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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풀린 건 KTX만이 아니다. 국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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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풀린 건 KTX만이 아니다. 국정원도!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19> 정보기관, 제자리 찾아야

정보기관의 역할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주된 업무는 역시 '염탐'이다. '염탐'이란 우리 쪽과 이해관계가 있을만한 어떤 일의 사정이나 내막을 몰래 알아내는 행위다. 그렇게 염탐해낸 첫 단계의 결과물이 첩보다. 이 첩보들이 한군데에 모아져 비교분석과 가공의 절차를 거쳐 신뢰도가 부여되면, 비로소 '정보'의 반열에 올라 활용된다.

따라서 신뢰도 높은 정보를 뽑아내려면, 적국이건 가상적국(적국을 제외한 전 세계 모든 나라가 가상적국이다)이건 상대방 모르게, 하늘에서 바다에서 땅에서, 흔적 없이 염탐활동을 완벽하게 해내는 게 필수적이다. 상대방들도 그렇게 우리를 염탐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누군가, 우리의 사정과 내막을 염탐해 알아내지 못하도록 하는 '보안' 활동도 정보기관의 중요한 업무가 된다.

그러나 이 나라의 정보기관 특히 국가정보원은 창설 때부터 '국익'을 위한 염탐과는 별로 관계없는 길을 적지 않게 걸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이 땅의 중추정보기관으로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61년 6월 10일이었다. 5·16 쿠데타가 일어난 지 25일만이었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직속의 정보수사기관으로 발족되었으나, 반정부 세력의 감시통제가 사실상의 주된 업무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중앙정보부는 출발 때부터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증권회사들을 설립하고 증권거래소를 장악했다. 주가를 조작해 엄청난 부당이득을 챙겼다. 사람들은 이를 '증권파동'이라 했다. 주한미군의 휴양지를 만든다는 명분을 내세워, 정부자금으로 종합위락시설인 워커힐을 건설하면서 거액을 횡령했다. '워커힐 사건'이었다. 일본에서 승용차를 불법으로 들여와 시가의 2배 이상 가격으로 팔아 폭리를 취했다. '새나라자동차 사건'이었다. 역시 일본에서 도박기계인 회전당구기(파친코) 500대를 들여다 특정인들에게 영업을 허가해 줬다. '파친코 사건'이었다.

바로 이 4개의 거대한 비리가 이른바 중앙정보부의 4대 의혹사건이다. 당시 새로 만들어지는 민주공화당의 창당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저지른 부정이었다. 김종필 초대 중앙정보부장이 4대의혹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낸 뒤 외유길에 오른다. 이때 외유를 떠나는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그가 남긴 말이 저 유명한 "자의반(自意半) 타의반(他意半)"이다. 요즘은 흔히 쓰고 있으나 당시만 해도 '자의반 타의반'이란 말은 쓰이지 않을 때였다. 말하자면 김종필씨는 '자의반 타의반'의 원조다.

중앙정보부 직원들은 대부분 우리가 영화같은 데서 보는 여느 정보요원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행태를 보였다. 처음부터 그랬다. 염탐하는 사람들은 원래 소리 소문 없이, 흔적 없이 자기 신분을 숨기고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이 나라 정보기관원들은 거꾸로 자기 신분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모습들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못 알려서 안달을 하는 듯 했다.

나라의 이익을 위하기보다는 특정인, 특정 정당, 특정 정권의 안위를 위해 몸을 던지면서, 공갈·협박·고문에 이골이 난 솜씨를 보였다. '자의반 타의반'도 아니었다. 완전한 자의(自意)로 보였다. 1971년 10월, 이른바 10·2 항명파동 때 중앙정보부는 암흑가의 폭력배들이나 하는 수법으로 국내정치의 한복판을 휘저었다. '일탈'의 전형적 행태를 보여주었다.

당시 내무부장관이었던 오치성 씨의 해임결의안이 국회에 상정됐을 때였다. 여당인 민주공화당의 의석만으로도 결의안은 충분히 부결될 수 있었다. 그러나 여당 실세였던 김성곤 당시 의원 등 이른바 4인방이 '항명'을 했다. 자기들 계보를 동원해 결의안을 가결시켜 버리면서 사단이 났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혼내주라"고 지시하고,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지휘아래 4인방 등 의원 23명이 정보부로 끌려갔다. 무지막지한 고문을 당했다. 대부분 옷에 배변을 했다고 했다.

카이저수염이 상징이었던 김성곤 당시 의원은 콧수염이 한올 한올 씩 뽑혀나가는 특별한 고문을 당했다. 함께 끌려갔던 길재호 당시 의원은 고문 후유증으로 지팡이에 의지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들 두 명의 전 의원은 강제탈당형식을 거쳐 의원직을 잃고 정계에서 쫓겨났다. 기자들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남산 가서 라면 먹고 왔다"는 말이 있었다. 정권의 마음에 안 드는 기사를 쓴 기자가 서울 남산의 정보부 분실 지하실에 끌려가, 뭇매 맞고 왔다는 이야기였다. 조사받다가 끼니때가 되면 밥 대신 라면을 주었기 때문에 나온 소리다.

중앙정보부는 죄 없는 사람들 '빨갱이' 만드는데 특별함 솜씨를 보였다. 저 유명한 민청학련 사건과 인혁당 사건도 죄 없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빨갱이'된 사건이었다. 특히 인혁당 사건은 무고한 사람들에게 없는 죄 뒤집어씌워 살해하기까지 한 만행이었다. 정권안보를 위해 긴급조치를 선포하고 감행한 '사법살인'이었다.

북한 경비정에 납치돼갔다가 돌아온 납북귀환어부들도 정보부와 보안사에서 고문이라는 '제조과정'을 거쳐 무수히 간첩으로 거듭났다. 매질에 장사가 없었다. 그들은 대부분 학력도 낮았고 경제사정도 좋지 않아 변호사조차 선임하지 못했다. 조작하기가 수월했다. 수사관들이 유리병 같은 것을 산속 아무데나 묻어두고 납북어부를 데리고 가 그 자리를 파게하고는 무인포스트의 증거라며 사진 찍어 법정에 제출하기도 했다.

'간첩'이 되면 가족관계가 파탄날 수밖에 없었다. 최근 무죄판결을 받은 강 아무개씨는 '간첩'이었을 때 형이 이혼을 당했다. 형수의 친정에서 '간첩가족'이라며 강제로 이혼을 시켰다. 강 씨의 딸은 같은 반 아이들이 "간첩 딸과는 함께 공부할 수 없다"고 해서 담임선생이 복도에 따로 자리를 만들어놓고, 문을 열어놓은 채 수업을 했다고 했다. 김아무개 씨는 '간첩'이었다가 출소해 장성한 아들을 만났으나, 아들은 '간첩'인 아버지가 자기를 자꾸 만나자고해 괴롭다며 한강에 몸을 날렸다.

▲ 원세훈 국정원장. ⓒ뉴시스
이 모두가 염탐하는 데 열심히 매달려야 하는 정보기관이 본연의 임무대신, 생사람을 어거지로라도 간첩을 만들어, 나라의 분위기를 잡는데 몰두했던 데서 빚어진 기막힌 비극들이었다. 정보기관은 당초부터 염탐꾼, 그것도 프로 염탐꾼이어야 했다. 평소 교육받고 숙달되지 않은 사람은 제대로 해낼 수 없는 게 염탐이다. 인도네시아 대통령특사단 숙소침입사건은 그렇게 아마추어만도 못한 서툰 솜씨로 염탐시늉을 하다,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한 사태다.

도덕성 자체도 문제였지만, 준비성도 치밀함도 정교함도 없었고, 유사시의 '퇴로'도 대응방안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 그야말로 '날탕'들의 서툴기 그지없는 염탐이었다. 굿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선무당이 굿판 벌이다 사람 잡은 꼴이 되었다. 나사가 풀려도 너무 풀려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지난달 11일 광명역 KTX 열차탈선 사고도 그렇게 선로전환기의 나사하나가 제대로 조여지지 않아서 일어난 인재(人災)였다.

어디에서건 나사가 풀려있으면 탈은 반드시 나게 돼 있다. KTX는 2월 한 달에만도 모두 4차례나 사고와 고장으로 멈춰 섰다. 코레일 사장은 "사람이 다친 것도 아닌데 무슨 큰 일이 난 것처럼 그러느냐"고 기자들에게 눈을 흘겼다. 코레일은 지금 사장부터 나사가 풀려있다. 나사가 풀려있거나 맞지 않은 사람들이 대통령 주변에 몰리고 있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원세훈 국정원장도 처음부터 그 자리에 딱 맞는 인물이 아니라고들 했다. 꼭 맞는 나사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최근의 인사에서 국가과학기술원장으로 내정된 김도연씨도 나사가 풀린 일을 했다가 정부를 떠났던 사람이다. 교육과학기술부장관시절 모교에 국비를 지원하려다 말썽이 돼 물러났었다. 그런 그가 중립성이 요구되는 과학벨트 입지선정을 맡게 된다고 했다.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 기용된 박범훈 전 중앙대 총장은 국악을 하는 제자들에게 "요렇게 조그만 게 매력이 있다"느니, "감칠맛이 있다"느니, 기생정도로 여기는 말을 해 유명해진 사람이었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나사가 풀렸다"고 수군거렸다. 국가보훈처장에 임용된 박승춘 씨도 남북해군간 무선교신 내용을 일부 언론에 유출했다가 물의를 빚고 전역한 전력이 있다. 그래서 나사풀린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인 '나사풀린 인사'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다. 한·EU FTA 협정을 국회에 비준 요청한 한글본의 숫자가 틀려있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생겼다. 급박한 트리폴리 현지에서 교민들의 안위를 점검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리비아주재 대사를, 이 판국에 "대통령의 강연이 있으므로 재외 공관장회의에 참석하라"고 서울로 불러들이기까지 했다. 나사가 풀려도 보통 풀린 게 아니다.

원천적으로 함량이 모자라는 정권이라는 소리는 그래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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