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주택정책에 대한 진보적 요구와 대안은 이런 것들이었다. "다른 세금은 낮추더라도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은 보유세로 환수하여 복지재원으로 사용해야 한다. 공공임대주택을 대량 공급해서 자가와 함께 안심주거를 늘려야 한다. 분양가 상한제, 원가공개, 후분양제를 강화해서 싼 집이 많이 공급되도록 해야 한다. 전월세 값을 함부로 못 올리도록 자동계약갱신제와 인상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 뉴타운, 재개발사업을 주민의 관점에서 시행해야 한다." 세부적으로 논란이 있을 수 있고, 또 서로 모순되는 지점도 있기는 하지만 모두 필요하고 맞는 얘기들이다. 그런데 이런 것을 다 갖춘 이상 국가가 있을까?
어떤 나라를 꿈꾸는가?
우리는 주택 이야기를 할 때면 '좋은 나라'들을 부러워한다. 싱가포르처럼 '반값'에 분양을 해 주거나, 네덜란드처럼 공공임대주택이 많거나, 북유럽처럼 사회적 주택이 많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이른바 진보적 주택정책이 이상으로 삼는 나라들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나라들도 집값이라는 점만 놓고 보면 우리보다 결코 적게 오르지 않았다. 더 오른 곳들이 훨씬 많다. 싱가포르나 스웨덴 집값이 엄청나게 오른 것을 알면 놀랄 것이다. 자가비율이 높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그런 나라들일수록 최근 10년간 집값이 더 많이 올랐고 또 그만큼 거품붕괴의 고통도 크다.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스페인, 영국, 미국, 포르투갈, 그리스 등이다.
자기 집과 공공임대주택이 함께 많으면 안심할 수 있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영국은 대표적인 반대 사례다. 특히 독일과 스위스는 특이하게도 둘 다 비중이 매우 적다. 오히려 우리로서는 질색을 하는 민간임대주택이 가장 많다. 그런데도 이들 나라는 최근 부동산 가격이 가장 적게 올랐고, 국민들의 주거상황도 매우 안정되어 있다.
결국 자가 혹은 공공임대주택이 많은 것이 반드시 좋은 나라의 기준은 아닌 것이다. 자가는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있고, 가격거품을 초래하기 쉽다. 공공임대는 가장 적극적인 정부 역할이기는 하지만, 재정 부담이나 관리의 어려움, 사회적 격리가 문제로 된다. 또 민간임대는 불안정할 수 있지만, 주거이동이 잦고 단신가구가 늘어날 때는 유용하다. 이처럼 각각 장단점과 역할이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다른 나라의 이른바 진보적 주택학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거주하든 쏠림 현상이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즉, 자가, 민간임대, 공공임대가 적절히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점유형태균형(tenure equilibrium)이 진보적 주택정책의 목표라는 얘기다.
▲<그림> 주요 국가의 주택점유형태 분포 ⓒ프레시안 |
우리나라의 주택점유형태 균형?
우리나라의 주택 점유형태 분포를 보자. 공공임대주택은 2005년 기준 3% 정도. 지금은 4.5% 내외. 자가 소유율은 전국적으로 60% 내외. 민간임대에 사는 비중은 35% 정도. 그렇다면 이런 분포상태에서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까? 네덜란드 방향으로? 독일 방향으로? 아마도 그냥 놓아두면 일본, 미국 그 언저리로 가지 않을까? 일본, 미국 방향이라면 진보진영에서는 질색을 할 것이다. 그럼, 그렇지 않은 방향, 즉 네덜란드와 독일 방향으로 어떻게든 끌고 가면서 균형을 잡을 방법은 무엇일까?
네덜란드 방향은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것이고, 독일 방향은 민간임대주택도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모순적인 양 극단 방향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가능할까? 혹은 진보진영에서는 그런 모순적인 상황을 생각해 보았을까? 이 대목이 진보적 주택정책이 직면한 도전이다.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것은 좋겠지만 부작용도 많고, 또 현실적으로 앞선 복지국가 대부분이 후퇴하는 중이다. 민간임대는 우리로서는 없애고 싶겠지만, 거꾸로 외국의 진보적 주택학자들은 이를 활용하자고 하고 있다.
따라서 우선, 자가소유가 지금보다 더 늘어나기는 어렵고 또 더 늘리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일본의 자가소유율이 우리와 비슷하고, 그렇게 된지 40년 가까이 되었다는 데서 시사점을 찾아야 한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진원지가 구입능력이 낮은 계층에게 무리하게 자가소유를 유도했기 때문인 것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민간임대가 많다는 것은 뒤집어 생각하면 다주택 소유자가 많다는 얘기다. 도덕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임대차 보호제도가 잘 발달해서 별 문제가 없다. 여기에는 임대전용주택 등록, 임대소득세 부과, 자동계약갱신제, 임대료 인상 상한제, 임대료 불복신고제 그리고 임대료 보조제도, 가옥주 지원제도 등이 패키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우리나라가 갖추고 있는 것은 몇 가지나 될까?
공공임대주택이 좋다는 것은 다 알지만, 우리는 복지국가들에 비해 너무 늦게 시작했다. 다른 나라들이 이제 그만 짓자고 할 때, 우리는 겨우 시작한 것이다. 이미 너무 땅값이 올랐고, 또한 도시 내에서는 지을 땅도 없을 때였다. 정부 재정도 없이 LH공사에 빚으로 떠넘긴 상태다. 이제는 빚을 많이 졌다고 책망하고 있다. LH공사는 오도 가도 못하면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미 상당한 사회적 격리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가 적당한 목표일까? 우리식으로 확대할 방안은 없을까?
화끈한 한방은 없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패키지형 접근
보유세는 종합부동산세의 경험을 반추해 봐야 한다. 이른바 강남 부자들만 반발한 것이 아니라 중산층들마저 "집값도 못 잡으면서 세금 올렸다"며 내심 반대할 핑계거리를 찾았다. 연간 10만 원 정도 재산세만 내는 분들도 과표현실화에 불만이 많았다. 또 의외로 대표적인 주택복지국가들은 보유세 실효세율이 생각만큼 높지 않다. 어떻게 사회적 동의를 얻으며, 어디까지 강화해야 할까?
분양가 규제가 화끈하기는 해 보이지만, 시장 원리를 떠나 현실에서 기대만큼 잘 작동하지 않는다. 후분양제가 만병통치약이 아닌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1400만 명의 청약대기자가 있는 나라에서 반값 아파트를 무한정 공급할 수도 없다. 또 금융규제만 잘 했어도 집값을 미리 잡을 수 있었다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여전히 주택구입시 은행대출 비율은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전세제도라는 유일의 시장 상황 때문이다. 금융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지점이 있는 것이다.
결국 진보적 주택정책을 우리나라의 맥락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선진국 혹은 복지국가들의 주택정책에서 배울 것은 있되, 어느 하나의 모델이 최선이라고 고집해서는 안 된다. 보유세, 금융규제, 분양가, 공공임대주택, 세입자 보호 - 그 어느 하나가 '종결자'가 될 수는 없다. 진보적 주택정책에 '한방'은 없는 것이다. 이 점을 인정한다면 좀 더 겸손하게, 좀 더 조심스럽게 한국적 진보 주택정책을 함께 만들 일이다. 환상 없는 우리의 목표를 정하고, 그에 이르는 단계적이며 패키지화된 로드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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