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대표 김영호)는 2017년 한 해 동안 한국 사회가 보다 책임성 높은 사회로 진일보하는 데 기여한 사건과 이에 역행하는 사건을 모아 '올해의 7대 뉴스'를 선정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중심으로 한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집행위원회(위원장 안치용 한국CSR연구소장)가 집담회를 통해서 '7대 좋은 뉴스(Good News)'와 '7대 나쁜 뉴스(Bad News)'를 선별했다. 지난 11일 발표한 '7대 좋은 뉴스'에 이은 '7대 나쁜 뉴스'는 다음과 같다. 새해에는 좋은 뉴스만 넘쳐나길 기원한다.(☞ 관련 기사 : ☞ 2017년 '7대 좋은 뉴스'는?)
1. 고교실습생을 죽음으로 내모는 현장실습
지난 11월 19일 오전 9시쯤 제주 지역에 있는 특성화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민호(18) 군이 사망했다. 앞서 생수업체에서 현장실습 도중 제품 압착기에 눌리는 사고를 당한 지 열흘 만이다. 지난 1월에는 전주에 있는 통신사 콜센터에 현장실습을 나간 홍 모 양이 업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벌어졌다. 고교실습생이 현장실습 도중 사망하는 일이 반복되며 학교와 현장실습 협약을 맺는 영세사업장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당초 이 군은 학교와 업체가 맺은 현장실습표준협약서에 따라 1일 7시간 일하도록 되어있었지만, 업체는 이 군과 별도의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1일 최대 12시간을 일하도록 했다. 사건 이후 이 군이 일하던 제주도엔 고교생 현장실습 사업장을 모니터링하는 '취업지원관'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잇따른 사고에 특성화고 재학생들은 '매일 12시간 일했던 제주실습생, 실습을 빙자한 목숨 건 노동착취', '전국 6만 명의 고3 현장실습생 안전을 보장하라'는 팻말을 들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정부는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몬 '조기취업 현장실습'제도를 내년부터 폐지하기로 했다.
2. 한국 기후변화 대응 '매우 불충분'하다, 낙제점 받아
정부가 오는 2030년까지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발전비중을 20%로 대폭 확대해 '원전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했지만, 국제사회의 평가는 냉담했다. 특히 국제 환경 단체 CAT(Climate Action Tracker)는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 수준을 캐나다, 일본, 중국 등과 함께 '매우 불충분'으로 평가했다. '매우 불충분'은 CAT의 평가 등급 6개 중 최하 등급인 '심각한 불충분'의 바로 윗 단계다. 이는 파리기후협약에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 범위를 크게 벗어난다는 의미다. CAT는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관련한 기후변화 대응 조치를 과학적으로 측정·분석하는 민간 국제 기후정책 분석기구다.
CAT는 한국의 에너지 정책을 뒷받침할 법과 제도가 충분치 않은 것을 '낙제점'의 가장 큰 원인으로 들었다. CAT는 또 보고서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나라"라고 지적했다. 이어 "올해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에너지전환정책을 발표했지만 이 정책을 뒷받침하는 법과 제도가 부족하기에 실행수준을 수치화해 측정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3. 미스터피자 '치즈 통행세'로 불거진 프랜차이즈 갑질 논란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맹점에게 폭리를 취하는 '갑질'이 올해 대대적인 사회적 문제로 불거졌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프랜차이즈 브랜드 수는 5273개, 가맹점 수는 21만8997개다. 중소기업벤처부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 100만 명당 프랜차이즈 수가 70개로 미국 7개, 일본 9개에 비해 포화상태다. 자영업자의 대다수가 프랜차이즈 매장을 운영한다는 뜻으로 '프랜차이즈 갑질' 피해의 규모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올해 가장 큰 논란이 된 갑질 사례는 '미스터피자'의 '치즈 통행세'다. 가맹점에 치즈를 공급하면서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의 동생 부부 명의 납품업체를 끼워 넣어 부당 이득을 챙겼다는 혐의다. 이 일로 정우현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소비자의 비난은 한동안 계속됐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시중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원자재를 강매하는 '통행세'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서울시가 진행한 '프랜차이즈 필수구입물품 실태조사(1328개 프랜차이즈 가맹점 대상)'에 따르면, 가맹본부로부터 공급받는 필수구입물품 가격이 시중가격보다 '비싸다'는 응답이 87.5%에 달했다. 프랜차이즈 본사 측은 소비자에게 균일하게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 같은 필수구입물품에는 냅킨, 물티슈 같은 일회용품이나 설탕, 주류, 음료 같은 일반 공산품이 포함돼 본원 서비스와는 무관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4. 간호사에게 '선정적인 춤' 강요한 성심병원, 간호사 인권침해 논란
성심병원 간호사들이 재단 체육대회에 동원돼 짧은 옷을 입고 선정적인 춤을 추도록 강요받은 사실이 폭로되며 '간호사 인권침해' 논란이 일었다. 성심병원 간호사들은 1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재단 행사 '일송가족의 날'마다 장기자랑 참여를 강요당했다. 일송재단과 형제 재단인 성심의료재단 산하의 강남‧강동‧동탄‧성심(평촌)‧춘천‧한강병원 등에 소속된 간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각 병원 간호사들은 경쟁이란 명목하에 윗선의 지시에 따라 '유혹하는 표정'이나 '선정적인 춤'을 연습해 전국의 재단 관계자 900여 명이 찾아오는 행사에서 선보여야 했다.
간호사들은 8시간의 근무 후 연습에 동원돼 '수치심' 이외에 '체력적 문제'를 호소했다. 의료행위를 하는 간호사의 체력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것임에도 병원이 연습을 강요한 것이다. 행사에 동원된 간호사들과 원내에서 이들의 대체근무를 선 간호사들에게 추가 근무 수당도 지급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논란이 지속되자 11월 고용노동부는 성심병원 장기자랑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5. 생리대 위해성 파동
여성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일회용 생리대가 국내에 정식 출시된 이래, 올해 처음으로 위해성 파동에 휩싸였다. 지난여름 온라인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깨끗한나라'의 '릴리안' 생리대 사용 후 생리불순과 생리전증후군(PMS) 등이 심해졌다는 여성들의 주장이 속출했고, 지난 8월부터 이들의 주장이 언론에 보도됐다. 생리대 위해성 파동에서 정부는 늑장 대응 및 논란 진화에만 급급한 정무적 대응으로 빈축을 샀다.
생리대 위해성 논란이 일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도 정부의 공식적인 대응은 없었고, 초기 대응은 시민단체가 진행한 시험의 '신뢰성' 지적하기에만 급급해 여성 건강과 생리대 간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려고 하지 않았다. 이후 식약처가 진행한 전수조사와 위해평가 또한 화학물질의 조사범위와 여성의 질 점막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에 직면해 소비자 불안감을 잠재우긴 역부족이었다.
한편, 이번 파동을 통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생리용품과 여성건강 간의 관계를 검증하는 시험 또는 기준이 전무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여성건강에 대한 전 지구적 무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식약처는 생리대 위해성과 관련해 "환경부·질병관리본부 등과 협력하여 역학 조사를 추진한다"는 입장을 밝히긴 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6. 한샘·현대카드 성폭력 은폐 폭로, 피해자 입 막는 기업구조
지난 11월 직장 동료와 상사로부터 연쇄 성폭력을 당한 '한샘' 신입사원의 이야기가 폭로되며 성폭력 피해자의 입을 막는 기업 구조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한샘 사건 직후 '현대카드'에서도 비슷한 폭로가 나온 것은 국내 기업의 성폭력 사건 대응실태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범죄'는 2012년 341건에서 2014년 449건, 2016년 545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2017년엔 1~8월에만 370건이 발생했다. 직장 내 성폭력은 권력적 우위를 이용해 발생하는 특성상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결심하기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힘겹게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대부분 사건 담당자가 문제해결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어 피해자는 2차 가해에 노출되기 쉽다.
한샘 사건에서 드러났듯 성폭력 사건을 조사하는 사람들은 회사의 인사과나 총무·감사과 소속으로 다른 업무와 겸해서 사건을 맡는다. 성폭력 사건 처리에 대한 전문성, 젠더 감수성을 제대로 교육받은 '전문 인력'이 아니다. 또한 이들은 '조용히 처리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내려오면 피해자가 원치 않는 합의를 종용하기도 한다. 잇따른 기업의 성폭력 은폐시도가 폭로되며 회사의 미숙한 대응과 '사건 무마'에만 초점을 맞춘 피해자 회유로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들이 두 번 운다는 사실이 재삼 밝혀졌다.
7. 강원랜드, 금융업계 채용비리
청년실업률이 9.4%로 1999년 이후 정점을 찍은 상황에서 '신의 직장'으로 꼽히는 공기업과 금융기관의 채용비리가 폭로되며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더불어민주당 이훈 의원실은 '2012~2013년 강원랜드 채용 청탁 대상자 관리 명단'을 공개해 강원랜드의 채용비리를 폭로했다. 해당 자료가 공개된 이후엔 공기업인 강원랜드에 최종합격한 신입사원 518명 전원이 청탁자였다는 언론 보도가 나와 충격은 배가됐다. 이후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은 '우리은행' 인사팀이 작성했다는 '2016년 신입사원 공채 추천현황 및 결과'라는 문건을 공개했다. 우리은행 채용비리가 폭로된 직후엔 '금융계의 검찰'인 금융감독원에서도 채용비리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채용비리 논란은 금융업계 전반으로 번졌다. 청탁자 명단에 오른 이들은 전·현직 국회의원, 정부부처 공무원, 전·현직 은행 간부 등으로 밝혀져 '백' 없는 젊은 구직자들에게 큰 박탈감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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