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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 교수의 ‘대학의 미래-교육혁신에서 길을 찾다’] 대학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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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 교수의 ‘대학의 미래-교육혁신에서 길을 찾다’] 대학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교수님, 대학 강의가 모두 이런가요?”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지인의 자녀를 며칠 전 잠시 상담해줬다.

오랜 기간 열심히 노력해서 원하는 대학, 학과에 진학한 만큼 대학 생활을 알차게 해보려는 의지에 불타는 아이였다. 신입생 OT, 수강신청 등 쉬운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교우관계, 진로설정, 외부활동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가 이어졌다.

어느 정도 이야기가 정리된 듯해서 만남을 마무리하려는데, 아이가 좀 쭈뼛거리는 게 뭔가 못 꺼낸 말이 남은 듯 보였다. 세상에 나쁜 질문은 없으니 뭐든지 편하게 물어보라는 말에 아이가 말을 꺼냈다.

▲강원대 김상균 교수


“제가 우리 학교 온라인 과목을 미리 약간 들었는데요. 내용이 좀 이상해서요.”

아직 학기가 시작되지는 않았으나, 기초 학습을 위해 방학 중에 들을 수 있는 소규모 과목 몇 개를 대학에서 미리 열어주었다고 했다.

그 아이는 영어 강좌로 진행되는 전공 기초강좌를 몇 차시 들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고 했다. 다행히도 내가 아는 분야여서, 랩톱을 켜고 그 자리에서 내가 강의를 잠시 들어봤다.

강의는 이러했다. 화면의 3/4은 영어로 구성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이고, 나머지 영역에 강의하는 교수가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교수는 고개를 숙이고 책상 위의 녹화용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며, 파워포인트의 슬라이드 내용을 변화 없는 어조로 계속 읽어주었다.

교재로 사용되는 원서의 경우 출판사에서 강의용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교수에게 무료로 배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교수가 사용하는 자료가 아마 그런 슬라이드로 보였다.

강의를 10분 정도 들어봤는데, 교수는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슬라이드에 있는 영어 문장을 읽기만 하고 부연 설명을 전혀 하지 않았다. 부연 설명을 하지 않으면, 내용 이해가 안 되는 부분에서도 교수는 슬라이드에 적힌 글만 읽어줬다.

내 얼굴이 붉어지는 게 느껴져서, 찬물을 좀 마시고, 아이에게 이 강의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었다. 아이는 허탈과 걱정이 섞인 대답을 했다.

대학의 수업은 뭔가 다르리라 기대했는데, 이렇게 자료를 읽어주기만 하는 게 대학 강의이면, 이런 강의를 듣고 본인이 공부를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지 우려했다.

“교수님, 대학 강의가 모두 이런가요?”

이 질문에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이런 강의는 거의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그 대학이 신입생에게 자신 있게 들어보라고 권하는 기초 강좌가 그런 상태인데, 그런 강의는 거의 없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좋은 강의가 더 많으나, 이런 강의도 아직 있으니, 수강 신청을 최대한 신중하게 하라는 어설픈 이야기를 해줬을 뿐이다. 대학이 그리고 교수가 왜 이런 강의를 개설하는지 아이에게 말해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으나, 부질없다는 생각에 입을 닫았다.

대학은 이런 강의를 왜 개설할까? 짐작건대 신입생 기초 교육 강화, MOOC활성화, 영어 강좌 개설 등을 명분으로 외부 기관에서 자금을 지원받았으리라. 이 실적을 만들기 위해 어떤 교수가 그런 강의를 맡게 된 것이다.

대학 입장에서는 지원받은 자금에 관한 수치화된 실적을 얻고, 강의를 맡은 교수는 온라인 영어 강좌를 개설하면서 약간의 지원금과 성과 평가 가점을 받았을 것이다.

자금을 지원해준 기관 입장에서는 OO억 원을 대학에 지원했더니 대학의 온라인 강좌가 X개, 영어 강좌가 Y개 증가했다는 실적을 얻은 셈이다. 자금을 지원한 기관, 자금을 받은 대학, 소속 교수 모두는 정량화된 지표에서 득을 봤다.

그렇다면 교육의 수요자인 학생은 무엇을 얻었을까?

그날 내가 만난 아이는 그 강좌를 끝까지 듣고 무엇을 배우고 얻을까? 대학 교육의 일그러진 민낯을 입학 전에 알게 된 것, 스스로 개척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대학에서 배우는 게 별로 없다는 깨달음, 여러 대학이 국제화 성과의 하나로 내세우는 영어 강좌의 실상(물론, 대학의 모든 영어 강좌가 그렇다는 의미는 아님), 전공과목에 관한 막막함, 대략 이런 것들이라 짐작한다.

이런 상황이 그 대학, 그 강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게 진정한 문제이다. 정부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고, 언론사 평가에서 더 높은 순위에 오르기 위해 많은 대학이 정량화된 지표 관리에 총력을 쏟고 있다.

정량화된 지표를 높이기 위해 예산은 더 잘게 쪼개지고, 더 많은 개수의 성과물을 얻는 데 사용된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 프로그램의 질, 학습 성과, 학습자의 만족도는 크게 고려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량화된 지표를 달성하고, 그 지표를 가지고 좋은 대학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게 대학의 존재 가치는 아니다. 대학의 존재 가치는 단순하다.

좋은 교육을 통해 학생들을 지성인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교육 콘텐츠를 준비하기 위해 기초와 응용 분야의 연구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대학의 존재 가치이다. 앞서 언급한 그 대학의 그런 강좌는 대학의 이 두 가지 사명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아마 그 대학의 관계자, 그 과목의 담당 교수도 그 강좌가 학생들에게 진정으로 도움 되리라 생각하지는 않을 듯하다.

대학의 운영자들은 외부의 평가 틀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그렇다면 대학은 자금을 지원하는 외부 기관, 기업 또는 순위를 매기는 언론사의 부속기관인가? 정량화된 지표와 순위를 높이는 게 대학의 존재 가치인가? 엉성한 평가 틀과 모순된 순위 매김의 부당함을 앞세워 현재 상황을 변명하기보다는 진정으로 좋은 교육 콘텐츠를 만들고, 그러한 콘텐츠로 외부의 평가 틀을 넘어서는 가치와 존재 이유를 대학 스스로 확립해야 한다.

스무 살의 고등학교 졸업생을 이십 대 중반의 지성인으로 성장시키는 동인은 대학의 순위, 정량화된 지표가 아니다. 진정으로 좋은 교육 콘텐츠, 좋은 학사 시스템, 좋은 교수가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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