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대신 강원을 희생양 삼은 정책 후퇴
우선, 당진에코파워 석탄발전소 백지화는 시민운동의 커다란 성과다. 2010년 동부건설에 의해 처음 시작한 이 사업은 지금까지 8년간 당진시민들의 줄기찬 반대에 부딪혔다. 당진에 10기의 석탄화력발전소가 가동되면서 주민들은 집단 암 발병을 비롯한 건강 피해에 대해 호소해왔고 추가 석탄발전소 계획의 취소를 요구해왔다. SK가스가 사업권을 인수해 당진에코파워란 이름으로 사업 추진을 이어갔고, 최종 절차인 전원개발실시계획 승인만을 남겨둔 상태였다. 하지만 지자체인 충남도와 당진시, 국회, 시민사회 각계각층이 석탄발전 계획의 철회를 완강히 요구하면서 당진에코파워 사업은 결국 좌초됐다. 당진에코파워는 용량을 1.2기가와트에서 1.9기가와트로 확대해 가스발전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반면 삼척 포스파워는 그대로 석탄발전소로 추진한다. 왜일까? 정부는 사업자인 포스코에너지와 협의한 결과, LNG발전소로 입지가 부적합하고 지자체와 주민들의 건설 요청이 있으며, 사업자의 매몰 비용 보전이 곤란하다는 근거를 들어 결국 석탄발전소를 용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진행 중인 환경영향평가 통과를 전제로 석탄발전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당진과 달리 삼척의 경우, 다수의 시민이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원한다는 논리는 정부의 정책 결정을 정당화하는 주요 근거였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13일 박성택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산업정책관은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대한 기자 브리핑에서 "주민들을 만나보니 발전소 부지가 폐광산이라 비산먼지가 많이 나오니 그냥 석탄발전소를 짓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석탄발전소 건설 명분으로는 매우 비상식적인 발언이다. 석탄발전은 대기오염물질의 주요 배출원으로 미세먼지와 유해물질을 다량으로 배출하기 때문이다. 오염사업을 통해 오염 문제를 해결하자는 이상한 주장이 에너지 주무부처의 고위 관료의 입을 통해 나왔지만, 이 발언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이유야 어떻든, 왜 석탄발전소 건설을 원하는 주민들이 많다는 것일까? 주요 근거는 2012년 발전소 건설 유치 과정에서 96.7퍼센트의 주민 동의를 얻었다는 대목이다. 당시 지역기업이었던 동양그룹이 '친환경 화력발전사업'이란 이름을 걸고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한 동의 절차의 결과다. 하지만 2013년 전기사업허가 이후 삼척 포스파워 사업은 4년 동안이나 인허가 절차를 완료하지 못했고, 석탄발전소 건설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제기됐지만, 주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확인하고 지역갈등을 해소하려는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환경운동연합은 긴급 여론조사를 통해 삼척 포스파워 사업에 대한 주민 인식 확인에 나섰다. 결과는 놀라웠다. 지난해 12월 12~13일 삼척시민 1191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삼척화력을 원안대로 석탄발전소로 건설하자는 의견은 40.8퍼센트로 나타났다. 반면, 친환경 연료 전환이나 백지화 등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은 54.1퍼센트에 달했다. 정부가 삼척화력 석탄발전소의 추진 명분으로 내세운 '주민 찬성'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한 결과다.
여론조사 결과를 추가적으로 더 본다면, 다수의 삼척시민은 현재 미세먼지 오염수준은 양호(58.3퍼센트)하다고 평가하지만, 삼척포스파워 건설로 인한 미세먼지 가중을 우려(62.4퍼센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34.4퍼센트는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로 인해 미세먼지 영향을 '매우 우려한다'고 답변했다. 동해 북평화력 1,2호기와 삼척그린파워 1,2호기 등 삼척 인근에서 4기의 석탄 화력발전소가 최근 운전을 시작한 데다가 향후 삼척포스파워가 가동될 경우 미세먼지 가중 영향에 대해 다수 시민들이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삼척화력 관련해 정부가 주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는지에 대해서는 51.4퍼센트는 미흡하다고 평가해 충분했다는 의견인 48.6퍼센트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대체 정부의 석탄발전소 승인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만약 삼척 포스파워 사업이 현실화된다면, 동해안엔 새로운 석탄발전소 벨트가 만들어질 전망이다. 강릉-동해-삼척으로 이어지는 동해안을 따라 7414㎿에 달하는 총 8기의 석탄발전소가 들어설 예정이다. 동해안에 대규모 석탄발전소가 입지하게 되는 이유는 수도권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충남에 국내 석탄발전 설비의 절반이 밀집하며 수도권 전력 공급의 부담을 떠안았지만, 이제 강원도 지역을 새로운 '희생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갈등과 저항 부르는 석탄 정책
누구도 말하지 않은 문제는 바로 송전선로다. 이미 현재에도 송전선로가 마련되지 않아 수도권으로 전력을 송전하지 못하는 동해안 발전설비는 약 1기가와트에 달해 불가피하게 발전소 출력을 낮춰 운전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곧 준공을 앞둔 울진의 신한울 1·2호기의 2.8기가와트 전력의 송전 문제도 난망한 상황이다. 설비 과잉 문제가 심각한데도, 삼척화력과 강릉안인 석탄발전소를 2022년까지 건설하겠다는 것은 한국전력공사가 동해안부터 수도권까지 고압직류송전(HVDC) 송전선로를 새롭게 건설하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220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구간에 약 400개의 송전탑을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송전선로의 경과지는 정해진 바 없다며 전력당국은 사회적 파장을 우려해 쉬쉬하는 형편이지만, 동해안 석탄발전소 계획이 현실화된다면 장거리 송전탑 건설 문제는 꼬리를 물고 고개를 들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에너지 전환'을 새로운 에너지 정책의 기조로 내세워 '탈석탄 시대'를 바라는 시민사회의 기대를 키웠지만, 석탄발전은 5년 뒤에도 그리고 2030년에도 최대 비중을 유지할 전망이다. 2016년 39.5퍼센트를 기록했던 석탄화력의 발전량 비중은 2022년 40퍼센트 이상, 2030년 36퍼센트 수준으로 예상된다. 그나마 향후 석탄발전 비중이 다소 줄어드는 것은 향후 '급전 순위 결정 시 환경비용을 반영'하고 석탄발전을 물리적으로 제약하겠다는 대책을 가정한 것이다. 석탄화력 발전설비는 2017년 36.8기가와트에서 2022년 42기가와트 그리고 2030년 39.9기가와트로 전망된다.
과연 석탄화력 발전의 증가 전망은 그대로 미래의 현실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당장 석탄발전소 설비가 몇 기 더 추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당장 석탄발전에 대한 제약을 강화하기 위해 전력시장과 가격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폭넓은 사회적 공감대가 정부의 석탄화력 발전정책을 막아서고 있다. 환경급전 도입, 유연탄 과세, 미세먼지 관리기준 강화, 재생에너지의 맹추격 등 석탄발전의 입지를 압박하는 전방위적인 공세가 그런 공감대 위에서 준비되고 있는 마당이다. 게다가 국제적으로도 기후변화에 관한 파리협정 이행을 위해 탈석탄의 기류는 지구화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국제 '탈석탄연맹'에 참여한 국가와 지방정부는 27개에서 34개로 늘었으며, 영국, 이탈리아, 덴마크 등 국가들은 2030년 이전까지 석탄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겠다고 공식화했다. 한국이 '탈석탄' 대열에 합류할 준비가 됐는지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입으로는 '탈석탄', 뒤로는 '석탄 증대'라는 이중적 정책 행동은 국내와 국외에서 모두 갈등과 저항을 불러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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