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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전술' 유시민, 벼랑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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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벼랑 끝 전술' 유시민, 벼랑에 서다

[분석] '이봉수의 과거'가 '유시민의 미래' 발목 잡았나

유시민이 졌다. 4.27 재보선 결과 중 손학규의 승리 못지 않게 충격적인 사건이다. 김해을 이봉수 참여당 후보가 졌지만, 누구도 이를 이 후보의 패배에 그치는 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누구인가? 그는 총을 들고 타깃을 쫓는, 전형적인 사냥꾼형 정치인이다. 2002년 정치인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정치에 입문한 이래로 사냥감을 놓친 적이 없다. 노무현 정권 창출에 성공했고, 그 이듬해 국회의원 배지도 달았다. 노무현 대통령 덕에 보건복지부 장관이 됐고, '실세 장관'으로 지금도 복지부 내에선 최고의 장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2007년 대선에선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경선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정치 입문 5년 만에 자타가 공인하는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다.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선 경기도지사 야권단일후보 자리를 자력으로 성취했다. 민주당 김진표 후보는 여론조사를 통해, 진보신당 심상정 후보는 여론을 통한 압박과 개인적 설득을 거쳐 주저 앉혔다. 이번 4.2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당 대표가 된 그는 김해을 선거에 '올인'했고, 결국 참여당 이봉수 후보는 민주당과 야권단일후보 쟁탈전에서 이겼다.

한번 문 사냥감은 결코 놓치지 않는 사냥개처럼 그는 치열하고 집요했다. 비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번 재보선에 김해을에서 이봉수 후보가 야권단일후보를 차지하기까지도 그랬다.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이 불출마 선언을 하는 과정, 시민단체들의 중재로 민주당과 후보단일화를 하는 과정 등 매 순간 유 대표는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판을 만들었다. 이번 재보선에서 의석을 확보하느냐, 마느냐는 참여당과 정치인 유시민의 생사가 달린 일이었다. 그래서 야권, 심지어 친노세력 내 갈등을 일으킨다는 비난을 받는 '벼랑 끝 전술'을 써서라도 김해을 야권단일후보를 자리를 꿰차야 했다. 그래서 이겼다.

▲ 4.27 재보선으로 차기 대권구도에 큰 변화가 생겼다. 손학규는 떴고, 유시민은 가라앉았다. ⓒ뉴시스
하지만 본선에서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에게 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지역에서, 그것도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40대 총리 후보로 전격 발탁됐다 부적격 판정을 받아 낙마한 김태호 후보에게 졌다. 더군다나 민주당 입장에서는 사지로 여겨지던 분당을, 한나라당이 센 지역으로 분류되는 강원도, 모두 민주당이 이겼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론이 이번 재보선을 지배하는 민심이었다는 얘기다. 유 대표 입장에선 정말 할말 없는, 뼈 아픈, 패배다.

'사냥꾼 유시민'이 표적을 놓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구에서 출마했던 2004년 총선에서도 졌고,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결과적으론 졌고,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도 김문수 경기도지사에게 졌다. 그러나 이런 패배 뒤엔 분명 유 대표 입장에선 얻은 게 있었다. 질 수 있는 선거였고, 져도 되는 선거였다. 이번엔? 지면 야권 차기대권 주자 1위의 자리에서 급전직하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선거였다.

야권의 대권후보 경쟁자였던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분당을 선거에서 이겼다. 유시민 대표의 앞날에 낀 안개를 더욱 짙게 만드는 요소다. 당장 김해을 패배에 대한 책임론이 유 대표에게 던져질 게 분명하다.

이봉수의 과거, 야권단일화 효과 감소시켜

유 대표는 3월 참여당 대표가 된 직후부터 김해을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이봉수 후보 당선에 힘썼다. 그런데도 졌다. 왜 졌을까?

우선 인물 경쟁력에서 이 후보가 뒤졌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의 경남지사에 총리 후보자까지 지낸 김태호 후보의 인물 경쟁력이 앞섰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지배하는 민심이 여권 심판론이었다는 점을 보건데, 인물 경쟁력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결정적인 이유는 이봉수 후보가 야권단일화 효과를 극대화시키기엔 부적절한 후보였다는 점이다. 이봉수 후보가 야권단일후보가 되기까지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가장 유력한 친노 후보였던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의 불출마 선언과 민주당 곽진업 후보의 경선 룰에 대한 전격적인 양보에 이르기까지 참여당은 한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참여당과 유 대표는 야권 지지자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단일후보라는 표적을 잡았을지는 모르지만, 민주당 지지자들의 마음을 잡는덴 소홀했다.

더군다나 민주당 지지자들의 앙금은 이번 선거 이전부터 쌓여 있는 것이었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김해시장 참여당 후보로 출마했던 이봉수 후보는 당시 후보단일화 결과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 지방선거 때 경선 결과 불복 사태로 이봉수 후보는 이 지역의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선뜻 찍기 힘든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또 이봉수 후보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자신의 돈독했던 관계를 설명하는 글을 올리면서 민주당 최철국 전 의원을 비난하는 내용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이봉수 후보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탈당해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를 지지했던 이력도 친노 진영 내에선 '정통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친노 진영에서도 외면 받는 유시민, 바람 앞에 촛불이 된 참여당

이제까지 지지율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손 대표는 분당을 선거로 일약 '야권 대표주자'가 됐다. 정상호 서원대 교수는 "일단은 손학규 대표의 당내 위상과 대선 후보로서의 위상이 급격하게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25일 유 대표가 분당을 지역에 거주하는 지지자들과 참여당원들을 상대로 손 대표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발표하면서 손 대표를 "야권 대표주자"라고 치켜세우면서 "저는 손학규 대표님의 경쟁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 대표 입장에선 이번 재보선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더라도 결국 향후 야권 재편에서 주도권을 쥐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음이 엿보인다. 그런 선거에서 손 대표는 이기고 유 대표는 졌다.

불리한 구도 속에서 유 대표는 선거 패배의 책임을 오롯이 져야 한다. 친노진영 내에서도 '분열'에 대한 책임 추궁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친노진영 일각에선 이번 김해을 후보단일화 과정에 중재에 나섰던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주목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원내에 의석 하나 없지만 유력 대권주자를 갖고 있다는 점 때문에 '생존'이 가능했던 참여당도 '풍전등화' 신세가 됐다. 민주당과 친노 외곽세력에서 통합 압력이 강하게 들어올 가능성이 커졌다. 2010년 6월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 재보선에서도 참여당 야권단일후보가 한나라당 후보에 짐에 따라, 참여당 간판으로는 당선이 힘들다는 게 입증된 셈이다.

독자 생존을 꾀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재보선 전 유 대표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몸집을 불리기 위해 진보대통합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참여당까지 포함한 진보대통합을 마뜩찮아 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이번 선거의 패배로 유 대표는 친노 진영에서도, 진보 진영에서도 환영받기 힘든 상황에 처했다"고 우려했다.

정치인 유시민 입장에선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유 대표가 이번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일단 이전과 같은 '벼랑끝 전술'은 더이상 통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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