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75미터 굴뚝에 올라간 그 노동자를
세상 사람들은 잊어 갔다.
1200일이 되자
굴뚝 밑의 노동자들도 경찰들도 사라지고
누군가에 의해 하루 세끼 밥은 올라오고 있었지만
그 노동자가 왜 굴뚝에 올라갔는지
무엇 때문에 내려오지 못하는지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잊어 갔다.
75미터 굴뚝만이 노동자를 기억했다.
밥을 길어 올리는 밧줄만이
오토매틱하게 그 노동자를 기억했다.
높이 오를 줄 아는 새들 만이
눈물 흘리는 노동자의 옆얼굴을 기억했다.
삐딱하게 연기를 내뿜고 있는 옆 굴뚝만이
동지로서 그를 기억했다.
75미터 굴뚝에 올라간 그 노동자를
세상 사람들은 잊어 갔다.
가끔씩 페이스북 화면 너머에서 손뼉을 쳤지만
1200일이 넘자
페이스북은 정치인들에 대한 애증과
그러한 빛깔의 맛있는 음식 이야기로만 가득 찼다.
그 노동자가 왜 굴뚝에 올라갔는지
무엇이 그를 내려오게 하지 못하는지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잊어 갔다.
75미터 굴뚝의 높이로도 어림없는 노동의 권리
새들의 날개를 가지지 않고서는 넘을 수 없는
그 75미터 굴뚝의 높이를 모두는 잊어 갔다.
서로가 손잡고 가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이 기나긴 시간의 굴뚝 연기를.
그렇다, 1200일이 지나자
나는 시인의 은유와 상징의 붉은 꽃을 뱉어버렸고
1200일이 지나자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
이것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렸다.
손을 내밀어 보라
이 말이 들린다면
이 말이 들린다면
손을 흔들어 보라 소리치는
75미터 굴뚝에 올라간 그 노동자를
세상 사람들이 잊어버린 그 노동자를
나도 잊어버렸다.
도대체
기억은 어디에 소용이 있는 것일까?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는
이 모든 서사의 섬망을
나는 어찌하면 좋을 것인가?
75미터 굴뚝이 수 억 개의 붉고 푸른 성좌를
팽이처럼 돌리고 있는데
쓰러지지 않는 팽이처럼 돌리고 있는데
왜 우리는 이리도 일찍
1200일에 가까이 달려가 있는 것인지.
도대체
도대체 기억은 어디에 소용이 있는 것일까?
빛보다 빠른 기억으로 우리는
그 모든 날들의 첫째 날로 되돌아 갈 수 있는 것인지.
75미터 굴뚝에 올라간 그 노동자를
세상 사람들은 다 잊고 있었다.
<시작 노트>
아침 출근길 마다 마주치는 지역난방공사 굴뚝을 쳐다보면, 저만한 높이에 지금 이 순간에도 서울 목동 75미터 굴뚝에 올라가 있는 홍기탁, 박준호 두 노동자를 생각하게 된다. 날씨가 추워지면 어떻게 견디나, 그들 걱정이 먼저 된다. 내가 세상 걱정을 다 뒤집어쓰고 사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지금은 밑에서 그들을 뒷바라지하는 차광호 노동자가 408일 동안 왜관 스타 케미칼 38미터 굴뚝에 있을 때의 그 풍경이 떠올라서다.
차광호 노동자가 408일 동안 굴뚝 농성을 할 때 나는 진료를 위해 10번 그 굴뚝을 올라갔다. 난 지금도 그 때의 스산한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비닐 천막으로 버티는 겨울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 긴 시간을 홀로 견뎌준 차광호 노동자에게 나는 늘 경의를 표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때 밑에서 뒷바라지와 투쟁을 조직하고 있던 홍기탁, 박준호 두 노동자가 올라갔다. 그 소식을 들으며 막막했다. 그저 막막하다, 는 마음만 들었다. 세상은 늘 이래왔다는 걸 알면서도, 이러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알면서도 나는 막막하다는 생각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세상이 이만큼이라도 버텨온 것은 질 수 있음을 알면서도 싸워온 많은 사람들 덕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싸움은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하는 것이 맞지만, 이것이 진리 명제이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이길 수 없음을 알면서도 투쟁해 온 많은 비극적 영웅들이 있어서였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과 눈물 속에 묻고 살아온 민중들의 힘을 통해서라고 나는 믿는다.
기억하고 인식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길 수도 없고, 살아갈 수도 없다. 75미터 굴뚝 위에 두 노동자가 있다. 기억하고 인식하자. 공간적으로 함께 할 수 없을지 라도 그들이 지금도 저기 있음을 잊지 말자. 아파서 얼굴 찡그린 나의 이웃들이 바로 내 앞에 있음을 눈을 뜨고 지켜보고,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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