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진행된 남북 간 첫번째 교류행사인 마식령 스키장 공동훈련이 별다른 사고 없이 마무리됐다. 이로써 남북 간 평화 분위기 조성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오는 8일 북한이 군 창건 기념일(건군절)에 맞춰 계획하고 있는 열병식이 또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은 3년 전인 지난 2015년에 이미 건군절을 2월 8일로 바꿨다"며 이번 열병식도 북한 내부의 행사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1948년 2월 8일 소련이 북한의 군대를 만들어줬는데 이게 조선인민군이다. 김일성 시대에는 2.8절이라고 해서 이 때 건군절 축하행사를 했다"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그런데 1978년 김일성의 아들인 김정일이 실권을 잡기 시작하면서 건군절 날짜가 달라졌다. 김정일은 기존의 건군절인 2월 8일을 4월 25일로 옮겼다. 아버지인 김일성이 1932년 4월 25일 항일 빨치산 유격대를 만들었다면서, 이날을 군 창건일로 지정한 것"이라며 "김정일이 본인의 권력 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김일성의 항일 혁명 전통을 부각시킨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그런데 4월 25일로 지켜지던 건군절은 2015년 들어와서 다시 2월 8일로 바뀐다. 김정은이 항일 빨치산 유격대의 전통을 부각시킬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라며 "김정은은 할아버지인 김일성 시대를 따라하려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 할아버지 때 정했던 건군절 이후로 지금까지 조선인민군이 쭉 발전해오고 있다고 판단하고 2015년에 건군절을 다시 원상회복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은 이미 건군절을 바꾼 2015년부터 70주년인 올해 행사를 준비했을 것"이라며 "북한 입장에서는 시기적으로 봤을 때 평창올림픽보다 건군절의 열병식이 먼저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맥락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여한다고 해놓고 8일에 열병식을 하는 것은 평화의 분위기를 깨뜨리는 것'이라는 식의 논리가 설득력이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평창올림픽 이후에도 현재와 같은 평화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을지가 한반도 정세의 중요한 대목이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이 자진해서 핵‧미사일 시험을 그만하겠다고 할 가능성은 없고, 미국에서 북한에 더 세게 요구하면 이걸 수용할 리도 없기 때문에 넌지시 접근해서 접점을 만들 곳은 한국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북대화 과정에서 패럴림픽이 끝나기 전에 고위급회담이나 군사회담을 해야 한다.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해 남북 간 합의는 안되지만 이러한 회담이 핵‧미사일 문제를 꺼낼 수 있는 자리는 되기 때문"이라며 "너희들(북한)이 약간의 틈새만 보여주면 우리(남한)가 미국을 설득해서 미국도 한 발 양보하도록 만들겠다, 접점을 만들 수 있는 다리를 놓아 보겠다고 말하고 북한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인터뷰는 지난 2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북한이 오는 4일로 예정됐던 금강산 남북 합동 문화공연 행사를 취소했습니다. 또 오는 8일에는 군 창건 기념일에 맞춰 열병식도 할 예정인데요. 북한이 이러한 행태를 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정세현 : 금강산 합동 문화공연의 경우에는 북한이 행사를 진행하기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문화공연을 취소하겠다는 통지문에서 남한 언론들이 자신들의 진정어린 조치를 모독하고 있고, 자신들의 행사인 건군절까지 시비를 걸었기 때문에 행사를 취소할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요. 실제 이유는 따로 있다고 봅니다.
우선 북한이 이 행사에 참여할 사람을 동원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남한이야 관중석 메꾸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북한의 경우에는 이 추운 겨울에 300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데려오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북한에 KTX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눈을 녹이는 제설차나 염화칼슘이 구비돼있는 것도 아닙니다. 비포장 도로에 구불구불한 길을 거쳐야 금강산에 겨우 올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금강산으로 이동시키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 미션입니다.
평양이나 기타 도시가 아닌, 금강산 인근의 온정리에 있는 주민들을 데려오려면 옷을 다 새로 만들어서 입혀야 합니다. 이산가족 상봉 때보면 비슷한 옷을 입고 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 때는 준비 시간이 한 달 정도 있기 때문에 옷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행사의 경우 행사를 치르자는 합의가 지난 1월 17일에 있었고 실제 행사를 2월 4일로 계획했습니다. 준비 기간이 약 2주 반 정도밖에 없었기 때문에 옷을 새로 하기도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또 북한은 이번과 같이 남북 사람들이 직접 만나는 행사의 경우 북한 참가 주민들을 대상으로 철저한 교육을 시킵니다. 옷도 맞추고 이런 교육까지 하기에 2주 반은 짧은 시간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북한이 준비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북한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행사를 할 수 없다는 말은 차마 못할 겁니다. 그러다 보니 언론 보도나 열병식과 같은 핑계를 댄 겁니다.
한편으로는 북한 주민들에게 미칠 파급력도 고려했을 겁니다. 남한 가수가 북한에 가서 공연하면 이게 북한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적지 않습니다. 남한 가수들의 공연을 보고 북한 주민들은 처음에는 "에이 뭐 저래"라고 하다가도 속으로는 "저런 세상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데 이게 북한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는 겁니다.
그럼 마식령 스키장에서의 남북 공동훈련은 왜 그대로 했을까요? 마식령 훈련은 남북 스키 선수들끼리 많이 어울릴 만한 일이 없습니다. 그냥 각자 타는 겁니다. 게다가 남한이 비행기를 타고 마식령에 왔다가 다시 돌아가기 때문에 그 때 북한 선수들 태워서 같이 내려오겠다고 하면 북한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습니다. 또 금강산 공연처럼 문화 충격을 주는 것도 아니고 별도의 수고스러움이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프레시안 : 군 창건 기념일(건군절)을 평창 동계올림픽 하루 전인 2월 8일로 바꾸고 대대적인 열병식을 하려는 이유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정세현 : 일단 북한이 올해 건군절을 바꾼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북한은 3년 전인 지난 2015년에 이미 건군절을 2월 8일로 바꿨습니다.
건군절은 그동안 날짜가 몇 번 바뀌어왔습니다. 1948년 2월 8일 소련이 북한의 군대를 만들어줬는데 이게 조선인민군입니다. 그리고 북한은 그해 9월 9일 정권수립을 선포합니다. 그래서 김일성 시대에는 2.8절이라고 해서 이 때 건군절 축하행사를 했습니다. 5주년, 10주년 등 소위 '꺾어지는 해'에는 좀 더 행사를 크게 키웠습니다.
그런데 1978년 김일성의 아들인 김정일이 실권을 잡기 시작하면서 건군절 날짜가 달라졌습니다. 김정일은 기존의 건군절인 2월 8일을 4월 25일로 옮겼습니다. 아버지인 김일성이 1932년 4월 25일 항일 빨치산 유격대를 만들었다면서, 이날을 군 창건일로 지정한 겁니다. 이는 김정일이 본인의 권력 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김일성의 항일 혁명 전통을 부각시킨 것으로 풀이됩니다.
김정일은 이 시기에 아버지의 항일 의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습니다.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도 세우고 김일성이 평양 입성 후 연설을 기념하기 위해 개선문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건군절은 2015년 들어와서 다시 2월 8일로 바뀝니다. 이건 김정은이 항일 빨치산 유격대의 전통을 부각시킬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풀이됩니다.
또 김정은은 할아버지인 김일성 시대를 따라하려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패션도 그렇고 목소리나 연설도 유사합니다. 할아버지 때 정했던 건군절 이후로 지금까지 조선인민군이 쭉 발전해오고 있다고 판단하고 2015년에 건군절을 다시 원상회복시킨 것이죠.
이런 역사적인 맥락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여한다고 해놓고 8일에 열병식을 하는 것은 평화의 분위기를 깨뜨리는 것'이라는 식의 논리가 설득력이 없는 겁니다.
또 북한은 이미 건군절을 바꾼 2015년부터 70주년인 올해 행사를 준비했을 겁니다. 그런데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하기로 한 것은 지난해 말에서 올해 초에 급작스럽게 이뤄졌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시기적으로 봤을 때 평창올림픽보다 건군절의 열병식이 먼저라고 생각할 겁니다.
프레시안 : 국내 언론에서는 북한이 8일 열병식 하면 미국에 강경파가 득세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정세현 : 그러길 바라겠죠. 일부 보도에서는 열병식에 5만명이 동원될 거라고 하던데, 38노스에서 위성사진 찍은 것 보니까 약 1만 명 정도 나올거라고 예상된다고 합니다. 물론 열병식은 군인들만 참석하는 것은 아니고 시민들도 나오겠지만 군인 1만 명은 우리로 치면 사단 정도이입니다. 결국 이건 자기들 내부잔치라고 봐야 합니다.
프레시안 : 국무부의 스티브 골드스타인 차관은 1일(현지 시각) 브리핑에서 북한의 열병식이 개최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정세현 :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해 백악관 사람들이 코피전략을 이야기하면서 강경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북한의 열병식과 같은 행사를 트집잡아 북한에 대한 공격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게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에게는 불리한 상황이 될 수 있고, 맥매스터 보좌관의 입지를 강화시켜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말을 한 것으로도 보입니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북한이 최근 보여주고 있는 행동들을 종합해봤을 때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 의지에 대한 진정성이 좀 담겨 있는 것으로 봐야 할까요?
정세현 : 진정성보다는 전략적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지난해 11월 29일 북한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면서 국가 핵무력이 완성했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북한은 핵이나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면서 미국을 압박, 미국이 대화에 나오도록 만드는 것보다는, 남측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하라고 노래를 부르니까 여기에 협조한 뒤에 남북관계를 징검다리로 삼아서 북미대화로 이어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전략적인 생각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기 위해 자기들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오는게 아닙니다. 남북 간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프레시안 : 결국 평창올림픽 기간 동안에 북미 대화의 실마리를 잡는 것이 필요해 보이는데, 미국이 먼저 나설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북한이 일방적으로 핵을 동결하고 나올 것 같지도 않아 보이는데요.
정세현 : 거기서 남한의 역할이 있는 거죠. 북한이 자진해서 핵‧미사일 시험을 그만하겠다고 할 가능성은 없고, 미국에서 북한에 더 세게 요구하면 이걸 수용할 리도 없기 때문에 넌지시 접근해서 접점을 만들 곳은 한국밖에 없습니다.
남북대화 과정에서 패럴림픽이 끝나기 전에 고위급회담이나 군사회담을 해야 합니다.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해 남북 간 합의는 안되지만 이러한 회담이 핵‧미사일 문제를 꺼낼 수 있는 자리는 되기 때문입니다.
남한은 북한에 "너희들이 약간의 틈새만 보여주면 우리가 미국을 설득해서 미국도 한 발 양보하도록 만들겠다, 접점을 만들 수 있는 다리를 놓아 보겠다"고 북한을 움직이게 해야 합니다. 마침 또 지금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대화의 모멘텀이 조성됐는데 이를 북한을 움직이는 데 써야 합니다.
물론 이게 가능하려면 미사일이나 핵 문제를 남북대화의 의제로 다룬다거나 공식 발언문에 들어가서는 안됩니다. 남측이 핵 이야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북측이 세게 대응했다는 기록이 없으면 북측 대표는 다칩니다. 그런 부담 없이 남한 이야기를 편하게 듣고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는 비공개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평창올림픽 대표단으로 만약 북한의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이 온다면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는 자리를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는 겁니다.
문 대통령이 "우리가 지금 미국을 이만큼까지 만들어 놓았다, 즉 남북대화를 해서 미북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트럼프 대통령이 100% 지지하겠다고 했고 남북대화가 계속되는 만큼은 미국의 대북 군사적 행동은 없을 거라는 점을 이야기해주라는 것까지 만들어놨다. 그러면 북한도 트럼프를 한 발 더 앞으로 나오게 할 수 있는 뭔가 하나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냐. 평창만 참가했다고 해서 할 일 다한 것처럼 굴지 말고. 한 발만 더 나오라. 그럼 내가 그걸 가지고 트럼프를 한 발 더 나오게 하겠다"고 최룡해에게 말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를 설득한 것처럼 김정은 또는 최룡해를 통해 김정은을 설득하고 이를 통해 트럼프를 한 발자국 더 나오게 하는 묘수를 발휘해야 합니다. 올림픽이 준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합니다.
트럼프, 코피전략 지지할 맥락 없어
프레시안 :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가 차기 주한 미국 대사에 내정됐다가 갑작스럽게 낙마했습니다. 아직 진상을 알 수는 없지만, 빅터 차의 지명 철회가 미국의 대북 강경 노선을 확인한 사건 아니냐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른바 '코피 전략' 때문인데요.
정세현 : 그런데 정말 그거 때문이라면 일단 코피 전략이 말이 되는 전략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매튜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외부 전문가들과 앉아서 코피전략을 이야기했다고 하던데, 이렇게 되면 이건 더 이상 전략이 아닙니다. 마치 한국 보수층에서 참수작전, 참수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고 정부에서 "참수부대 운영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미 공개된 것이 어떻게 작전이 됩니까?
또 코피전략의 내용 자체도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치고 박고 싸우다 보면 코피를 터뜨리기 쉬운데, 피가 나면 도망가는 사람이 있지만 피를 보고 더 흥분해서 달려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코피전략은 상대가 유약하면 한 방에 끝내버릴 수 있지만 유약하지 않은 사람한테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때린 사람이 나중에 잘못했다고 빌기도 하죠.
미국의 코피 전략은 북한이 한 대 맞으면 울고 집으로 가는 사람처럼 생각했다는 건데 그렇다면 이건 북한의 기질에 대해 고려하지 않은, 전혀 전략적이지 못한 판단을 한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빅터 차도 코피 전략이 말이 되냐고 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출되면 그날로 써먹을 수 없는 코피전략에 대해 반대했다고 지명을 취소한다는 것도 정부의 결정 과정을 생각했을 때 비상식적입니다. 물론 빅터 차가 매파에 속하고, 매파가 경질되면서 더 센 매파가 득세하고 있다고 해석하는데, 아무리 매파라고 하더라도 말이 되는, 적실성이 있는 정책을 수립합니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정책을 수립하지는 않습니다.
지명 철회를 두고 코피전략이니 FTA니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데 실제로는 검증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또 빅터 차가 한국의 보수 성향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과 가까웠던 것은 사실인데, 이와 관련해서 한국 사람과 너무 가깝다면서 미국 대사로서 자격에 문제를 삼았을 수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 트럼프 대통령이 1월 30일(현지 시각) 국정 연설에서 이란과 쿠바, 북한 등을 '적'으로 규정했는데요. 북한이 반발하지 않을까요?
정세현 : '악의 축'도 있었는데요 뭐.(웃음)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 표현에서 김정은을 직접 자극하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또 원론적 이야기만 했지 북한을 악마화하는 표현도 하지 않았는데요. 험악한 말을 함부로 트위터에 올리는 트럼프의 평소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행동이었다고 봅니다.
압박을 통해 대화를 끌어내는 전략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실제 미국이 공중 촬영을 통해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에 석유를 밀수출했다는 식으로 고발하면서 안보리 제재에 성의있게 동참하라고 압력성 권고를 넣었습니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는 오히려 미국에 증거 대라면서 반발했습니다. 미국은 증거도 대지 못했고 체면도 구긴 셈이 됐죠.
이런 상황에서 북핵 문제 해결의 시작을 열었다는 기록은 남기고 싶은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대로 기다려볼까'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즉 한국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의 모멘텀을 만들어주면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말한 것일 수도 있죠.
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6일에 가진 신년기자회견에서 여건이 되면 김정은을 만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 남북 고위급회담이 끝난 뒤인 10일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에서는 남북대화가 계속되고 있다면 미국의 대북 군사적 행동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죠.
이렇게 이야기했던 트럼프 입장에서 볼 때는 자기가 한 말 때문이라도 대북 압박전략을 계속 주장하는 사람들의 편을 들어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코피전략에 반대했다고 해서 빅터 차에 대한 지명을 철회할 수 없는 겁니다. 즉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코피전략을 지지할 맥락이 없습니다. 아무리 왔다갔다 변덕이 심하다고 해도 명색이 성공한 사업가이기 때문에 계산을 영악하게 할 겁니다.
2030의 반북 정서, 쉽게 바뀌지 않을 것
프레시안 :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상당히 논란이었습니다. 이번 논란을 통해 우리 사회의 20, 30대가 북한 및 통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기존 세대와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정세현 : 2030 세대의 이같은 비판적 인식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2030 세대가 이미 반북을 넘어서 혐북으로 가고 있는 일종의 징표라고 봅니다.
시간적으로 보면 현재 30세가 태어난 해가 1988년인데 초등학교 다닐 때가 1990년대 중후반입니다. 당시는 김일성이 사망하고 북한 붕괴론이 유행하면서 흡수통일론이 맹위를 떨쳤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통일하면 정말 돈이 많이 드는데 저거 꼭 해야 하나"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고, 이게 이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20대는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보수 정권일 때 보냈습니다. 또 이 때 북한이 천안함‧연평도 사건, 목함지뢰 사건 등 사고도 많이 쳤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북한이 남쪽을 상대로 나쁜 짓을 해주길 바라는 정권이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이미지 역시 좋았을 리가 없습니다. 이렇게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고정돼버렸는데 이게 고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어쩔 수 없다고 손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인식의 변화를 위해 통일부는 통일 교육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2030의 대북관과 혐북 정서를 어떤 식으로 극복하고, '그래도 대화는 해야하지 않나'라는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사실 그렇게 인식을 바꾸려면 남북 간 직접적 접촉이 가장 빠른 방법 아닌가요?
정세현 : 물론 교류‧협력이 활성화되면 현장에서 체험을 통해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가능하려면 2030 세대가 교류‧협력의 일선에 나서야 합니다. 문제는 혐북 정서가 있는 경우에 일선에 나가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1998년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직후 제가 통일부 차관으로 근무하던 때 한 대학교수가 저한테 금강산 관광을 왜 하냐고 하더군요. 이분은 월남한 이북 출신 교수였습니다. 그래서 남북 간 왕래하면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고 안보에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냐고 했더니 돈을 퍼주는데 무슨 안보냐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단 한 번 가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는데 그 교수가 본인이 왜 금강산을 가냐고 하더군요.
이렇게 반북‧혐북 정서는 극복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됩니다. 접촉 기회를 넓히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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