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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장애인 활동가 사망' 7년 만에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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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장애인 활동가 사망' 7년 만에 사과

[사회 책임 혁명] 인권위에 '지연되지 않은 정의'를 바란다

국가가 부모님의 사랑으로 의도치 않게 태어난 개인에게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세뇌했다. 또한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으로 인식하도록 강요했다. 오래전 사실상 폐기된 국민교육헌장 이야기다.

국민교육헌장이 학교와 공공기관에서 낭독되던 시절에는 개인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안겨준 사명(Mission)을 짊어지고 살아야만 했다. 실천하지 않으면 '부작위(Omission)'가 되고, 그에 반하는 행동은 스스로 존재이유를 부정하게 되는 것이 바로 '사명'인데도 말이다.

근거 없는 사명감을 개인들에게 강요했던 국가는 정작, 태생적 임무라 할 수 있는 국민의 인권보호와 증진을 외면하는 것을 넘어 인권을 탄압했다. 국가가 부작위로 일관하고 존재 이유를 부정한 것이다. 우리가 근자에 겪어온 암울한 경험들은 이것이 옛이야기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이성호 위원장은 지난 2일 고(故) 우동민 활동가 추모행사에 참석해 7년 전 인권위가 장애인 활동가들에게 행한 반인권적 조치에 대해 사과했다. 당시 장애인 활동가들은 2010년 11월 정부가 입법 예고한 '장애인활동지원법안' 폐기와 현병철 당시 인권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며 점거 농성을 벌였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복지부와 장애인이 처한 열악한 인권상황에 침묵하는 국가 인권 옹호 기관을 향한 항의 표시였다.

한겨울인 12월 3일부터 10일까지 장애인들이 농성을 벌인 건물의 전기와 난방은 수시로 끊겼고, 엘리베이터 작동과 식사 반입도 제한했다. 농성에 참여한 중증장애인 다수는 암흑과 추위, 배고픔과 두려움 속에서 농성을 지속했고, 12월 6일 건강 악화로 응급실에 실려 간 우동민 활동가는 이듬해 1월 2일 숨을 거뒀다.

인권위는 2012년 국회 인사청문회와 2014년 유엔인권이사회 등에서 "전기와 난방은 인권위가 관여할 수 없고 음식물 반입도 금지하지 않았다"고 부인했으나, 거짓이었다는 것이 인권위 혁신위원회 조사 결과 드러났다. "당시 사무총장 주도로 인권위 '농성대책 매뉴얼'에 따라 출입 통제와 난방 중단 등이 이뤄졌다"고 밝혀진 것이다.

국민의 기본적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고 증진하는 것은 국가의 사명이고 존재 이유다.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한 국가시스템은 헌법과 법률에 규정되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헌법기관은 아니지만 대표적인 국가 인권 옹호 기관이다. 법률에 규정된 수준에서만 인권을 보장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사법기관의 인권보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설립된 인권 전문기관이다. 예를 들어, 쟁점으로 떠오른 다양한 인권 이슈를 발굴해 제도화할 수 있는 여론을 조성하는 등 차별화된 인권보장 기능을 수행한다.

그런데 인권위가 소수자의 인권을 외면하는 것을 넘어 인권옹호자들에게 직접 반인권적 조처를 한 것이다. 더구나 거짓 해명으로 일관하다가 7년이 지나서야 사과를 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세월호 참사, 용산 참사, 백남준 농민 유가족 등이 겪어온 아픔에도 오랜 기간 침묵과 부작위로 일관해 왔었다. 약자의 인권에 관심이 없었으며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면 범법자로 만들었던 정부와 다르지 않았다. 인권을 침해당한 피해자가 인권위를 찾아가 도움을 청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인권위 혁신위는 장애인 인권활동가 사망 사건을 "국가인권기구 역할에 반하는 인권침해 행위이자 인권옹호자에 대한 탄압"이라고 규정하였다. 인권위가 존재 이유를 망각하고 스스로를 부정했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국가 인권 옹호 기관의 민낯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지난해 6월 인권위가 자체적으로 혁신 TF팀을 꾸리고 변화를 시도하면서 인권위에 도움을 청하는 피해자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권위 위상과 권한 강화를 언급했던 지난해 5월 25일부터 4주간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상담·민원 수는 총 1만 118건으로 직전 4주간 접수된 5404건의 두 배에 달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인권위 실상은 위상 및 권한에 변화가 생긴다고 개선될 수준은 이미 넘어섰다. 아니 무관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에 비추어보면 촛불의 힘으로 달성되고 있는 지금의 '지연된 정의'들로 피해자와 유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래서 앞으로 인권 환경이 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말하기보다는 다시 인권 환경이 후퇴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하자는 다독거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권위 혁신위의 활동은 대규모 인적 쇄신을 암시하고 있고, 또 그렇게 되길 기대한다. 더불어 지난 10년의 인권위 활동의 씨앗도 또 다른 관점의 인적 쇄신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촛불의 힘도 그랬듯이 그것을 가능케 한 것도 실은 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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