열한 이해관계로 얽혀있다. 네편, 내편을 가르다 보면 어느새 진실은 어딘가로 실종되어 방황하게 마련이다. 마땅히, 이 지점에서 언론과 언론인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불편부당을 견지하며 사실(fact)에 충실하려는 자세, 진지한 고민을 바탕으로 사회에 던지는 제언, 그리고 자신의 글에 책임지는 진중한 모습,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제대로 된 언론을 그리며 가장 목말라하는 부분이 아닐까. 그러한 전제를 놓고 오늘 우리 주변에서 가장 성의 있고 열심인 언론을 찾으라면, 난 주저하지 않고 프레시안을 꼽는다.
ⓒ프레시안 |
주어진 여건은 여러모로 어렵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든 꽃을 피워내는 기자들, 그들을 성원하며 아낌없이 마음을 보태는 수많은 '프레시앙'들. 기존의 언론과 다를게 뭐냐, 자고 나면 생기는 수많은 인터넷 매체들과 차별화되는게 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난 두 말하지 않고 천안함 사건과 관련된 프레시안의 기사를 읽어보라 권할 것이다. 그리고 별처럼 반짝이는 프레시안의 연재기사들을 살피라 권할 것이다.
기사를 클릭하고 나면 마우스 포인터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광고, 기사를 둘러 싼채 펼쳐진 낯뜨거운 사진들이 어쩔 수 없이 가난한 현실을 되새기게 한다. 제대로 된 언론을 만들고 키워내는 것 못지 않게, 그걸 가꾸고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냉정한 현실의 문제로 다가오는지 절실해지는 부분이다. 현실과 사실을 대하는 치열한 고민 곁에는 날것으로 분출되는 욕망이 언제나 혀를 날름거리는 것처럼, 현실적으로 닥치는 경영과 수익의 문제는 언제나 프레시안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고민이 되고 있다는 점이 늘 안타깝다.
하지만 미처 챙겨보지 못한 책을 알게 되고, 빛나는 지성들의 옥고를 통해 모르던 세상과 앎을 마주하는 고마움, 고향길을 안내하는 전주학교를 보며 뿌듯해 하고 언젠가 배너를 통해 들어 간 실크로드 강좌를 들으며 역사를 탐험하는 설렘을 느끼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미산계곡에 있던 더불어숲 학교를 언젠간 꼭 찾아가리라 꿈꾸다 아이들을 동반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포기했던 아쉬운 기억, 그러다 2008년 봄, 문득 학교가 문을 닫게 되었다는 소식에 마음 아팠던 기억도 새롭다. 개인산방의 청정한 공기와 향긋한 바람을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과 함께 버무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도 인문학교는 계속되고 있으니 언젠간 반드시 함께하여 메마른 삶을 윤택하고 보드랍게 만들고야 말리라.
앞으로 열어갈 10년, 100년을 그리며 독자의 한 사람으로 소망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욕심껏 채워 넣은 것으로 보이는 작은 사진과 빽빽한 제목. 쉽게 식별되지 않아 편하게 눌러 보기엔 부담스러운 편집은 주위의 젊은이들이 프레시안에 쉽게 다가가길 꺼리는 이유로 작용하진 않는지. 가끔은 커다란 사진이나 재기 넘치는 만평으로 독자의 시선을 끌어 당길 필요도 있지 않을까. 꼭 기사가 아니더라도 인문학습원에서 탐방한 명소가 있거나 답사 활동을 통해 발견한 풍경이 있다면 한번쯤 가슴과 눈을 시원하게 열어 주기를 제안한다.
그간 프레시안이 쌓아 올린 성과 위에서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기를 주저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현실을 투영하는 커다란 화제에 대한 치열한 탐사도 중요하지만, 폭풍처럼 사람들의 관심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뒤에 남겨진 주인공들이 겪어내는 현실에 대하여 되짚어 주는 것도 소중한 일이 아닐까 싶다. 사회를 뒤흔든 커다란 뉴스의 이면에는 그 관심의 소용돌이에서 고통 받는 이가 생기게 마련이고, 수많은 관심과 말의 성찬이 지나간 다음 아프게 남아 있는 상처를 쓰다듬는 우리의 이웃이 있게 마련이다. 낙종과 마감에 연연해 하기 보다는 사건의 그늘에서 소외된 이웃은 없었는지, 프레임 전환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정치세력의 술책에 말려 간과된 진실은 없었는지, 관심이 떠났다는 이유로 더 이상 귀 기울여 주지 않는 간절한 외침은 없는지 꼭 되짚어 살펴주면 좋겠다.
특히 정치인과 사회 유력인사들의 빈말과 거짓말에 대하여는 끈질기게 확인하여 끝내 무릎 꿇리고야 마는 결기를 보여주기 바란다. 과거 자신이 내뱉은 말도 뻔뻔하게 부인하거나 교묘한 상황논리로 빠져나가는 행태를 이제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런 진실에도 근거하지 않고 수많은 이들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는 말에 대하여 추상같은 호통을 안기는 매체가 꼭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지금 열 돌을 맞는 프레시안이야 말로 그런 기사를 통해 독자들의 마음에 오랜 울림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거칠고 아픈 일상사를 위로해주고 새로운 삶과 역사에 대한 희망을 일구어 주는 문화탐구가 지속되고 확대되기를 바란다. 진정한 선진국이란 숫자놀음으로 가득찬 애매한 통계나 몇몇 사람들만의 전시성 이벤트로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시민 개개인의 문화적 역량의 성숙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일상에서 벗어나 아름다움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기회, 자신만의 삶을 잠시 내려 놓고 역사를 호흡하며 문학의 바다를 헤엄치는 기쁨, 예술은 낯설고 비싸고 어려운게 아니라 늘 우리 곁에 맴돌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반가움을 프레시안이 앞장서 전달해 주면 좋겠다.
완성을 의미하는 '10'을 앞두고 또 다른 완성과 도약을 꿈꾸는 프레시안의 영원무궁한 건건승을 기원한다. 한 사람의 프레시앙으로서, 지면을 어지럽히는 부끄러운 필자로서 앞으로도 내내 프레시안에게서 좋은 선물을 받고자 하는 욕심을 부려 본다. 우리의 프레시안이라면, 누구든 반겨주고 넉넉히 품어주며 그늘 안에서 쉬게 해 줄 커다란 정자나무로 자라기를 소망한다.
프레시안이라면, 해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늘 혼자가 아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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