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규제 이야기가 나온 이후에도 비트코인 광풍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비트코인 거래 창을 들여다보느라 잠 잘 시간이 없다는 사연들도 쉽게 들을 수 있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와 달리 이번 비트코인 열풍은 특히 젊은 층에서 뜨겁다는 점이 특징이다. 비트코인 투자자 중 20대와 30대가 60%에 육박한다는 보도도 있었다(☞관련 기사 : 'N포세대'의 확산…"가상화폐, 흙수저 탈출 마지막 기회"). 그러나 비트코인 이전에도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 청소년과 청년층의 위험감수행위는 사설 스포츠 도박 등의 형태로 널리 퍼져 있었다(☞관련 기사 : "고교생 사이에 '불법 스포츠토토' 도박 유행"). 아직까지는 버는 사람이 잃는 사람보다 많아 보여 다행이지만, 시장에 내재된 불안정성은 언제라도 사람들의 삶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사실 돈을 잃으면 잃는 대로, 또 벌어도 남보다 더 많이 벌지 못해서 밥이 안 넘어가는 게 투자자들의 심리다. 이러한 상황이 실제 건강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을까?
작년에 국제학술지에 발표된 두 편의 논문은 주식시장 파동이 대중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이 논문들은 우리와 인접한 대만과 홍콩의 경험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1998년 외환위기 직후 한국의 자살 급증 현상에서 일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먼저 작년 8월 국제학술지 <정신의학연구>에 발표된 대만 사례를 살펴보자. 대만국립동화대의 린 교수팀은 거의 모든 대만인의 병원 이용 실태가 담겨있는 '대만 국민건강보험연구자료(NHIRD)'를 이용하여, 1998~2012년의 15년 동안 자살시도와 자해로 내원한 환자들의 정보를 추출했다. 그리고 같은 기간, 대만의 주가지수(TAIEX), 자살 시도로 입원한 환자 수의 변동을 경제학에서 통용되는 수리적 방법을 활용해 보정한 뒤 월 단위로 비교했다. 다음 그래프에 나타난 것처럼, 주가지수와 자살자 수가 거의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연동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 대만의 주가지수 변화(왼쪽)와 자살시도자 수(오른쪽) 변화
연구진은 시계열 분석 방법을 적용하여, 주가지수, 주가의 일일변화량, 총 누적변화량이 자살기도 횟수에 미치는 영향을 살폈다. 이 과정에서 특정 요일, 월, 년이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고 고용상태의 효과도 보정했다. 분석 결과, 주가지수가 1000점 떨어질 때마다 자살 시도자 수가 2.11%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가로 인한 건강 영향은 45~54세 연령군에서 가장 컸다. 반면 20대와 30대 초반의 젊은 연령군은 주가의 일일 변화량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 또한 일요일에 비해 평일, 그 중에서도 월요일에 자살시도가 많았는데 이 또한 주식시장의 영향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젊은 연령층이 총 주가지수보다는 일일 변화량과 총 누적변화량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이들이 작은 손실에도 더욱 예민하고 손실의 영향을 오래 받을 수 있음을 뜻한다.
한편 작년 6월 국제학술지 <환경연구와 보건>에 발표된 홍콩의 사례는 주가 변화가 성인 뿐 아니라 다른 가족 구성원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홍콩대의 웡 교수 연구팀은 주가와 아동·청소년의 자해 행동 사이의 관계를 검토했다. 연구진은 '홍콩 의원관리국 전산 자료'를 이용하여 2001~2012년의 12년 동안 홍콩 전역의 응급실에 방문한 5~19세 연령층의 자해 환자 수를 확인했다. 그리고 이를 12세 이하의 아동, 13세 이상 청소년 집단으로 구분하여, 홍콩 주식시장을 대표하는 주가지수인 HSI(항생지수)와의 연관성을 살펴보았다.
이 기간 동안 응급실에 내원한 아동청소년 자해 환자는 총 4931명이었는데, 아동과 청소년집단 모두에서 주가지수가 상승하면 자해율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하루에 항생지수가 300포인트 상승하면, 자해로 인한 응급실 방문이 아동은 9%, 청소년은 6% 늘어났다. 반면 주식시장 휴장일의 경우, 자해율은 평일 대비 80% 수준에 그쳤다. 물론 이는 주식시장만의 영향이기보다 공휴일 자체가 주는 여유에서 비롯된 효과일 수도 있다.
이러한 결과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대만 연구팀은 주가 하락과 자살 시도 증가의 연관성을, 경제적 손실로 인한 개인적 좌절, 경제 위기로 인한 사회 분위기 침체 등으로 설명하려 했다. 반면 홍콩 연구팀은 주가가 상승하면 아동과 청소년의 부모가 자녀를 돌보기보다 주식시장에 집중하게 되고, 자녀가 부모의 관심을 갈구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야말로, 주식시장이 호황이어도 불황이어도 나름의 건강 부작용이 있는 셈이다.
이러한 연구결과들에 비추어 본다면, 지금 한국에 만연한 투기 행위와 이를 조장하는 문화는 어떤 측면으로든 대중의 건강에 유익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청년과 청소년에게 초점을 두자면 우려는 더욱 크다.
칼 폴라니는 상품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상품인 척 거래되는 대표적인 가짜 상품으로 화폐, 토지, 노동을 이야기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투기 열풍이야말로 이 가짜 상품들과 긴밀히 얽혀있다. 지금 단번에 벌어두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처럼 불안을 조장하거나, 미래 산업, 신성장동력 등의 교묘한 단어들로 사회에 불로소득의 환상을 심는 작태는 중단되어야 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건강, 특히 청소년과 청년들의 건강과 안녕을 해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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