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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은 유시민이다. 노무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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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유시민은 유시민이다. 노무현은 없다

[분석]유시민 '몽니'로 親盧 분열? 盧에게 '박근혜'는 없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노무현의 아바타'로 여겨졌었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처하던 그다. 지금도 '친노(親盧)세력'의 상징으로 많은 이들이 유시민 대표를 떠올린다.

그가 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참여당을 선택한 것도 어찌보면 노 전 대통령을 따라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후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당시 이에 반발하는 많은 이들이 '뺄셈정치'라고 비판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개의치 않았다. '지역구도 타파'라는 자신의 정치적 목표와 선명성을 위해서는 '뺄셈정치'가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뺄셈정치'의 달인, 유시민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뺄셈정치'의 달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386 정치인은 유 대표에 대해 "옳은 말을 어떻게 저렇게 싸가지 없게 할 수 있을까"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는 현 정치인 중 갈등을 가장 무서워하지 않는 정치인이다. 오히려 논쟁을 통해 갈등을 조장하고 이 과정에서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내 편'은 지지자로 끌어들인다.

그래서 유 대표는 열성 팬, 안티 팬, 둘 다 많다. 중요한 것은 안티 팬은 다른 정치인들의 표로 분산되지만 열성 팬은 그대로 자신의 표로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안티 팬이 그토록 많은 유 대표가 야권의 차기 대선주자 중 1위를 차지하는 비결이다. 적과 나를 분명히 가르는 유 대표의 이런 정치 스타일은 특히 기존 정치권이 포괄하지 못 하는 블루오션, 20-30대의 젊은 층에 먹힌다.

유 대표가 참여당을 간 것도 '뺄셈정치'다. 민주당에는 열린우리당 분당 과정 등에서 형성된 강력한 유시민 비토 세력이 있다. 단신으로 민주당에 다시 들어갈 경우 그의 정치적 위상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민주당 유력 정치인 중 하나가 되는 순간 20-30대 젊은 유권자들에게는 그렇고 그런 정치인 중 하나가 된다. 유 대표는 이런 이유로 신생 소수정당인 참여당을 선택했다. 하지만 유 대표는 참여당에 갔기 때문에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후보가 될 수 있었고, 야당 대표라는 타이틀도 거머쥘 수 있었다.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2012년 대권 레이스에 도움이 될 '스펙'을 추가했다.

지난 3월 참여당 대표가 된 이후에도 4.27 재보선에서 그는 야권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참여당 주장을 끝까지 관철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과 일부 야권 지지자들의 비난이 쏟아졌지만 싸움과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답게 굴하지 않았다. 안티 팬이 좀 추가됐겠지만, 실리는 챙겼다.
▲ 유시민 참여당 대표는 이번 김해을 재보선에 '올인'하고 있다. ⓒ연합

뺄셈이 덧셈이 된 역설의 배경

역설적으로 '뺄셈정치'가 유 대표에겐 오히려 '덧셈'이 된 셈이다. 이런 모순이 가능한 배경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과 야권에서 연대와 연합이 불가피한 상수가 된 상황,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참여당은 노무현 정치를 계승하겠다는 명분으로 지난해 1월 창당했다. 대통령 재임시 민주당을 쪼개고 만든 열린우리당이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자동해체되는 실패를 겪은 노 전 대통령이 살아있었다면 참여당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을지 짐작하기는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친노세력의 분열은 이미 이때부터 시작된 일이라는 사실이다.

어찌됐건 리더를 잃은 정치세력인 친노집단의 분열은 불가피한 일이다. 또 현재 민주당에 남은 이들과 유 대표는 원래 출발점이 다르다. 민주당에 남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등은 90년대 초반 노 전 대통령이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들 때부터 같이 했던 참모들이다. 정치권 밖에 있는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부산에서 변호사를 하던 시절부터 친구였고,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이 90년대 중반 장수천 사업을 할 때부터 경제적 후견인 역할을 했다. 반면 유 대표는 MBC <100분 토론> 사회자, 칼럼니스트 등으로 대중적 인기를 모으다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부터 노 전 대통령을 도왔다. 정치의 출발점이자 계기가 노무현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동지라고 할 수 있지만 함께 한 시간은 결코 길지 않아 깊이 신뢰하는 관계라고 보긴 힘들다. 강금원 회장이 얼마 전 <시사인>과 인터뷰에서 "유시민은 친노가 아니다"라고 주장한 것도 이런 거리감을 보여준다.

또 63세라는 젊은 나이에 갑작스런 죽음으로 '노무현 정치'는 미완됐다. 퇴임 후 측근들과 본인에 대한 검찰 수사와 그로 인한 급작스런 자살로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재임시 공과 과에 대해 정리할 시간이 부족했다. '현 정부의 의한 정치적 타살'이라는 비판과 국민적 애도 분위기가 아직도 남아 있어 '노무현 정권 5년'은 여전히 건드리기 힘든 영역이다. 또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이 커질수록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도 커진다. 이런 상황 때문에 분열된 친노세력(정당 구조로 보자면 민주당과 참여당)은 무엇이 노무현의 뜻이냐, 누가 노무현의 적자냐를 놓고 싸울 수밖에 없다. 노 전 대통령이 없기 때문에 정답은 누구도 모른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제 아비의 꿈은 복지국가였다"고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말을 해도, 그가 박정희의 딸이기에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하는 것과 비교된다.

둘째,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야권의 연대와 연합이 일종의 상수가 됐다. 두 번의 민주당 정권에 대한 심판의 의미로 이명박 정권이 탄생했지만, 이명박 정권의 국정운영은 국민들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반(反)이명박 정서가 팽배해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보수성향의 유권자 층이 더 두터운 현실에서 정권교체를 바라는 야권 지지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최소한이 야권후보 단일화다. 실제 50년 만에 첫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권과 바통을 이어받은 노무현 정권 모두 선거연합을 통해 집권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과 손을 잡았었다.

진보개혁진영에 대한 실망과 불신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치루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연합정치'는 이미 피해갈 수 없다. 특히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반쪽짜리 야권연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면서, 그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는 야권연대를 깨는 정당이 욕먹는 상황이 됐다. 지역구별로 이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총선과 달리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노회찬, 심상정)에서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문제다. 아직 1년 반 넘게 남았지만 다음 대선에서 유시민 대표를 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이 두 가지가 현재 국회의원 하나 없는 원외정당 대표 유시민이 갖는 정치적 힘의 배경이다.

유시민에게 노무현은? 계승과 동시에 극복 대상

지난해 6월 경기도지사 선거 패배 후 잠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던 유 대표는 지난 3월 참여당 대표가 되면서 다시 전면에 나섰다. 작년 10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손학규 대표가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떠오른 것처럼, 유 대표가 참여당 대표를 맡았다는 것은 차기 대권 레이스를 본격화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때문에 오는 27일 재보궐선거가 유 대표와 참여당에겐 매우 중요하다. 이번 선거에서 의석을 하나 얻어 원내 정당이 되는 것과 지금처럼 원외 정당으로 남는 것은 천지차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야권의 정당통합과 선거연합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대선주자 유시민'이 변수가 아닌 상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재보선 결과는 매우 중요하다. 더욱이 민주당과 참여당이 야권단일후보 자리를 놓고 다투는 김해을 지역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상징성까지 있다. 그래서 나쁘게 말하면 '몽니', 좋게 말하면 '벼랑 끝 전술'로 참여당은 100%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 단일화라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관철시켰다. 물론 이 과정에서 유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이 불리한 것을 알면서도 2002년 국민참여경선을 받아들였는데 노무현 적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등 민주당 뿐 아니라 야권 단일화를 지지하는 많은 유권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앞서 봉하재단의 김경수 사무국장이 불출마 선언을 하는 과정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실까지 더해져 '친노의 핵분열'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일었다. '안티'가 더 늘어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 사력을 다했다. 대표 취임 후 줄곧 김해에 머무르면서 선거운동을 했다. 물론 10-11일 이틀간 진행되는 여론조사 결과에서 참여당 이봉수 후보가 민주당 곽진업 후보에게 졌을 경우, 정치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을 맞겠지만 어쨌든 과정에선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참여당 대표 유시민의 이런 '벼랑 끝 전술'에 대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유 대표에게 "노무현과 다르다"는 비판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김윤철 경희대 객원교수는 "김해을 선거과정에서 보이는 유 대표의 행태에 대해 이상화된 '노무현 정치'를 동원해 비판하는 것은 반MB, 반한나라당 구도로 문제를 협소화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노무현에 대한 향수에서 바라보니까 유시민의 현재 행보에 대해 이해가 안 될 수 있다"며 "하지만 노무현은 지금 없다. 유권자 시장도 자체도 변했다. 과거처럼 열정적인 유권자가 다시 등장할 가능성은 적어졌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등장과 이 대통령이 부정확한 여론조사이긴 하지만 여전히 4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광범위한 민심이반은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 이런 '유권자의 변화'를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또 지난해 6.2 지방선거와 7.28 재보선에서 야권연대에 대한 유권자들의 냉정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비해 유권자들의 판단은 훨씬 냉정하고 빨라졌다.

따라서 유시민이 대표가 된 참여당이 선거판에 뛰어들면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크게 보면 '노무현이 없는(더욱이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없는) 한국 정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이냐'와 연관된 문제다.

다시 정치인 유시민의 문제로 좁혀 보면, 사실 유시민은 노무현과 다르다. 이는 그 누구보다 유시민 대표 본인이 잘 알 것이다. "노무현 때문에 정치를 시작했다"는 유 대표에게 노무현은 계승해야할 사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권'을 위해서는 넘어서야할 사람이기도 하다. 유 대표에게 노 전 대통령 생전이던 2007년 대통합신당 대선 경선후보로 나섰을 때와 달리 2012년 대선후보로 나서려는 현재, '노무현'은 좀 더 다층적 의미를 갖는다. 그가 대권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 전 대통령을 때로는 가까이하고, 때로는 멀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 대표의 '줄타기'가 성공할 수 있을까? 그건 아직 누구도 모른다. 다만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2003년 개혁당 사태, 2007년 대선 경선 패배 직후 탈당 등) 과거에 보여줬던 모습과 달리 유 대표가 정당체제라는 틀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협상력을 키워가려는 것은 진일보한 태도"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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