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 서거 국면의 폭발적 반향이 그냥 사그러들지 않은 것은 지난 1주기 직후의 6.2 지방선거로, 이후의 각급 재보궐선거의 '표심'으로 확인된 바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는 노 전 대통령이 '다시 뽑고 싶은 대통령' 2위에 랭크됐다.
급전직하하는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여론은 정확히 반비례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부산 지역의 한 의원은 "반비례 관계를 넘어 제로섬 관계가 아닌가도 싶다"면서 "문제는 MB지지 여론이 반등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고 토로했다.
자연과학 전공으로 정치적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부산의 30대 후반 대학교수는 "텔레비젼이나 신문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나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 포스터를 보면 또 이 대통령이 떠오른다"면서 "주위에도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이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길항 관계는 내년 총선과 대선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청와대 입장에선, 과거 정부 탓을 하기엔 이미 시간이 너무 흘러갔을 뿐더러 봉하마을에 잠들어 있는 노 전 대통령을 어쩔 방도도 없다.
부산, 6.2 지방선거 직후의 후회와 내년을 향한 기대
현실정치와 맞닿는 노풍은 먼저 PK(부산·경남)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사실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친노진영에선 후회가 적잖았다. 김두관 경남지사야 일찌감치 무소속 경남지사 출마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부산 시장 출마자를 찾긴 쉽지 않았다.
결국 20여 년전 노무현과 유이(唯二)한 부산의 '3당합당 반대자'였던 김정길 전 장관이 총대를 메고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 그 밖엔 친노간판의 구청장 후보 하나 없었다. 김 전 장관 역시 형식상으론 야5당 단일후보였지만 선거 캠프가 원활하게 돌아간 것도 아니었다.
한명숙-유시민 투톱 뿐 아니라 기초단체 후보가 수두룩했고 거의 다 생환해 돌아온 수도권과는 대조적 모습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김 전 장관은 45% 가까운 득표율로 한나라당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이러다 보니 "이기려고 덤볐으면 이겼겠다"는 아쉬운 평가가 뒤따랐다.
이후 최인호 전 민주당 부산시당 위원장 등 부산친노는 자심감을 얻었다. 김영춘 최고위원이 부산진갑 출마를 공식선언한 것은 얼마 전이지만 부산출신 야권 인사들은 이미 지난 해 후반부터 물밑접촉을 이어왔다.
이명박 정부의 '지원 사격'도 꾸준했다. 허남식 부산시장을 비롯한 한나라당 인사들에 대한 피로감도 만만찮은 판국에 신공항 백지화, 부산저축은행사태가 줄줄이 이어졌다.
현재 민주당 안팎에선 "수도권은 예선(야권 단일후보 공천) 경쟁이 치열할 것이고 내년 총선엔 부산과 강원이 블루오션이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여기다 한나라당 부산 인사들간 친이 친박 경쟁이 불붙을 경우 '혁명적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부산 노풍의 전국화, 매개는 문재인
▲ 노무현 전 대통령 2주기 전야 콘서트에 참석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프레시안(최형락) |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에게 기대가 높아지면서 문재인 이사장도 일정정도 기대에 부응할 뜻을 보이고 있다.
문 이사장 쪽은 직접적 대선 출마에는 여전히 선을 긋고 있지만, 2주기 이후 행보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자서전 격 저서 <문재인의 운명> 준비 과정에서 문 이사장을 중심으로 부산파 뿐 아니라 수도권에 근거지를 둔 친노인사들이 결집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들은 대체로 민주당도 국민참여당도 아닌 '3지대'에 있는 인사들이다. 저서 출간과 더불어 문 이사장의 "서울 활동도 좀 더 확대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문 이사장에 대해선 비토그룹도 적다. 정세균 최고위원이 '남부민주벨트' 건설을 제창하면서 러브콜을 보내고 있을뿐더러 이광재 전 강원지사는 "문재인 이사장과 손학규 대표가 경선하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손학규 대표 쪽도 "파이를 키우기 위해서라도 문 이사장의 역할이 확대되야 한다"고 전했다.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는 문 이사장과 지지층이 겹치고, 김해을 후보 조정 과정에서 여러 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했었지만 대립각을 세울 정도는 아니다.
친노진영 전체는 2주기 이후 진영을 재정비할 계획이다. 노무현 정부 재평가, 퇴임 후 노 전 대통령이 천착했던 진보의 개념정리도 주요 과제지만 지역주의 극복, 통합, 양극화 해소 등의 주요 어젠다는 결국 2012년 총선과 대선을 향하고 있다.
한명숙, 이해찬, 문재인 등 시니어그룹은 물론 안희정, 이광재, 김두관, 유시민 등 대중지도자격의 그룹, 이강철, 이병완, 천호선, 전해철, 백원우, 이용섭, 문성근 등 실질적 역할을 하는 그룹까지 포괄하는 인물들간 대화 필요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물론 이들은 민주당, 참여당, '3지대'에 각각 몸 담고 있을뿐더러 야권 연대 및 내년 대선을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씩 다르긴 하다.
하지만 친노진영의 한 핵심인사는 "생각들이 다 조금씩 다른 것은 맞지만, 내년 총선에서 의회 권력을 되찾고 대선에서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데는 전혀 이론의 여지가 없다"면서 "우리끼리 싸워서 내년 판을 깨면 다시 '폐족'신세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있다. 낙관적으로 지켜봐도 될 것이다"고 전했다.
문재인 이사장은 21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김제동 콘서트'에 직접 출연해 "2주기는 밝게 웃어가면서 치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해와 부산에 모인 추모객들도 밝은 모습들이었다. 2년 만의 표정 변화에는 '내년에 대한 기대'도 한 몫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