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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는 '좌빨', 김정일은 '수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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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는 '좌빨', 김정일은 '수꼴'?"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26> '좌우'타령 이제그만

"이번 대선은 친북좌파와 보수우파의 대결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2007년 8월29일, 한나라당의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를 찾아온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보수우파'의 대칭이 되는 말은 '진보좌파'이고, 당시 그의 경쟁자인 민주당의 정동영 후보에게 '친북'이라고 단정할만한 특이한 점이 없었는데도, MB는 굳이 그 말을 골라 썼다.

말하자면 이게 보수 기득권 수호 정당인 한나라당이 정치적 대결상대인 민주당을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버시바우대사는 그로부터 1년전인 2006년 7월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 "보수적이고 다혈질이며, 대부분의 정책사안에 대해 매우 제한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본국에 보고한, 그 미국대사다. 그런 그가 그뒤에라도 MB를 뭐라 평가 했을지 궁금하다.

아무튼 버시바우 대사와 만나 MB가 그런 이야기를 한지 4년뒤인 2011년 4월, 한나라당은 강원도지사와 '분당을'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MB와 마찬가지로 '좌우'타령을 했다. 그리고 패배했다. 관심 거리는 그 뒤를 이어 회자되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특히 한나라당 텃밭으로 알려진 '분당을' 선거 결과를 놓고는 말들이 무성하다. 보수신문들은 민주당 승리·한나라당 패배가 '분당우파의 반란'이라했고, '분당좌파의 출현'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정치판에서의 좌우파 구분이 시작된것은 1789년 프랑스혁명 직후 소집된 국민의회에서 부터였다. 의장석에서 볼 때 오른쪽에 왕당파가 앉고, 왼쪽에 공화파가 앉은 게 그 기원이다. 대체적으로 우파는 보수성향이고, 좌파는 개혁·진보성향이라는 게 정설로 되어있다. 유럽에서의 좌파는 1차대전이후, 파시즘의 위협과 세계대전의 폐허속에서 민주주의를 감싸고 지켜낸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이 정치적으로 지향하는바(political orientation)의 핵심은 바로 민주주의였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기득권층의 특별한 목적에 따라 좌우가 구분되어 왔다. 좌파는 공산주의 체제의 신봉자이고, 우파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신봉자라는, 터무니없는 2분법까지 등장했다. 그렇게 좌파는 타도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그런 구분 방식에 의해 구별돼 행동하는 좌파는 이땅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국법질서를 문란케 하는 좌파 사범이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실정법의 잣대로 엄격히 처리하면 되는 일이다.

해방직후 살아남기에 급급했던 친일 세력들은 자신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숨기면서, 기득권을 지켜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이승만 주변에서 우선 우파를 자처하며, 정적들에게 좌파라는 빨간색을 사정없이 덧칠해댔다. 색깔논쟁을 부추켜 죄없는 사람을 좌파로 만들고, 죽이기까지 했다. 조봉암도 그렇게 사형당했다. 적지않게 자유당으로 몰려간 친일 기득권 세력들은 5·16이 일어나자, 이번엔 민주공화당으로 달려갔다.

군사독재세력과도 혼재되면서, 그들은 정치적으로 반대 쪽에 서 있는 진보세력들을 친북·종북·좌익·빨갱이로 규정해가며 갖은 수난을 안겨주었다. 그 피해그룹의 한 가운데에 김대중(DJ) 전 대통령 있다. 그는 1970년 '4대국(미·일·중·소) 보장론'과 함께 통일 방안을 제시하면서, 일찌감치 '빨갱이'가 되었다. 보수 기득권 세력들이 그렇게 조작했다. 그러나 그가 4대국 보장론을 외친지 40년이 지난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6자회담은 다름아닌 '4대국에 남북한이 함께 하는' 회의체로 자리해있다.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그는 '좌빨(좌익빨갱이)의 수괴'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죽을 고비를 안 겪고, 그 감옥살이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좌빨'의 연장선상에서 햇볕 정책도 추진했고, 정상회담의 댓가로 4억5000만 달러를 북에 건넸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 4억5000만 달러는 현대가 북한 지역의 7대 독점 협력 사업의 선투자 개념으로 준 것이었다. 2009년 7월 이명박 정부의 통일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도 그렇게 적혀있다. 특검 공소장에도 나와 있다. 퍼주기했다고들 말하지만, 서독에서는 동독으로 매년 32억 달러씩 건너갔으나, 남측에서 북한에 건너간것은 연간 1억 달러(민간부분 3000만 달러 포함)였다.

최근 북한에 다녀온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격한 어조로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인권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 했다. "한국과 미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북한으로 가는 식량 지원을 억제하는것은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단정했다. 그저 식량 지원을 촉구하는 정도를 넘어, '지원방해'라고 지적했다. 그것도 북한 주민에 대한 '인권침해'라는 '고약한' 표현을 쓰며, 한국 정부를 비난했다.

▲ 최근 북한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연합

이 나라에서 어느 누가 이 정도로 정부를 꾸짖었다면, '좌빨'이상의 욕을 먹었을 것이다. 보수언론들이나 기득권층이 눈에 쌍심지를 켰을 것이다. 뉴욕타임즈(NYT)도 4월29일자 사설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미국이 남한의 반대로 대북 식량 지원을 끊은 것 같다"며 "왜 오바마가 MB정부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친북'이나 '종북'수준이다. 허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우파나 좌파는 이땅에 없다고 본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나 뉴욕타임즈가 '좌빨'일 수는 없다. 한때 남로당에 가담했다 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빨갱이일 수 없다.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도 빨갱이일 수 없다. MB는 스스로 보수우파라 했으나, 그의 행적을 보면 이상한 대목이 눈에 띈다. 대통령이 된 뒤 잠실롯데 고층 빌딩을 허가해주면서, 그는 "안보차원에서 문제가 있다"며 반대한 공군 참모총장을 해임하기까지 했다. 보수층이 들끓었다. 보수우파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했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으나, MB의 그같은 행태는 따로 평가 받아야 할 일이지, 보수나 진보로 구분해 말할 수 있는것은 아니다.

목숨까지 걸고 기득권을 지켜내는게 보수우파라면,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도 '수꼴'(보수꼴통)에 해당한다. 일찍이 아버지가 '왕'으로 있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대를 이어 왕이되고, 기득권을 사수하기 위해 무자비한 숙청도 했을것이다. 아들이 또 왕이 되는 판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김정일=보수'라 하는 건 이상해 보인다.

아무튼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현상이나 사람을 작위적이고 도식적으로 구분해, 틀에 집어넣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정치적 이익이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곰팡내나는 '좌우'의 구분 방식까지 끄집어내, 악용하는건 더 이상 안된다. 이번 강원도와 분당의 재보선에서 집권당 측이 '좌우'타령을 늘어놓은것도 오히려 역효과를 냈음이 분명하다. '저질타령'은 이제 그만하는게 좋다.

분당에 '좌우'는 없었다. '좌우'로 규정하고자하는 사람들만 있었을 뿐이었다. '반란'을 일으킨 우파도 없었고, 새로 '고개를 든' 좌파도 없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그게 필요한 박물관이나 강의 노트 속으로 들어가는게 옳다. 그저 유불리와 옳고 그름이 있을 뿐이었다.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부도덕한 정권의 행태를 보면서, 눈을 뜬 젊은이들이 늘어났을 뿐이었다. 그들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유리하거나 불리한지, 집권세력의 지금 하고 있는 짓들이 바른지 그른지를 판단했을 뿐이었다. 정치권이 앞으로 착안해야 할 대목은 바로 거기다. 거기에 이 나라 정치가 가야할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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