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주노총 새 위원장이 당선되던 날인 29일 옥중에서 이런 편지를 썼다. 이로써 민주노총 직선 1기 위원장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한상균 위원장은 당선된 지 1년여 만에 수감돼, 민주노총 임기 총 3년의 3분의 2를 옥중에서 마감했다.
같은 날, 문재인 대통령은 특별사면 대상을 발표했다. 정봉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상에 포함됐지만, 한상균 위원장은 명단에 없었다.
한상균 위원장이 누구인가. 쌍용자동차 노동자 출신으로 '정리 해고 반대 싸움'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다. 2008년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으로서 2009년 77일간 평택 공장에서 옥쇄 파업을 주도했고,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아 2012년 8월 만기 출소했다. 이후 그는 출소한 지 불과 3개월 만인 2012년 11월부터 비정규직 해고자와 함께 171일간 철탑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며 정규직 해고자와 비정규직 해고자 간의 '아름다운 연대'를 이끌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직선제 제1기 선거에서 많은 사람의 예상을 깨고 '강경파'인 한상균을 택했다. 한상균 지도부 체제가 출범했을 당시, 박근혜 정부는 '쉬운 해고' 등 노동 개악을 추진하고 있었다. 한상균의 당선 배경에는 박근혜 체제하에서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심리가 작용했을 것으로 풀이됐다.
한상균은 약속대로 박근혜 정부에 '노동 개악'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며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를 주도했다. 쌀값 폭락에 신음하던 농민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쌀값 인상 대선 공약을 지키라"고 요구하며 거리로 나왔고, 세월호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함께했다. 그 자리에 민주노총이 있었다. 민주노총 노동자들은 '쉬운 해고'에 저항했다.
민중총궐기 집회가 어떻게 마무리됐나. 박근혜 정부는 참가자들에게 물대포를 직사 살수했고,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무려 317일을 투병하다 2016년 9월 25일 사망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주치의를 배출한 서울대병원은 그의 죽음을 '외인사'가 아니라 '병사'라고 했다. 이는 정권이 교체된 뒤에야 '외인사'로 바로잡혔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11월 16일 백남기 농민이 혼수상태에 이른 데 대해 "박근혜 정부가 생존권을 요구하는 국민에게 살인적인 폭력 진압을 자행했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당시 대표는 "농민들은 쌀 가격이 폭락해서 살기 힘들다고 하고, 노동자는 지금도 먹고살기 힘든데 쉬운 해고가, 노동 개악이 웬 말이냐고 한다"면서 "이런 말조차 할 수 없다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이후에도 노동자, 농민,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했다. 야당 대표이던 시절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자와 농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려 했다. 2015년 12월 5일 2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함께했고, 백남기 농민의 문병을 갔다. 경찰이 한상균 위원장 체포를 위해 조계사 진입을 시도할 때는 "즉시 중단하라"면서 고립된 그를 위해 대신 목소리를 내줬다. (☞관련 기사 : 광화문에 '닭 머리' '박근혜' 등장…"협박하면 조롱하자!", 문재인 "경찰 조계사 진입, 중대한 불심 침해", 백남기 사망, 문재인 "우리 모두 죄인"…안철수 "무거운 책임감")
차벽으로 평화로운 시위를 원천 봉쇄한 뒤 물대포를 직사 살수했던 박근혜 정부에서 검찰은 한상균 위원장에게 '폭력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무려 징역 8년을 구형했다. 2016년 12월 13일 항소심 최후 진술에서 한상균 위원장은 "촛불이 거세게 타오르며 위대한 민중의 함성을 듣고 있다"며 "박근혜 정권은 헌정을 파괴했으며 초헌법적 국정농단 행위는 정당성이 없다. 이보다 더 큰 국가 폭력은 없으며 특검을 통해 낱낱이 파헤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균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저항한 인물의 상징이기도 하다. (☞관련 기사 : 한상균, 원심 깨고 2심에서 징역 3년 선고)
'촛불 정부'임을 자처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여야 4당 만찬 회동 당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아직 감옥에 있다"는 이정미 정의당 대표의 말에 "저도 눈에 밟힌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 사면 대상에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빠졌다. 한상균이 과한 처벌을 받았음은 누구보다 문재인 대통령 자신이 잘 알 것이다. 경찰이 차벽을 쳤고, 집회 참가자들을 자극했고, 국가 폭력으로 농민이 사망까지 했던 바로 그 집회였다. 문 대통령은 당선 이후인 지난 9월 이낙연 총리를 통해 백남기 농민 사망에 대해 발 빠르게 사과했지만, 한상균은 끝내 외면해버렸다. (☞관련 기사 : 이낙연 총리 "백남기 농민 1주기…정부 대표해 사과", "한상균 징역 5년? 경찰 살인 진압이 유죄")
한상균을 끌어안는 것은 민주노총을 끌어 안는 것이다. '쉬운 해고'에 맞서 싸운 노동자들을, 2016년 추운 겨울 촛불집회에 나와 박근혜 퇴진을 외친 노동자들을 끌어안는 행보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국민 통합'에 저해된다는 이유로 한상균을 외면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한상균 사면이야말로 '촛불 정신'이라는 국민 통합에 기여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당장 민주노총은 29일 성명을 내어 "한상균 위원장 사면 배제로 노정 관계는 더욱 긴장되고 악화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며 "노동계를 국정의 파트너로 하겠다면서 파트너의 대표를 구속시켜 놓는 것은 그 말이 한낱 허언에 불과하다는 것을 입증해줄 뿐"이라고 섭섭함을 토로했다. 그럴 만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 존중 사회'를 만들고, 노동계를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 삼겠다는 뜻을 거듭 피력했다. 그 말의 진정성을 믿고 싶다. 그래서 새해에는 노동계를 포용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노동자는 지금도 먹고살기 힘든데 쉬운 해고가, 노동 개악이 웬 말이냐고 한다. 이런 말조차 할 수 없다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노동자를 감싸주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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