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말아라
뜬 눈으로 깨어
수많은 새벽을 연 자여
어둠 속에서 빛을 본 자여
쓰러진 자리에서 분노와 희망을 본 자여
억눌린 자리에서 변혁을 본 자여
펜대처럼 곧게 서서
독재의 군화발이 다가서도 물러서지 않던 자여
닫힌 강당에서 열린 광장을 가르치고
광장에서 배움의 씨앗을 얻던 자여
끝없이 회의하고 질문하고 의심하던 자여
문장의 맥락보다
혁명의 맥락에 더 정진하던 자여
본문에 정의를 담고
각주엔 숨겨진 진실을 담아
진정한 자유를 행사하고
일관된 해방의 서사를 펼치던 자여
분단의 철조망에
세세한 평화의 길을 놓고
독점의 공장 담벼락마다
연대와 평등의 대자보가 되어 눈물짓던 자여
반백이 되어서도
늘 푸르른 청년인 자여
이제 다시 시작 아닌가
이제 다시 청년 아닌가
이제 다시
또 다른 혁명의 길을 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다시
새로운 인류로 거듭 태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보라. 우리가 걸어 온 길의
헌신과 강직과 온유의 아름다운 디딤돌들을
보라. 우리가 다시 걸어 갈
참되고 아름다운 미래를
시작노트
작년 9월이었던가 보다.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30년사 발간위원회 일을 맡고 있던 분께서 30년사 ‘여는 시’를 써보라고 했다. 그 세월을 함께 했던 선생님, 선배님들이 쓰시는 게 맞을 듯하다고 한사코 고사를 하는데, 이제 다시 새롭게 가야 할 길을 생각하는 뜻으로는 젊은 나도 괜찮다 했다.
그렇게 쓰면서는 나도 30여 년 전, 노동운동과 노동문학을 배워보겠다고 구로공단을 처음 찾았던 때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바랜 바지에 얻어 입었던 군청색 군인잠바를 걸치고, 조그만 방에 앉아 참새떼처럼 재잘거리던 어떤 이들의 방문 앞에 홍당무가 된 얼굴로 섰을 때, 새로운 인생의 길이 열렸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돌아보면 책 한 페이지 넘기는 것처럼 훌쩍 30여 년이라는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가버렸다.
지금은 가끔 시나 글에 '혁명'이라는 말을 써보기도 하지만 어떤 경외감 때문에 수많은 현장에 연대하고, 기나긴 토론과 일에 대한 결의를 하면서도 이십 수년 동안 정말이지 '혁명'이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써보지 못했던 겁쟁이에 못난이였다. 입에는 더더욱 한 번도 올려보지 않았다. '혁명'이라는 말을 쓰려면 목숨을 걸 정도의 각오를 갖지 않고는 쓰지 않는 게, 그 '혁명'을 위해 먼저 간 수많은 이들 앞에 최소한의 양심이나마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자폐아였다. 큰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들일수록 신뢰가 잘 가지 않더라는 어떤 삶의 경험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헌신과 강직과 온유의 아름다운 디딤돌"로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평범해져야 한다는 선한 꿈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것도 이젠 모두 지나가버린 일들일까. 글은 이렇게 쓰지만 나도 가끔은 '늙어가는' 투지와 감각을 느끼기도 한다. 하여, 위 시는 내 자신에게도 바라는 어떤 강제이기도 하다. 언제까지나 내가 "문장의 맥락보다 / 혁명의 맥락에 더 정진하던 자 / 본문에 정의를 담고 / 각주엔 숨겨진 진실을 담아 / 진정한 자유를 행사하고 / 일관된 해방의 서사를 펼치는 자"로 남게 되기를. '이제 다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모든 독점과 폭력의 담벼락마다 연대와 평등의 대자보로 남게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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