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오는 4일 본회의를 열고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밀고 당기는 마라톤 협상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벌어진 홍정욱 의원의 '반란' 등 우여곡절을 겪었던 한-EU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위해 여야는 '원포인트' 국회를 열기로 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자유선진당은 이 같은 합의에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이 밝힌 합의 명분은 "충분한 피해대책을 마련했다"는 것이지만, 다른 야당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3일 "야4당과의 연대 약속이 더 중요하냐, 한나라당과의 합의가 더 중요하냐"고 따지고 나섰다.
박지원 "FTA는 국가 간 약속이니 국회가 협력해야"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지난 2일 한-EU FTA 관련 마라톤 협상 끝에 합의에 도달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요구한 농업분야 지원 및 소상공인 보호대책을 받아들였고 민주당은 FTA 개정 협상을 협정 발효 이후에 하자는 한나라당의 요구를 수용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3일 "모든 것을 국익 차원에서 이뤄냈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충분하다고 할 수 없고 100% 만족할 수는 없지만 좋은 협상이었다"며 "FTA는 정부 차원을 떠나 국가 간의 약속이기 때문에 국회가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원내대표는 "농업 및 기업형 슈퍼마켓(SSM) 관련 대책에 대한 민주당의 요구가 대체로 받아들여졌다"며 "정부의 저항이 컸지만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화를 내면서까지 '민주당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고 거중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임시국회를 소집한 상황에서 5월 내내 강행처리라는 부담을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고, 여야 후임 원내대표들에게 이 상태대로 넘겼을 때 취임 초기부터 어떤 샅바싸움이 생길 것인가에 대해서도 염려했다"고 밝혔다.
여야 협상을 통해 마련된 피해대책은 소득보전직불제 발동 요건을 기준가격의 85% 이하로 낮추고 보전비율은 90%로 하기로 한 것이 골자다. SSM과 관련해서는 입점제한 거리를 현행 전통상업보존구역으로부터 500m 이내에서 1km로 늘리고 일몰시한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정희 "4.27 연대 위한 '정책연합 합의문' 잊었나?"
박지원 원내대표는 "협상이 끝나고 민노당에 연락을 했더니 민노당에서도 내용을 놓고 '100% 만족은 하지 않지만 잘 됐다'는 평가를 들었다"고 밝혔지만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강하게 반발했다.
이정희 대표는 이날 성명을 내고 "협정문은 단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대책을 마련해봤자 신법(新法) 우선 원칙에 따라 구법인 SSM규제법은 무력화될 것"이라며 "한-EU FTA에 위배되는 중소영세상인 보호입법은 불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4.27 재보궐 선거에서 야권연대는 '한미 FTA 재협상안 폐기와 전면적 검증 없는 한-EU FTA 비준 저지'를 명시한 야4당 정책연합 합의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민주당은) 야권연대 합의문을 쓸 때 어떤 생각이었던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 대표는 "정권교체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지만 함께 합의한 진보의 정책이 없었다면 민주노동당은 야권 연대에 응할 수 없었고 응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민주당은 야권연대 합의의 정신으로 돌아와 재협상을 요구하고 국회의 입법권을 제약하는 FTA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하라"고 촉구했다.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도 "민주당은 한-EU FTA 처리를 위해 유통산언발전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고 하지만 이는 영세상인들을 달래기 위한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강상구 진보신당 대변인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합의한 대책은 15m짜리 쓰나미가 몰려오는 데 방파제를 1m에서 2m로 높이고 안심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강 대변인은 "민주당은 4.27 재보선 이후 야당 통합을 부쩍 강조하는 목소리를 내지만, 이래서는 야당통합은 커녕 야권 연대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선진당 "무엇이 두려워 한밤중에 밀실야합을 하나?"
자유선진당도 여야의 합의를 '밀실 야합'으로 규정하고 들고 일어났다. 선진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 "온 국민의 관심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한-EU FTA 문제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한 밤 중에 군사작전을 하듯이 밀실야합으로 해 치웠다"며 "이는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함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선진당은 "4일 본회의 개최를 비롯해 비준동의안 처리에 반대한다"고 분명히 했다.
민주당 내의 내홍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당 지도부 내에서도 정동영, 박주선, 천정배 최고위원이 반대 의사를 밝혔다. 정동영 최고위원과 천정배 최고위원은 이날 열린 '한-EU FTA 처리 합의에 반대하는 긴급 기자회견'에 참석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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