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동 이익과 사회복지에 대한 계획 일부를 포기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친절한 도움은 매우 시기적절하고 중요합니다. 우리는 1980년까지 경제자급을 달성하고 우리가 가진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1975년 박정희 정권 당시 고재필 전 보건사회부 장관이 해외입양부모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은 2018년 현재까지 해외입양을 계속 보내고 있다. 한국은 경제자급을 달성하고 우리가 가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한국은 유엔아동권리협약 제21조a를 유보한 유일한 국가이며,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의 주요 협상 대상국이었으나, 협약 성립 25년이 넘도록 가입하지 않고 있으며, 아동매매 선택의정서의 국제입양 목적의 아동매매 형벌화는 유보적 성격의 해석선언을 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아동의 국제입양과 관련된 국제협약 의무를 모두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데 국가기관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한 결과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이경은 고려대학고 인권센터 교수)
"인도는 홀트국제입양기관의 사업을 중단시킴으로써 그 지도력을 보여주고 있고, 우루과이는 입양기록을 중앙집권화함으로써 아동의 삶의 역사를 알 권리를 법제화했다. 그리고 에티오피아와 루마니아, 필리핀은 국가간 입양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아동 양육 체계를 발전시켜 오고 있다."(시몬느 은미 입양인 활동가)
아니면 국가가 자국의 특정 아동과 그 가족의 사회적 '배제'를 암묵적으로 추진해온 것일까?
입양 절차 전반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그동안 민간기관인 입양기관에 전적으로 맡겨 놓았던 입양 절차를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하도록 하는 입양특례법 전면 개정안과 관련된 토론회가 16일 국회에서 열렸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인 남인순(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발의를 준비하고 있는 입양특례법 전부개정안의 가장 큰 변화는 입양기관에 맡겼던 입양 절차 전반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관여하고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는 입양신청부터 상담, 교육, 입양적격심사, 결연, 입양전 위탁, 사후관리 및 서비스 모두 입양기관이 담당하고 있다. 이를 지방자치단체와 보건복지부에서 책임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해외입양의 경우도 입양아동 적격심사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담당하고 해외에서 한국 아동의 입양을 원하는 부모가 보건복지부 장관에서 입양을 신청하도록 한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지난 10월 국회에 비준동의안을 제출한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이 요구하는 것이다.
소라미 변호사(공익법무법인 공감)는 이날 토론회에서 "유엔아동권리협약과 헤이그협약은 입양에 있어서 아동 최선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으며, 입양을 권한 있는 공적 당국에서 관장할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 변호사는 특히 입양절차를 민간 입양기관에 전적으로 맡기면서 "입양이 아동복지 시스템과 분리되어 운영되는 것도 큰 문제"라면서 "우리나라는 친생부모가 입양기관을 찾아와 아이를 입양 보내달라고 말만 하면 곧바로 입양 절차가 개시된다. 미혼모에 대한 양육지원, 지역의 복지 서비스와 연계될 틈은 없다. 친생부모의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가정 위탁 제도나 시설 보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으나 그와도 연계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입양숙려기간 한국은 1주일, 필리핀은 3개월, 체코는 6주
소 변호사는 2016년 3월 대구에서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은비 사건과 관련해 "진상조사 결과 가장 가슴이 아팠던 건 17살이었던 은비 엄마가 홀로 아이 양육과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라며 "청소년 미혼모에 대한 지원의 부재는 입양으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그는 "헤이그협약은 원가정 보호를 원칙으로 천명하고 있으며, 원가정 보호가 불가능할 경우에는 국내에서 보호 가능한 가정을 찾고, 국제입양은 최후의 수단으로 검토할 것을 원칙으로 선언하고 있다"며 현재 1주일에 불과한 '입양숙려기간'을 30일로 늘릴 것을 제안했다. 필리핀은 3개월, 체코는 6주를 입양숙려기간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들 나라들은 입양숙려기간 동안 미혼모에 대한 상담과 지원을 우선 진행하도록 보장하고 있으며, 원가정 양육이 어려운 경우에는 아동보호체계상 일시보호를 위한 시설 또는 위탁 가정에서 보호하도록 공적 지원 체계를 설계해두고 있다. 입양특례법 개정안에 '원가정 양육 우선 원칙'이 실현될 수 있는 방안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 변호사는 현재 10%대에 불과한 입양인의 친가족 찾기 문제에 대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알 권리'를 좀더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1일 노르웨이 입양인인 얀 소르코크(한국명 채성우) 씨가 친부모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김해의 고시텔에서 고독사하는 사건이 있었다. 친가족 찾기는 성인이 된 입양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일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그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소 변호사는 "입양정보공개의 청구권자를 친생부모 및 형제자매로 확대하고, 친생부모의 동의 없이 입양정보공개가 가능한 경우(입양인의 유전적 질병 등)를 명시하고, 정보공개가 거부된 경우 불복할 수 있는 이의절차를 신설할 것" 등을 제안했다.
해외입양인 대표로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시몬느 은미 씨는 "수년 동안 입양인들은 '이건 어렵다', '이게 한국 사회가 하는 방법이다"라는 말들을 반복적으로 듣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함께 하며 다름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느끼고 있다. 참여를 통한 변화에 역점을 두는 문재인 정부와 함께 우리는 계속해서 일하기를 원한다. 원래부터 그런 것은 없다. 지금까지 그랬다면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입양 관련 법과 제도 변화를 촉구했다.
홀트 "불미스러운 사건 하나 때문에 입양법 전체를 바꿔서야"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대열 홀트아동복지회 회장은 "헤이그협약 비준을 앞둔 현 시점에서 정부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지만 입양으로 인한 불미스러운 특정한 한 사건으로 인해 입양법 전체를 바꾸는 것이 아동 이익의 최우선이라는 이념이 후퇴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남인순 의원실에서 준비 중인 법안과 관련해 "새로운 입양법 제안대로 입양절차를 진행하려면 입양기관은 아무 역할이 없다"며 현재 다른 사회복지기관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입양 업무를 입양기관에 위탁하고 이를 관리, 감독하는 형태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또 정부가 입양기관의 운영비를 보조하며 이를 통해 입양 과정을 통제하고 관리하게 되면, 현재 입양기관이 양부모들로부터 입양수수료를 받는 것과 관련된 도덕적 논란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입양숙려제 기간을 연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미혼모를 터부시하고 혈연 중심 사회인 우리나라와 실정이 전혀 다른 나라의 예를 들어 연장을 제안"했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고경석 사단법인 한국입양인홍보회 회장은 "입양 가족 입장에서 입양정보공개청구권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입양의 또 다른 당사자인 입양가족의 인권에 대한 존중 역시 함께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은 공개입양운동이 시작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비밀입양이 80%를 차지할 만큼 입양에 대해 폐쇄적인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며 "비밀입양으로 자란 입양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친생부모나 사촌 이내의 친척이 정보 공개를 청구하면 그 당사자에게 불어닥친 충격과 혼란의 책임을 누구의 것이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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