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어떨까? 정운찬 위원장이 초과이익공유제 논란 끝에 사퇴를 하는 게 대권을 위한 포석이라는 기자들과 정치권 일각의 분석은 어떨까? 이 또한 '자신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남들만 믿는' 것일까? 이건 모호하다. 양 갈래 해석 여지를 모두 열어 놨다. "요즘 상황(을) 보니깐 좋은 정치가 참 필요하다"고 말했는가 하면 "너무 확대 해석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 ⓒ연합 |
정운찬 위원장에겐 '내비게이션'이 없다. 자신의 정치적 행로를 알려줄 '내비'가 없다. 그래서 연거푸 번지수를 잘못 짚는다.
세종시가 그런 예다. 정 위원장이 정말 대권을 염두에 두고 총리직을 받아들였다면 세종시에 발을 담가서는 안 됐다. 자신의 지역 기반이 될 충청 민심을 고려했다면 세종시를 향해 시위를 당겨서는 안 됐다. 그건 곧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과녁 삼는 것과 같은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총리 수락 일성으로 '세종시 수정'을 천명하면서 제 발에 족쇄를 채웠다. '총리직'이 지름길인 줄 알고 자갈길로 접어들었다. 4륜구동급 정치적 깜냥을 성숙시키기도 전에 무턱대고 오프로드를 내달렸다. 그러다가 타이어가 빠지는 주행사고를 내버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초과이익공유제가 회심의 카드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정 위원장은 이 카드로 자신의 본래 이미지, 즉 중도개혁 이미지를 복원해 대권 발판으로 삼으려 하는지 모르지만 그건 그만의 생각이다. 실상 얻을 건 없다.
설령 정 위원장이 중도개혁 이미지를 복원한다 해도 그건 '미수금'이다. 매출은 올렸지만 수금은 되지 않은 미래의 자산일 뿐이다. 수금하려면 조직화해야 한다. 자신 주위에 사람이 고이게 해야 하고, 이들이 자진해서 이미지를 확대 복제하고 대권 가도에 주단을 깔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가능하지 않다.
언론의 분석대로 정 위원장이 '이회창식 행보'를 그으면 '아류' 밖에 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 맞은편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떡 버티고 서 있기 때문에 초과이익을 창출하지 못한다. 그가 뛰어든 정치 시장은 '레드 오션'이 되고, 그의 처지는 '샌드위치'가 된다.
정 위원장이 정말 동반성장 정책을 매개로 이명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이회창식 행보'를 그으면 친이계의 반응이 심드렁해진다. 잠재고객을 실수요자화 하는 게 아니라 오는 손님에게 소금 뿌리게 된다. 세월이 흘러흘러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본격화하고 친이계의 위기감이 증폭되면 여지가 생길지 모르지만 이 또한 아니다. 분당을 출마를 사실상 포기한 마당 아닌가. 정 위원장에겐 비빌 언덕이 없고, 친이계에겐 동석할 자리가 없다.
마저 더 짚자. 정 위원장에게 '내비'가 없다는 또 다른 증좌다.
정 위원장이 타깃 삼은 사람은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그리고 임태희 대통령실장이다. 최 장관은 자신의 초과이익공유제에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임 실장은 '삼성에 강하게 대응하지 말라'고 했다는 이유로 그들의 사과와 자신의 사퇴를 맞세우고 있다.
정 위원장의 이런 행동은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깎아내리고 자신의 정치적 좌표를 흐리는 일이다. 총리까지 지낸 사람이, 대권을 엿보는 사람이 보이는 행동으로 받아들이기엔 민망한 일이다. 그가 정녕 '이력'을 의식하고 '미래'를 염두에 뒀다면 상대 급수를 올렸어야 했다. 대통령에게 직공을 하던지, 이건희 삼성 회장과 끝까지 '맞짱'을 떴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엉뚱한 상대를 골랐다. 남들은 그를 '헤비급'으로 간주하는데 정작 본인은 '웰터급' 상대를 골라잡은 것이다.
이러면 잘해도 밑진다. 이명박 대통령에 '푸념'하고 이건희 회장을 '피해간' 것으로 비쳐져 이미지를 깎아먹고, 나아가 최중경 장관과 임태희 실장의 사과를 끌어내지 못하면 '어린아이 손목조차 비틀지 못하는' 허약체질만 부각된다.
어제도 오늘도,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정운찬 위원장은 헛발질만 날린다. 행로를 정밀설정해도 모자랄 판에 스스로 교란전파를 발사한다. 이런 마당에 무슨 포석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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