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이렇게 민주주의를 목 놓아 부른 시인이 있었다. "신새벽 뒷골목에/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오직 한가닥 있어/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중략)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중략)//숨죽여 흐느끼며/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타는 목마름으로/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
이 시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가리방'으로 찍어낸 등사본으로 퍼지다가, 마침내는 노래가 되어 많은 모임에서 불리었다. 비장하게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사람들은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마지막 부분을 부를 때는 목이 메곤 했다. 그 뒤 19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이 시, 이 노래는 아련한 역사의 뒤안길로 흘러가버리는 듯했다.
17년 만에 부활된 대통령 직선제 선거를 통해 민선군부정권인 6공화국이 들어섰다. 3당야합과 공안정국이 이어졌지만 5.16 쿠데타 이후 30년 만에 문민정부가 출범했다. 5년 뒤에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야 사이에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졌고, 다시 5년 뒤에는 정권승계가 아닌 정권재창출도 이뤄졌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립되어 이제 다시는 민주주의가 절대로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의 모든 사람은 믿었다. 국제사회에서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이 같은 믿음이 배신당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0년간의 민주개혁정부에 이어 보수주의 정부가 들어섰다. 실용주의를 앞세운 이명박 정부 3년 동안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부문이 후퇴했고, 민주주의도 순식간에 무너졌다.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20여 년 동안 사회ㆍ경제적 민주화는 미흡하지만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성취되었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절차적 민주주의조차도 위협받고 있다.
완전히 사라졌다고 믿었던 독재시대의 망령이 되살아났다. 야만과 광기의 공포정치가 부활했다. 사이버모독죄, 언론장악, 미네르바 사건, <PD수첩> 탄압 등 민주주의 수준의 척도인 '표현의 자유'는 심각하게 짓밟혔다.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거나 참여정부나 국민의 정부에 대해 우호적이었다는 것만으로 언론인과 지식인들이 펜과 마이크를 빼앗겼다. 심지어는 코미디 프로그램에 대해서조차 시비를 걸고 간섭을 일삼았다.
'입법전쟁'이란 용어가 보여주듯이 거대여당 한나라당은 민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돌격대식 국정추진에 맹목적으로 앞장서왔다. 한나라당은 국회의 압도적 다수의석을 무기로 군사작전 하듯이 입법을 밀어붙였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합법적인 절차라든가 국민여론은 무시한 채 무조건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국회를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디어법 억지통과와 예산안 날치기 처리이다.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국민의 뜻을 국정운영에 반영하는 거버넌스 체계는 붕괴되고, 국민의 지지를 포기하고 공안기구를 전면에 내세운 공안통치가 시작됐다. 중도사퇴한 안경환 인권위원장이 지적한 것처럼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인권을 뒷전에 두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국민을 탄압하기 시작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의 책임문제와 한명숙 전 총리 재판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검찰은 충실한 권력의 도구가 되었다. '좌파척결'과 '반정부세력' 엄단을 내세우며 정권안보의 첨병이 되어 공안사건을 조작하던 독재시대의 정치검찰로 회귀했다.
경찰도 권력을 지키는 사병집단으로 전락했다. 용산참사는 경찰이 권력의 사병화가 되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이었다. 생존권을 요구하는 농성철거민들을 테러를 전담하는 경찰특공대까지 투입해 강경진압한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권력과 재벌의 하수인에 지나지 않는다. 대통령 측근들이 장악한 국가정보원은 국가안보를 내세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정권의 안보만을 위해 일하던 어두운 과거로 돌아갔다.
국가폭력도 되살아났다. 촛불시민을 향해 물대포를 직접 쏘아대고, 소화기 분말을 분사하며, 빈 소화기를 시민들에게 던지는 것은 국가폭력이다.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서 비폭력을 외치며 드러누운 시민들을 짓밟고, 방패로 내리찍고 곤봉으로 두들겨 패는 것은 명백한 국가폭력이다. 국가의 폭력에 참다못한 신부들이, 수녀들이, 스님들이, 목사들이, 교무들이 국가의 참회와 시민들의 비폭력을 요구한 것을 사법처리하겠다고 을러대는 것도 국가폭력이다. 민간인을 불법사찰하는 것도 국가폭력이다.
사법부의 독립성도 흔들렸다.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한 사건들에 대한 법원의 무죄판결이 잇달았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무죄판결,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위험성 보도한 MBC <PD수첩>에 대한 명예훼손 고발사건 무죄선고, 미네르바의 정부비판 명예훼손 무죄선고, 정연주 KBS 사장의 배임혐의 무죄선고,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판결, 전교조 교사들 시국선언사건 무죄선고, 일제고사 반대교사들의 징계 무효판결 등이다. 한나라당은 사법횡포, 좌파 등 색깔론으로 사법부를 공격하고 이용훈 대법원장 책임론까지 거론했다. 판결내용이 자기 정당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법원을 압박하고 정당 지도부가 대법원장에게 책임 운운하는 것은 3권분립을 훼손시키는 행위이다.
국가와 공권력에 대한 신뢰와 기대는 산산히 부서져버리고 말았다. 국가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용산참사를 보면서, 민간인 불법사찰 소식을 들으면서, 온 나라를 재앙의 늪으로 빠뜨린 구제역 사태를 보면서,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을 보면서 국가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겠는가.
김지하 시인이 '타는 목마름으로'에서 아프게 노래했던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발자욱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를 듣지 않으면 좋겠다.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을 보는 일도 없으면 좋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명박 정부는 남은 임기 2년 동안에도 내내 국민과 싸울 것으로 보인다.
정당정치가 미숙한 상태에서 대의정치에 강한 불신을 갖는 국민은 투표장으로 가는 대신 직접 거리로 나서고 있다. 6월항쟁, 낙선운동, 탄핵반대촛불시위의 경험에 이어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시민들이 촛불을 높이 드는 것은 대의정치와 선거를 불신하는 시민들의 저항적 참여방식이다. 촛불집회는 '손상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참여민주주의적 정치참여의 흐름으로 정치제도와 선거를 크게 뒤흔들 것이다.
새로운 시민참여의 장(field)은 투표소나 정당이 아니다. 촛불집회 발원지인 서울광장이나 청계광장 등만도 아니다. 용산, MBC, KBS, 평택, 분향소 등 민주주의가 침해받는 곳은 어디든지 참여의 광장이 된다. 또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무너뜨린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시간에 제약받지 않고 시민참여가 가능해졌다. 촛불집회에 나타난 전자공론장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시민적 정치참여의 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집단지성이라 불렸던 전자적 공중(electronic public)의 새로운 시민참여는 광장민주주의로 발전할 수도 있다. 그러나 2008 촛불집회로 드러난 시민들의 참여를 제대로 반영해낼 정당이나 정치세력이 없다 보니 새로운 시민참여를 정치개혁을 이룰 동력으로 끌어들이지 못하는 실정이다.
시민참여의 주체도 가족, 촛불소녀, 10대 청소년, 대학생, 넥타이 부대, 주부, 유모차 부대, 네티즌, 온라인 커뮤니티 등 '모든 시민'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감수성을 가진 새로운 정치세대가 등장했고,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활성화된 SNS도 정부가 막아버린 표현의 자유를 누릴 새로운 공간을 제공해주었다는 점이다. 이 가치와 감수성을 반영할 정치제도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한동안 정치적 긴장이 발생할 수 있다. 정치불신과 무관심이 더욱 강해져 국민들이 정치를 혐오하고 증오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좋겠다. 정당과 정치세력들은 오늘의 한국민주주의 자화상을 보면서 깊이 반성해야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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