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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이한열 그리고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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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이한열 그리고 <1987>

[기고] 대한민국은 '시민 항쟁'이 만들었다

(이 글은 영화 <1987>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을 보는 시간은 무참했다. 1987년 6월 항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서울대생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의 발생과 박 처장(김윤석 분)으로 대표되는 야만적 국가권력의 사건 은폐 및 축소 시도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자 했다. 또 이를 시민들에게 알리려는 다양한 사람들의 분투 및 고난과 마침내 광명천지에 드러난 전두환 정권의 악마성에 분노한 주권자들의 항쟁으로 구성되어 있다.

박정희의 정치적 아들인 전두환은 군사반란과 광주학살을 통해 집권한 사람답게 공권력에 악마적 야수성을 부여했다. (전두환을 수괴로 하며 12.12군사반란의 몸통인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의 후견인이 박정희였고, 전두환과 하나회가 군부요직에 포진할 수 있도록 조치한 것도 박정희였다. 즉 박정희가 없었다면 하나회도, 12.12군사반란도, 광주학살도, 전두환 정권도 없었을 것이다.)

전두환의 철권통치 아래서 기본권은 헌법전 속에서나 찾을 수 있었고, 국가와 시민들은 정권을 위해 존재했다. 공권력의 폭력 앞에 사람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치는 것도 피했고, 숨 죽여 말했다. 독재자를 축출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일은 너무나 아득해 보였다.

그때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가 있었다. 20대 초반의 꽃다운 청년 박종철 열사는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물고문을 당하다 숨진다. 도주 중인 선배의 행방을 말하라는 경관들의 강압에 불응한 대가는 고문과 죽음이었다.

박 처장은 박 열사의 사체를 태연히 "태우라"고 지시하는 악마적 인간인데 박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하고 조작하는데 광적으로 매달린다. 빨갱이에 대해 사무치는 증오와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박 처장은, 그러나 전두환 정권에 저항하고 반대하는 모든 사람을 빨갱이로 간주하고 핍박한다. 빨갱이라면 이를 다글 다글가는 박 처장이 잡은 빨갱이 중에 정말 빨갱이(폭력적 사회주의자, 남파간첩 등)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박 처장과 안기부장(문성근 분)으로 상징되는 공권력의 고문치사 은폐 및 조작에 맞서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직업적 양심과 정의감으로 무장한 채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폭로하려 분투한다. 대검의 최 검사(하정우 분)는 박종철 열사의 시신을 부검 없이 화장하려는 경찰에 맞서 부검을 관철하고, 박종철 열사의 상태를 처음 확인한 중앙대 병원 의사는 기자에게 박 열사가 고문치사에 의해 사망했다는 정황을 넌지시 알려주며, 박 열사의 시신을 부검한 부검의는 전두환 정권이 원하는 사인인 심장마비가 아니라 고문치사에 의한 사망임을 밝히고, 윤 기자(이희준 분)는 고문치사 사실을 지면화하며, 한병용 교도관(유해진 분)은 목숨을 걸고 고문치사 은폐 및 축소 사실을 재야에 알리고, 이부영(김의성 분)과 김정남(설경구 분)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감옥 안과 밖에서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은폐 및 조작의 실체적 진실을 폭로한다. 이쯤되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리고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가 있다. 피기도 전에 고문과 최루탄에 의해 숨진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의 삶과 죽음은 너무나 빛나고 아름다워 오히려 처연하다.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만드는데 하나 뿐인 생명을 던진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 덕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 장준환 감독이 강동원을 이한열 열사역에 캐스팅하고, 여진구를 박종철 열사역에 캐스팅한 건 영원히 빛날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의 아름다움을 시각화하기에 강동원과 여진구가 적임이라고 판단한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87년 6월 항쟁의 산물이며, 6월 항쟁을 발전적으로 지양한 촛불혁명의 아들이다. 이명박과 박근혜로 상징되는 야만과 퇴행을 경험한 우리들은 다시는 그런 역사를 반복해선 안 된다. 우리가 다시 찾은 민주공화국과 기본권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그걸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인생이 바쳐졌는지를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한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냐"고 냉소하다 역사와 대의가 결집한 시청광장에 합류한 연희(김태리 분)처럼 우리도 정치적 인간, 생각하는 주권자로 진화해야 하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은폐 및 조작을 폭로하는데 힘을 모은 온갖 직업과 다양한 지향을 가진 사람들처럼 우리도 차이를 넘어 손을 맞잡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를 더 확장해야 하고 단단히 만들어야 한다. 확장되고 단단해진 우리가 대한민국을 명실상부한 민주공화국으로 만들고 기본권을 실질화해야 한다.

나는 올해가 가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1987>을 보길 바란다. 30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고, 선이 어떻게 악을 물리쳤는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헌신과 희생이 있었는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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