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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에 '표준'이라니!

[격월간 민들레] 꼰대들의 잔소리 같은 '성교육 표준안'

주관적이고 가변적이며 역동적인 성

얼마 전 아이 둘을 친정에 맡겨놓고 연수차 경주엘 갔다. 일정을 마치고 경주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해 함께 밥을 먹는데 그게 뭐라고, 보문호 바라보며 먹는 한 끼 식사가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 '아, 저녁에 외출을 다 하다니! 아이들 없이 편하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외식을 하다니! 밤에 친구와 술을 마시다니!' 감동에 감동이었다. 한껏 도취된 내가 "지금 정말 행복하다. 그런데 오늘 만난 사람이 네가 아니라 남자였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아!" 하니, 친구가 대뜸 "너, 신랑이 굉장히 잘해주나 봐" 하는 것이었다. "딴 남자 만나고 싶다는데 난데없이 남편 얘기가 왜 나와?"라고 했더니, "남편이 잘해주니 남자를 또 만나고 싶지. 나는 이제 남자라면 진절머리가 나서, 그 어떤 놈도 만나고 싶지 않거든" 하는 게 아닌가. 친구의 대답에 우린 한참 깔깔대며 웃었다(지금 이 친구는 개구쟁이 아들 둘을 키우느라 경상도 말로 '쎄가 빠지는' 중이다).

그런데 만약 다른 남자 만나고 싶다는 말을 이 친구가 아닌, 다른 이에게 했다면 반응이 어땠을까? 아마 누군가는 "남편하고 무슨 일 있어?" 하고 걱정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유부녀가 무슨 그런 소릴 하니?" 하며 비난했을지도 모른다. 비난 정도라면 차라리 다행이지, 조선시대였다면 소박맞고 쫓겨났을 것이고, 한국이 아니라 IS가 점령한 지역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면 목숨이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똑같은 말일지라도 듣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그리고 시대적, 문화적 배경에 따라 결과는 너무나도 달라진다.

그러고 보면 성(性)이라는 것도 그렇다. 고정된 것도 아니고, 불변하는 것도 아니다. 굉장히 주관적이고 가변적이며 역동적인 것이다. 때때로 강의현장에서 만난 분들 중에는 답답한 마음에 '이럴 땐 이렇게 해야 한다' 식의 정답을 원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성에 있어서 무엇이 정답인지 말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 2013년 교육부가 만든 '성교육 표준안' 갈무리.

꼰대들의 잔소리 같은 '성교육 표준안'

2013년 교육부가 '성교육 표준안'을 내놓았다. 유아부터 고등학생까지를 대상으로 한 성교육 워크북과 교사용 지도서가 각각 배포되었다. 성교육에 표준이라니! 나는 내심 기대를 가지고 표준안을 펼쳐 들었다. 성이라는 게 워낙 범위가 넓고 주제도 다양하다 보니(물론 학교에서는 주로 성폭력 예방을 주제로 강의를 하지만), 강의안을 만드는 과정이 늘 고민이었기에 표준안에 묻어가려는 심산도 살짝 있었다. 그런데 표준안을 쭉 훑어보고 나서 나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교육부가 제시한 성교육 표준안은 기존의 성 고정관념과 편견을 고스란히 드러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강화하는 꼰대들의 잔소리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표준안을 '꼰대들의 잔소리'라고 여긴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인데, 첫 번째는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 심화다. 유치원 워크북 15차시의 주제는 '내 몸이 좋아하는 옷'이다. '내가 좋아하는'이 아닌 '내 몸이 좋아하는' 옷이라는 제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데, 내용 역시 그러하다. 속옷만 입고 있는 여자아이, 남자아이 캐릭터에게 여러 가지 옷 중에 '내 몸이 좋아하는' 것을 골라 입히는 활동인데, 활동지에 제시된 옷은 티셔츠, 블라우스, 바지, 치마, 원피스, 속바지, 구두, 운동화 각 1개씩이다. 여자 캐릭터에게 티셔츠와 바지를 입히면 남는 것은 치마나 원피스 뿐이기에 결국엔 남자 캐릭터에 티셔츠와 바지, 운동화를 여자 캐릭터에는 치마 또는 원피스, 구두를 입히게 된다. 여자 캐릭터에게 치마나 원피스를 입히는 것이 어째서 본 차시에서 목표한 바와 같이 '바른 옷차림'인지, 이로써 어떻게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는다. 통기성이 좋은 옷차림이 건강에 좋다는 교육목표 때문이라면, 치마와 바지의 대비가 아닌 꽉 끼는 옷과 통 넓은 옷의 대비가 되어야 한다.

초등 고학년을 위한 내용도 마찬가지이다. 초등 고학년 11차시의 주제는 '나 전달법으로 대화 나누기'인데 "남자와 여자는 달라요"라고 명시하며 두 개의 뇌 구조 그림을 제시한 후 어떤 것이 여자의 뇌인지, 남자의 뇌인지 알아맞히는 활동이 준비되어 있다. 제시된 뇌 구조 중 하나는 외모, 옷, 화장, 수다, 이성 친구, 쇼핑, 우정, 텔레비전이, 또 다른 뇌는 축구, 운동, 게임, 먹을 것, 이성 친구, 우정, 텔레비전으로 구성되어 있고 해당 차시 지도서에는 '남녀 간 관심 분야, 흥미 분야가 다름'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어느 쪽이 남자 뇌고 여자 뇌든 뇌 구조의 내용이 편협하기 짝이 없다. 이런 활동으로 남녀 간의 다름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그래서 목표한 대로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고등학교 워크북도 남녀 성 심리의 차이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성 심리의 차이가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에 대한 논의, 양성성에 대한 언급 등으로 나름 다양한 시도를 하는 듯하지만 역시나 '남녀 간의 성 심리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미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드러난다(동성 커플은 성별이 같기 때문에 동일한 성 심리를 가질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교육부에서 제시하는 성교육 표준안이 개개인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어째서 실제로 존재하는지 알 수도 없는 '남녀의 성 심리 차이'에 매달리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 표준안의 두 번째 문제는 '성폭력에 대한 통념'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성교육 표준안에서 제시한 데이트 성폭력 예방을 위한 다섯 가지 방법은 모두 피해자가 해야 할 일이다. 데이트 성폭력에서 가해자의 행위는 쏙 빠진 셈이다. 제시된 예방법도 '평소 자기 의사를 분명히 제시한다, 남성 우월적이거나 공격적인 남성과는 데이트를 하지 않는다, 상대를 잘 모르는 경우에는 상대방의 집에 방문하지도, 자신의 집에 초대하지도 않는다' 등으로 통념투성이다. 성폭력은 힘의 차이에 의해 발생하기에 자신의 의사를 밝히기 쉽지 않은 상황임에도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제시하라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는 점,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이 훨씬 많다고 설명하면서도 예방법으로는 잘 모르는 사람의 집에 방문하거나 자신의 집에 초대하지 말라는 엉뚱한 소리를 내놓은 점이 그렇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데이트 성폭력의 원인 중 하나로 '데이트 비용'을 꼽고 있다는 점인데, 비용을 더 내는 남성이 여성에게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원한다는 것이다.(고등학교 지도서, 230쪽) 이는 뒤집어 말하면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있거나 공격적인 남자와 데이트하거나,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았거나,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서로의 집에 방문하거나, 데이트 비용을 정확하게 절반으로 나누지 않는 것은 성적 행위에 동의하는 것이라고 명시하는 것과 다름없다. 표준안을 집필한 사람들이 성폭력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갖추지 못했을뿐더러 심지어 데이트와 성매매를 구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성교육표준안은 이 외에도 금욕 중심의 성교육, 다양한 성적 정체성과 지향, 선택을 철저히 배제하는(옹호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조차 언급하지 않음) 등의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성교육 표준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러한 문제가 있는데도 모든 학교 현장에서 이 표준안을 따르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표준안이 배포되었을 당시 내가 속한 지역 교육청에서는 교내 보건교사는 물론 외부 강사가 성교육 강의를 할 때도 이 표준안을 벗어나지 않도록 했다. 지역의 성교육 단체들이 모여 성명서를 제출하고 현수막을 내걸며 시정을 요구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심지어 몇몇 학교에서는 성교육 담당교사가 각 교실을 돌며 성교육 강사가 표준안에 따른 강의를 하는지 점검을 하기도 했고, 표준안에 따르지 않은 강사에게는 다음부터 강의 의뢰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나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직접 구성한 강의안이라도 자기 언어로 소화가 되지 않은 채 강의를 하면 어렵기 마련인데 나에게 맞지도 않은 강의안을 그대로 따라 하려니 마치 제2 외국어를 하듯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다. 이내 교육부의 앵무새가 된 듯한 자괴감도 밀려왔다.

누구에게나 있는 단 하나의 스토리

요즘 들어 딸아이가 이야기에 부쩍 흥미를 느껴 틈만 나면 재밌는 얘기를 해달라고 조른다. 하루는 어린이집 가는 길에 또 졸라대기에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 끝에 "토끼는 잘난 체하다가 경기에 지고 말았지? 언제나 거북이처럼 열심히 해야지" 했더니, 아이가 "근데, 엄마. 져도 되잖아요, 왜 꼭 이겨야 해요?" 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달리기 좀 못할 수도 있지. 그걸 놀리는 동물 친구들이 이상해요"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그래. 져도 되는 것을. 이 이야기의 교훈이 '교만하지 말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자' 일 수도 있는데 나는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싶었다. 한 가지 이야기가 시대나 문화에 따라, 혹은 사람에 따라 수십 가지의 의미로 전달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성이라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 역할, 선택, 삶은 말 그대로 단 하나뿐인 스토리(이야기)다. 그 고유한 스토리를 표준이라는 잣대로 옳고 그름,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재단하는 게 옳을까? 무엇보다 재단하려 한다고 재단이 가능할까?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어쩌다 보니 표준안이 흐지부지되어 슬금슬금 각 단체나 강사의 지향에 맞게 강의가 구성되고 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반복해서 성교육을 듣는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보다 다양한 관점의 성교육을 접할 수 있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삶을 구성해나가는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게 된 셈이다.

그런데 최근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한 이 표준안을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글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그 배경에는 동성애를 금기시하는 일부 종교단체의 입장이 있을 것이고, 에이즈에 대한 공포, 청소년들의 성 비행에 대한 우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만큼 균등하지 못한 성교육의 질도 빠질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현재 성교육 강사는 수료의 형태로 자격이 주어진다. 강사과정을 운영하는 각 단체마다 참가자격과 교육과정이 상이하며, 같은 단체라 할지라도 강사 개개인의 가치관, 신념, 역량은 제각각이다.)

그러나 성교육 표준안이 과연 그들이 혐오하는 동성애와 그들이 두려워하는 청소년 성 비행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성교육 표준안이 수많은 이야기 중의 또 하나의 이야기라면 모를까, 성교육의 유일한 대안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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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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