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와 편의점
대형마트를 끊은 지 오래되었다. 가끔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듯 훌쩍 마트에 다녀오고 싶을 때도 있지만, 다녀오고 나서 후회한 적이 많아 꾹 참고 만다. 카트에 담긴 상품들 중 당장 필요한 물건은 몇 개 안 된다는 걸 알아버린 것이다. 넓은 매장을 한 바퀴 돌다 보면, 나도 모르게 '사야만 할 것' 같은 상품들이 카트에 쌓인다. 막상 계산을 마치고 집에 가져오면 꺼내는 순간부터 둘 곳을 찾지 못해 애물단지가 되고 만다. 10만 원 훌쩍 넘게 장을 봤는데도 며칠 밥 해 먹고 나면 또 뭘 사다 뭘 만들어 먹을까 고민이 반복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사는 아파트 주변에 네 군데나 있는 슈퍼와 편의점을 지나갈 때마다 민망했다. 오가다 인사를 나눌 때면 그분들이 속으로 '난 니가 지난 주말에 마트에서 잔뜩 쇼핑한 걸 알고 있다!'고 하는 것 같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제는 동네에서 조금씩 자주 장을 본다. 한 가게에만 가면 다른 곳에서 서운해 할까봐 나름 동선을 짜서 돌아가며 이용한다. 대형마트 상품의 싼값은 납품업자에 대한 갑의 횡포로 조성된 가격이다. 그런 대형마트에 비하면 동네 가게에서 파는 물건들은 당연히 비싸다. 손해 보는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불필요한 충동 구매를 막아주기 때문에 동네 가게에서 장을 본 이후로 생활비가 확실히 줄었다.
얼마 전 몸살이 나서 꿀차가 먹고 싶다고 했더니, 남편이 꿀을 사러 집 앞 편의점에 갔다. 하필 꿀이 다 팔리고 없던 차, 편의점 사장님이 먹던 꿀 한 통을 선뜻 내어주셨다 한다. 남편이 가지고 온 꿀을 보니 몸살이 저절로 낫는 것 같았다. 서울 변두리 동네에 위치한 편의점은 아르바이트생 없이 가족끼리 돌아가며 운영하기 때문에 이름만 편의점일 뿐 옛날 구멍가게와 다를 게 없다. 게다가 명찰에 적힌 사장님 이름은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이름. 나는 편의점에 들어설 때마다 일부러 큰소리로 "양희은 여사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다. 예쁜 이름 자주 불러주는 게 좋으셨던 걸까? 지난여름 열대야에 지친 우리 세 식구가 매일 밤마다 편의점에서 한참 놀다 간 게 즐거우셨던 걸까? 세상이 각박하다지만 그래도 인심 좋고, 살기 좋은 동네다.
집 근처에는 지역자활센터에서 지원하는 협동조합 재활용 가게가 있다. 나는 그 가게가 생길 때부터 물건도 자주 기증하고 구입도 하는 나름 단골손님이다. 한번은 동생을 데리고 그 가게에 갔다. 매장을 쭉 돌아본 동생은 "생각보다 싸지는 않네, 그냥 다이소에서 사는 게 낫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여기 단골이 된 것은 물건을 싸게 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조금 비싸더라도 내가 물건을 구입하면 그 수익이 여기서 일하는 조합원의 임금으로 돌아가는 협동조합에 기여하고 싶었다. 이렇게 나누는 임금의 액수가 많지는 않겠지만, 스스로 꾸려가는 일터여서인지 일하는 분들의 표정은 언제나 밝아 보였다.
나는 인터넷 쇼핑이나 택배 서비스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 밤늦게까지 택배 배달을 하는 기사님을 보면 내 식구 같아서 속상하다. 어쩌다 절임 배추나 무거운 쌀을 주문할 때는 매번 망설이게 된다. 물론, 내가 이용해야 택배업을 하는 분들도 수입이 생기겠지만 노동 강도에 비해 터무니없이 저렴한 택배 요금을 생각하면 과연 이게 최선인지 묻게 된다. 그래서 가급적 비싸더라도 가까운 곳에서 조금씩 구입해서 직접 들고 오는 것이 내가 선택한 소비 방법이다. 집에서 편하게 음식을 배달시키고 싶다가도 눈비 오는 날이면 직접 식당에 가서 사 먹는다. 궂은 날씨에 오토바이를 몰고 배달하는 젊은 친구들은 거의 다 내 아들 또래이기 때문이다. 왜 위험하고 힘든 일은 가난하고 나이 어린 사람들의 몫인 걸까?
최근 <한겨레>에 제주의 특성화고 3학년 학생의 죽음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그 학생은 실습 나간 일터에서 프레스 기계에 머리가 눌리는 사고를 당해 열흘간 병원에서 사투를 벌이다 결국 사망했다. 사고를 당해 고통스러워하던 4분여 동안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작년, 서울 구의역에서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열차 사이에 끼어 죽은 스무 살 청년, 명절 선물 배달을 하다 과로로 쓰러진 택배 기사, 콜 수를 채우지 못해 괴로워하다 자살한 콜 센터 실습생, 비정규직 우체국 집배원. 그들은 모두 내 이웃이자 내 가족이다. 그들의 노동이 아름다워지려면 그에 버금가는 대가를 받게 해야 한다. 나는 지금보다 늦게 A/S를 받아도 기다릴 수 있다. 택배비가 지금의 2배 이상으로 오른다면 그땐 맘 편하게 택배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모두가 안전하고 즐겁게 노동하면서 그에 마땅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기꺼이 동참하고 싶다.
어디서 무엇을 살 것인가
최근 남편에게 나이키 운동화를 선물했다. 매대 상품이라 저렴한 값에 비해 제법 튼튼해 보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나이키 로고가 하얀색 실로 바느질되어 있어 눈에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나이키를 비롯해 코카콜라, 맥도날드 등 자본주의와 미국을 상징하는 기업의 제품을 극도로 싫어하는 남편도 이번 운동화만큼은 크게 뭐라 하지 않았다. 다만, 나 안 보는 데서 발등 쪽에 붙어 있던 깨알 같은 나이키 로고를 잘라냈다며 한마디 덧붙인다.
"내가 나이키 광고까지 해줄 필요는 없잖아?"
나도 싫어하는 기업이 몇 개 있다. 그중 으뜸은 무노조 경영 원칙을 고수하며 노조 결성을 방해하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들에게 위로와 사과는커녕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나쁜 기업 삼성! 스타벅스도 그렇다. 내가 마신 커피 값이 이스라엘의 전쟁 무기 구매 자금으로 쓰인다는 말을 듣고는 불매를 결심했다. 내가 소비자로서 행할 수 있는 권리 중 하나는 내가 치른 물건값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꼼꼼히 살피는 일이라 생각한다. 윤리적이지 않은 기업에서 만든 제품을 사용하거나 먹고 있는 나를 상상하기도 싫지만, 내가 그 기업을 광고하는 일에 도움이 되고 싶지도 않다. 어딘가 눈에 익은 옷, 그래서 자꾸 사고 싶어지는 옷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며칠 전 아이돌이 입었던 공항패션이거나, 스치듯 지나간 누군가가 입었던 옷인 경우가 많다. 내가 사용하는 제품은 어느새 내 뜻과 무관하게 그 기업을 위한 광고가 되어,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를 부추긴다.
서울 한복판 여대 앞에 위치한 직장에 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유행에 빠르게 반응하는 자신을 보며 놀란다. 불과 2년 전 월악산 골짜기에 살 때는 겨울이면 눈밭에 굴러도 안 추울 것 같은 두툼한 꽃무늬 점퍼가 최고의 패션이었는데 지금 도시에서 그 점퍼를 꺼내 입으면 다들 할머니 패션이라고 놀린다. 이 도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소비하라고 아주 친절하게 강요한다.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는 끝없이 다짐을 해야 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현실이다.
손해 보는 거래를 자청하는 소비자
10년 전, 계약 만료를 한 달도 안 남기고 전세 보증금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말에 급하게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집을 알아보다 결국 허탕 치고 돌아온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마음에 드는 집은 죄다 지금 사는 집보다 훨씬 비쌌다. 올려주어야 하는 전세보증금도 너무 큰돈이었지만 이사 갈 집이 마땅치 않으니 어쩌나. 2년마다 1000만 원 넘게 보증금을 올리는 집주인이 너무 야속했다. 또한 나 자신이 한심했다.
"우리 부부는 그동안 뭐한 거지? 누구는 부동산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는데, 바보같이 우리는 전세로 떠돌다 매번 집주인 좋은 일만 시키고 이게 뭐니? 집주인은 나보다 한 살밖에 안 많은데 어디서 돈이 생겨 이런 집을 갖고 있는 거야? 세상 참 더럽네."
내 하소연을 가만히 듣고 있던 친구가 말했다.
"돈 올려주고 그 돈만큼 더 행복해지면 되잖아. 넌 지금 매매 가격의 절반에 이 집을 통째로 쓰고 있는 거야. 그 집주인보다 네가 더 행복한 걸지도 몰라."
엉뚱한 말 같았는데, 신기하게도 그 말은 나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무리해서 전세 보증금을 올려주었지만 그만큼 더 행복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돈이 많다고 다 행복한 건 아니니까. 우린 불행할 만큼 가난하지는 않으니까. 지금 가진 걸 소중하게, 고맙게 생각하자 했다.
이제껏 살면서 돈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 그럴 정도로 부자라는 말이 아니라, 돈이 많이 드는 일은 하고 싶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명품으로 휘감은 사람이 눈앞에 있어도 그걸 알아보는 안목이 없는 나로서는 기죽을 일도 없다. 가진 만큼만 욕심내고 살았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었다.
미래에 대한 근거 없는 낙천주의와 기죽지 않는 당당함 때문인지 남들은 내가 엄청 부자인 줄 안다. 우리 부부가 한 달에 40만 원 가까이 내는 기부금을 보면 더 그렇다. 결혼 초에 우리는 아이를 하나만 낳기로 하고, 둘째는 입양하면 어떨까 고심했다. 결론은 입양 대신 둘째 아이 낳아 키우는 비용만큼 시민사회 단체에 후원하기로 했다. 우리가 정한 시민사회 단체의 기준은 아동 단체가 최우선이고 그다음으로 인권 단체, 재정 자립이 어려운 작은 단체 순이었다. 그중 지난 15년간 후원했던 에티오피아의 우리 둘째 아들 아사기르는 최근 가정을 이루고 후원자인 나로부터 독립했다. 그 친구에게 내가 후원한 건 돈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가치였다고 믿고 싶다.
우리 시어머니 표현대로 "쥐뿔도 없으면서 남한테 퍼주기만 하는" 우리 부부는, 퍼줄 수 있을 만큼은 벌면서 산다. 이리저리 재고 따지고, 이익을 좇고, 치장하고, 쌓아둬서 행복한 게 아니라 손해 보는 소비라도 감수할 수 있고, 나눠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착한 소비'는 '더 나은 가치 추구를 위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는 소비'다. 물론 나 역시 모든 거래가 이익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때로 손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기꺼이 거래를 하는 것이 착한 소비 아닐까. 돈의 기준으로 보면 분명 손해지만 가치의 기준이나 공공의 입장에서 보면 이익인 경우가 많다. 나의 소비가 누군가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일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소비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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