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성을 빼앗는 소유자 중심 일방통행
최근 빈민지역운동사 발간위원회에서는 <마을공동체 운동의 원형을 찾아서>(한울 펴냄)라는 뜻깊은 책을 발행했다. 1970년대 도시화 그늘에서 출발했던 빈민운동이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지역주민운동으로 전환하고, 점차 공동체운동과 대안운동으로 발전해갔는지를 생생히 보여 준다.
책을 읽다 보면, 대규모 철거 이주를 동반하는 재개발사업이 어떻게 지역운동의 뿌리를 송두리째 파괴했는지 접하게 된다. 헌신했던 활동가들과 지역주민들 노력으로 다져진 지역네트워크와 공동체가 재개발로 인해 허물어지고, 기존 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지역주민운동의 동력도 함께 사라지곤 했다. 서울 신림동이 그랬고 봉천동이 그랬다. 재개발 뒤 새로운 주민들이 입주하고, 기존 주민들 가운데 일부가 행여나 다시 재개발 아파트에 입주하더라도 주민운동을 지속하기는 어려웠다.
요즘 한국에서 많이 언급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바로 위와 같은 상황을 만드는 경계해야 할 도시 변화 과정이다. 지역을 기반한 모든 형태의 사회운동은 결국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주민을 조직하는 것에서 출발하는데, 기존 토지 이용자를 내쫓는 재개발 같은 도시재생은 젠트리피케이션을 가져오고 지역 공동체 해체한다. 아무리 재개발로 인해 새로 공급된 신규 아파트 단지가 겉으로는 화려하고 정돈돼 보여도, 도시 공간 해체가 가져오는 공동체성 상실은 회복하기 어렵다. 결국 도시 공간 변화는 '누구의 도시를 만들기 위한 것인가'라는 근본 질문 앞에 놓인다.
젠트리피케이션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은 도시 공간 변화가 철저하게 '소유자' 중심 일방통행으로 이뤄지고 기존 공간 이용자를 배제하고 내쫓는 것으로 마무리된다는 데 있다. 불평등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도시 공간의 변화가 사회구성원의 평화롭고 평등한 공존을 애초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 문제다. 도시 평균 주거 조건에 미달하거나 절대 조건 자체가 불량한 주거지를 개량하고 기반시설을 개선하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도시 공간을 바꾸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개선 혜택을 기존 주민이나 동네 가게를 운영하던 상인들이 누리지 못하고 개발 과정에서 쫓겨난다면, 다시 말해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난다면, 애초 방향이 잘못된 것이다.
한국에서 최근 집중적으로 발생한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은 기존 주거용 공간이나 세탁소와 같은 주민편의시설이 외지인을 주요대상으로 하는 상업공간으로 전환되는 형태로 일어난다. 재개발이나 재건축으로 도시 서민들의 적정 주거지이던 동네가 사라지고 기존 주민들 대부분이 내쫓긴다는 점에서 재개발과 재건축 역시 젠트리피케이션 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도 불평등한 도시재생 모델의 대표 사례인 1980년대 서울에서 벌인 '합동재개발 사업'을 상기해본다면, 한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단지 최근 2∼3년 사이 현상이라기보다는 더 오랫동안 벌어진 일임을 알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도시 공간에서 '정주성' 확보는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사회 전체가 '소유자 중심'에서 '지금 거주하는 주민 중심'으로 바꾸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주민은 상가 임차인도 포함한다. 정주성의 향상은 단지 콘크리트와 시멘트, 벽돌로 덮어진 집을 포함한 '건조환경(인간 생활 관련 구조물 전체)' 개선에만 머물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살기 편하다고 느끼는 장소는 건조환경뿐만 아니라 공생하는 동식물이 함께 조화를 이뤄야 한다. 새롭게 지은 신도시나 아파트 단지가 세월이 흐르면서 온갖 동식물이 자리를 잡으면서 사람이 살만한 공간이라고 느끼게 된다. 수십 년 된 아파트 단지에 '도시 숲'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재건축과 같은 도시재생 방식은 이러한 공간을 완전히 지워버린다. 기존 공간이 갖고 있던 정주성 역시 새로 지은 값비싼 주택을 소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대체된다. 세상에 '좋은 젠트리피케이션'은 없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난다는 사실 자체는 결국 기존 주민이 쫓겨나고 정주성 파괴가 뒤따른다는 점에서 '좋은 젠트리피케이션'은 양립이 불가능하다.
기존 이용자의 권리 확대와 기존 공간 동식물에 대한 '시민권' 부여를 생각해 본다. 이는 대규모 철거 뒤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하는 도시 공간 재편방식 자체를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새로운 건조물을 세우려면 완전히 기존 모든 인공건조물과 식물군을 갈아엎고, 기존 생물의 죽음과 축출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도시계획 관련 법령에 따르면 주택재건축 정비사업을 할 때 환경영향평가 일환으로 동물과 식물 분포를 조사하고 보호하기 위해 고민하게 되어 있지만, 사업성을 앞세워 절대다수가 잘려나간다. 동식물을 인간 생존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 도시재생 계획 단계에서 기존 동식물 보호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럴 때 비로소 기존 공동체가 지속되고 평등하며 공정한 도시재생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모든 도시계획 관련 의사결정권이 경제, 사회, 정치적 자본을 소유한 이들에게 집중돼 있다. 취약한 서민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하고 되찾게 할 것인가. 주거 세입자는 2년마다 집세 인상 압력 탓에 정주하지 못한다. 세입자의 잦은 교체는 지역 사회의 공동체성이 만들어지기 어렵게 한다. 공동체 유지 발전이 애초 힘들다는 것을 뜻한다. 재개발로 인한 공동체 해체가 2년 주기로 발생하는 셈이다. 상가 임차인 경우, 2009년 용산 참사 뒤로 권리 증진 노력으로 이전보다는 좀 더 상황이 호전되고 있다. 2015년 상가건물 임대차 보호법 개정 뒤부터 환산보증금 규모에 상관없이 5년까지 '계약갱신청구권'을 보호받을 수 있다. 하지만 건물주의 힘은 여전히 커서 다양한 우회 방법을 통해 상가 임차인을 내보내고 더 높은 임대료 소득을 올리고 있다. 상가 임차인의 계약청구기간을 10년으로 늘리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는 주거 세입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더 나아가 도시 서민이 공간 변화의 주인이 되어 이윤 획득보다는 '집'이라는 사용가치가 보호돼야 한다. 이를 위해 재개발이나 재건축 같은 대규모 철거 방식보다는 점진 개량 중심으로 도시재생 방식을 적용할 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재개발이나 재건축 사업은 조합원 자격을 가진 부동산 소유주만 사업 관련 의사 결정권이 있는데, 공동체 유지와 정주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세입자도 의사 결정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소유 방식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사적 소유권을 과도하게 보호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더 격렬하게 발생할 수 있는 배경이다. 새로운 방식의 소유를 고민해 보면 어떨까? '공동체토지신탁(Community Land Trust, CLT)' 제도의 도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개별 건물의 사적 소유는 허용하지만, 토지는 '공동소유'라는 원칙에 따라 개별 건물 매매 방식은 공동체 약관에 의거 엄격히 규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규제는 개별 주택을 일정 가격으로 유지하고 서민을 위한 주거 안정성을 도모할 수 있다. 이 같은 제도는 적정 주거의 지속적 확보뿐만 아니라 부동산 관련 수익을 공동체에 귀속해서 공동체성 확립에 힘을 보탤 수 있다.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도 기존 주민시설을 상업지역으로 바꾼 탓에 일어나는 정주성 파괴를 전제한다. 최근 영국에서 실험 도입한 '지역공동체 우선 매입권'도 고민해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지역 주민시설을 지속해 확보할 수 있다. 2011년 입법된 '지방분권법(Localism Act)'에서는 도서관, 시장, 수영장 같은 시설을 지역 주요 자산으로 지정하고, 이것이 시장에 매물로 나올 경우 지역 공동체가 우선 매입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다. 이 같은 방식이 영국에서도 아직은 실험단계지만,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해 필요가 있다. 즉, 지역 공동체에게 우선 매입권을 부여해, 지역이 꼭 필요로 하는 세탁소, 동네 생필품 가게, 동네 카페, 도서관, 유치원 같은 곳이 손 바뀜을 통해 외지인을 위한 상업 용도로 전환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런 시설을 공동소유로 보유하고, 동시에 공동체 지속을 위한 기반 시설로 활용할 수 있다. 필수 주민시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주민시설이 점유한 부동산 매매는 엄격히 규제하는 것도 역시 필요하다.
무엇보다 '부동산 계급사회'라고도 일컬어지는 한국에서 도시 공간 생산과 소비 방식을 뿌리에서부터 바꾸려는 시민사회의 자각과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우리가 점유하고 있는 건물과 토지가 우리 삶을 위한 '사용가치'로만 남아야 한다. 시민 모두가 차별 없이 공간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는 사회는 가능할까.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개념도 그 효용성을 잃어버리고 과거로 퇴장할 수 있는 시점은 언제일까. 공존의 가치를 앞세우고 덜 소유하며 함께 정주하는 삶을 우리 사회가 선택하는 때이다. '함께 사람답게 정주하는 것을 우선 가치로 여기는 사회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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