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유령이 지금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한쪽으로 기울어 있는 시소에 대한 묵인입니다. 삶의 끝으로, 죽음의 시작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 서민들의 고통을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쳐다만 보는 것은 결과적으로 동조하는 것입니다. '중립'의 가면 뒤에 숨은 '편향'을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편향'되어 있는 사회를 인식하게 하고, 더 나아가 균형되게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이라는 존재가 지금까지 달려온 10년이라는 시간보다 훨씬 커 보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고단한 시간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길이 더욱 아름답고, 그 선택이 더욱 숙연합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시간이 더욱 기다려집니다.
프레시안이 달려온 10년의 세월 속에는 민주정부 10년의 일부가 함께 존재합니다. 기대했던 자식이 기대에 못미치면 실망이 더하듯 민주와 진보의 힘이 만들어낸 정권에 대한 실망은 더욱 컸을 것입니다. 그 실망의 큰 부분을 차지한 저에게 프레시안은 다시 실수하지 않도록 방향을 제시해주는 나침반이며, 또한 함께 그 길을 가자고 격려하는 동행입니다.
세상의 변화는 '과연 가능할까' 의심하는 회의론자가 아니라 '반드시 해내야한다'는 확신범이 만들어 간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확신범의 확신은 또한 가능성에서 나오는 것임도 인정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이라는 확신범에게 가능성을 주는 힘은 프레시안이 보여주는 길을 함께 가려는 저와 같은 독자들일 것입니다.
프레시안이 통합의 아교가 될 수 있도록, 평화체제와 복지국가의 확성기가 될 수 있도록 더많은 프레시앙들을 불러모읍시다. 프레시안의 다음 10년은 곧 우리의 다음 10년의 척도가 될 것입니다.
'중립'의 가면 뒤에 숨은 '편향'을 넘어 변화를 믿는 확신범들의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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